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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연기하고 이에 맞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에 착수하면서 북미대결이 심각한 양상으로 나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 정부 수립 60주년인 지난 9월 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념행사장에 나타나지 않고 정규군 열병식 대신 노농적위대 등 민간무력만의 열병식을 진행하자 전 세계가 그 의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북한은 올해 초 공동사설을 통해 ‘공화국 창건 60돌’을 매우 중요한 의미로 강조했으며 최근 북미대결이 다시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많은 이들이 9월 9일을 전후로 대규모 열병식이나 ‘군사적 추가조치’와 같은 북한의 대미 공세를 예상하였다. 그런데 그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소설’ 수준의 추측성 보도가 난무한다

 

미국, 일본과 국내의 보수 언론들은 북한발 ‘돌발 변수’를 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변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건강 이상설’에 집착하고 있다. 이들은 ‘건강 이상설’을 기정사실처럼 보도하면서 한발 나아가 북한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추측들을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의 정치인들도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을 내놓으면서 논란을 확대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들 보도가 모두 아무런 근거도 없는 추측성 보도라는 데 있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 관리들’이나 ‘북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국내 언론들도 ‘정부 관계자’의 ‘첩보’나 미국 언론의 보도에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치 모든 정보가 ‘사실’인 것처럼 확대 보도하고 있다. 이처럼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추측성 보도들이 난무하는 모습은 미국과 국내 보수 언론들이 작정하고 이번 기회에 ‘한 몫(?)’ 잡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낳고 있다.

 

사실 북한은 ‘정보의 블랙홀’이라 불릴 만큼 내부 정보, 특히 지도부와 관련된 정보를 외부에서 파악하기 어려운 사회다. 이런 조건에서 언론들은 9월 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나타나지 않은 사실 하나만 가지고 ‘소설’을 쓰며 외국 의료진이 방북했다거나, 평양의 병원 주변에 차량 이동이 많다는 점, 심지어 중국이 축하 사절단을 보내지 않은 것까지도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보수 언론들이 ‘소설’ 쓰기에 매달리자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에서 발간하는 ‘미디어 오늘’은 9월 11일 ‘김정일 건강이상, 앞서간 신문들’이란 기사를 통해 ‘앞서나간 자극적인 말들’이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경향신문’도 사설을 통해 ‘정부나 정치권의 과도한 언행’에 우려를 보였고 ‘한겨레’도 사설을 통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이 옳다’며 ‘앞서나가는 행동으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 것을 요구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도 11일 ‘보도비평’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대서 특필’했다며 ‘유언비어’로 일축했다.

 

심지어 정부조차 언론들의 앞서나가는 행태에 우려를 보였다. 통일부 김호년 대변인이 10일 기자 브리핑을 통해 “아직까지 확인된 내용은 없”으며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한 것이다. 국정원의 정보보고도 ‘첩보’ 수준이라고 밝혔다.

 

북한 입장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이런 언론 보도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일단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일본 교도 통신과 인터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또한 송일호 북일국교정상화 교섭담당 대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하나의 모략 책동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의 한 관계자도 “그런 건 다 허튼 소리”라고 일축했다. 북한 사회에도 별다른 변화가 관측되지 않는다고 대다수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한편 노농적위대만의 열병식과 관련해서는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조선신보’의 보도를 통해 그 의미를 추측할 수 있다. ‘조선신보’는 노농적위대 열병식이 “최고영도자의 단호한 결단”이라며 “전민무장화 방침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과시한 것으로 풀이했다. 과거에도 북한은 대규모 열병식에 노농적위대가 함께하는 것을 두고 정규군뿐만 아니라 민간무력도 모두 준비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가 장기간 북한 언론에 보도되지 않거나 국가 중요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일은 한 두 번이 아니다.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은 국회정보위 회의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 달 이상 장기간 공개활동을 중단한 것이 1994년 이후 17차례나 된다고 증언한 바 있다.

 

최근의 일들이 북한에서는 ‘특별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그 때마다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은 호들갑을 떨며 ‘건강 이상설’을 유포했다. 단적인 예로 작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도 일본과 국내 언론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심근경색’을 일으켰다며 마치 정상회담에 영향을 미칠 것처럼 보도하였다.

 

그러나 정작 정상회담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제가 뭐 환자도 아닌데 집에서 뻗치고 있을 필요가 없지요”라며 보수 언론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심근경색이니 당뇨병이니 하는 논란들은 사실 북한의 관련 분야 의료 발전을 위해 해외 의료진들을 초청한 데서 비롯된 오해라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업무 비중 가운데 상당수는 ‘현지지도’에 집중된다. 북한 언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체 공직생활의 1/3을 현지지도로 보냈다고 소개한 바 있다. 특히 작년 여름에 집중적인 현지지도 활동을 하여 ‘삼복철 강행군’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였는데 올해도 노동신문 정론을 통해 이와 버금가는 삼복철 현지지도가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활발한 현지지도가 이루어진다는 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만난 사람들의 증언에서도 ‘건강하다’는 내용은 있어도 반대 의견은 거의 없다.

 

어쩌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비공개 활동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특히 최근 북미관계가 전략적 단계인 3단계로 진입하지 못하고 난황을 겪는 것과 관련하여 중요한 결단을 내리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다.

 

‘자주민보’는 1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결정적 작전 구상중일 것’이란 보도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개 행보를 하지 않는 것이 “뭔가 새로운 작전을 구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어쩌면 공개 행보를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미국을 압박하는 ‘작전’일 수도 있다. 미국 언론들은 벌써부터 북핵 협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조급함’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미국, 일본과 국내 보수 언론들은 왜 이런 추측성 보도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대북 대결에서 계속 밀리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바심을 내는 것이다.

 

‘자주민보’는 11일, ‘이기지 못하면 헐뜯을 지어다’란 기사를 통해 미국, 일본과 보수 세력들의 심정을 절묘하게 꼬집었다.

 

사실 미국은 6자회담 전 과정에서 북한에게 밀리고 있다. 6자회담 초반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를 주장했다가 북한의 ‘2.10 핵보유선언’ 이후 이를 폐기하고 ‘9.19 공동성명’에 합의하였으며, 다시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를 일으켰지만 북한의 핵시험 이후 사태 해결을 약속하고 나아가 ‘종전선언’ 카드까지 꺼내들어야 했다.

 

최근에도 테러지원국 해제를 연기하면서 북한에게 도전했지만 북한은 ‘핵시설 원상복구’라는 강수를 두었다. ‘매일경제’ 9월 8일자 보도에 따르면 90년대 1차 핵위기 당시 미국 협상팀에 있었던 게리 새모어 미 외교협회 부회장은 북한이 6~8주 내에 플루토늄을 다시 생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11월 4일인 미국의 대선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국이 한 발 물러서지 않으면 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핵무기 추가 생산 발표’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일본 또한 6자회담에서 대북 에너지 보상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맞섰지만 결국 북일관계정상화 실무회의를 재개하고 과거 합의들을 다시 준수하기로 약속하였다. 현재 일본은 6자회담에서 자신의 의무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문제로 인해 자칫 6자회담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는 분위기에 처해 있다.

 

이명박 정권도 사정은 비슷하다. 집권 초기 6.15, 10.4 남북공동선언들을 부정하고 ‘선제공격’을 제창했지만 북한의 ‘개성공단 실무자 추방’과 같은 단호한 반응으로 인하여 오히려 국내 여론의 공격만 받았다.

 

최근에도 금강산 사건으로 대북 공세를 펼쳤으나 아세안안보포럼(ARF)에서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등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은 거의 0점 수준이다. 이처럼 과거 남북관계 발전을 부정하고 ‘한국이 주도하는 남북관계’를 만들어보겠다는 이명박 정권의 구상은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한미일 모두 대북적대정책을 펼쳤으나 북한의 공세에 밀려 오히려 전 세계의 비웃음을 살 형편이 되자 어떻게든 체면치레를 하기 위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건강 이상설’을 퍼뜨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지난 9월 9일 행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았고 정규군 열병식이 없었을 뿐 규모에서는 사상 최대였으며 신형 미사일과 방사포, 고사포도 선을 보였다. 열병식 외에도 각종 행사가 풍성하게 열려 북한 입장에서는 9월 9일 ‘공화국 창건 60돌’을 원래 의미에 맞게 성대하게 맞이한 셈이다. 하지만 보수 언론들은 이런 점들은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기지 못하면 헐뜯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보수 언론의 특성이다. 이는 상반기 촛불 정국에서 위기에 몰린 보수 언론들이 촛불문화제를 헐뜯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돌이켜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얼마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강한 모습으로 언론에 등장한다고 해도 보수 언론들의 입장에서는 북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심어놨기 때문에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할 것이다.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쟁’인가

 

둘째,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우려는 심리전의 일종이다.

 

지금까지의 추세라면 북미대결이든 남북관계든 북한의 공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이든 이명박 정권이든 뭔가 대북 추가 조치를 할수록 북한은 더욱 강경한 대응으로 맞설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언론 공세를 통해 마치 북한 지도부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처럼 여론을 형성해놓는다면 북한의 강경한 대응들을 마치 ‘북한 군부의 무모한 도발’ 정도로 인식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벌써부터 언론들은 ‘북한 정권의 향후 시나리오’ 따위를 보도하면서 북한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대북, 대남정책에서 ‘잘못된 판단’을 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북한에 ‘긴급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여론을 조성하여 이에 대응할 준비를 빌미로 더욱 강경한 대북적대정책을 펼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이미 보수 언론들은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반드시 닥칠 북한 급변 사태에 총력으로 대비하라’는 사설을 통해 북한 ‘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핵 폭탄과 화학·세균 무기로 무장한 117만 북한군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예상하기 어렵다’고 위기감을 조성했다.

 

중앙일보도 ‘불현듯 닥칠 북한 급변사태, 대비책 있나’라는 비슷한 제목의 사설을 통해 위기감을 조성하고 심지어 총 7개 면을 할애해 특집 기사를 내보내는 식으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동아일보는 한발 나아가 “북한 체제의 변화”에 대비해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과” “북을 평화적으로 관리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늘어놓았다. 한국일보는 “남북관계는 당분간 경색이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이명박 정권에서 북한으로 슬그머니 떠넘겼다. 연합뉴스도 “북핵문제나 남북관계에 있어 지금의 경색국면이 상당히 길어질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라고 보도하였다.

 

이러한 보수 언론들의 기도는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연합뉴스를 비롯하여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언론들은 10, 11일 일제히 보도를 통해 “한미가 북한의 급변사태를 대비한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상당히 진척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개념계획 5029’는 북한 내부의 소요사태, 정권 붕괴, 대규모 탈북, 천재지변과 같은 사태에 군사력을 투입한다는 내용으로 북한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북한 내부 문제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계획이다.

 

미국은 이 계획을 전부터 작전계획으로 발전시키려 했으나 노무현 정부의 반발로 중단된 적이 있다. ‘개념계획 5029’ 논란을 통해 볼 때 미국은 북한 체제에 ‘이상’이 있다는 여론을 퍼뜨린 다음 북한에 군사력을 투입해 전쟁도 일으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건강 이상설’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과거 정부나 보수 언론은 북한에 대해 잘못된 정보로 국민 여론을 호도하여 왔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남북 교류가 급증하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바뀌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북한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보수 언론들의 근거도 없는 ‘소설’에 휘둘리다가는 ‘건강 이상설’이 ‘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끝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615TV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이상설,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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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번영을 여는 북한 전문 통신 [NK투데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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