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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고마움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동생과 살았다. 아빠는 부산에서 살고, 엄마는 예전에 잠깐 만나보고는 아직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성격이 그다지 좋지 않다. 매일 할머니한테 혼날 때마다 엄마를 원망한다. 왜 날 버렸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할머니는 내가 첫째라는 이유로 집안의 청소와 모든 설거지를 다 시킨다. 화가 나서 셀 수도 없을 만큼 할머니와 싸웠다. 매일 싸운다. 공부 못하고, 말도 잘 안 듣고, 고집이 세단다. 그런데 할머니는 무조건 동생만 예뻐한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왠지 모르게 동생들을 예뻐하고 나만 미워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짜증이 나고 너무 화가 나서 할머니와 싸운다.

내가 괜한 질투를 하는 걸까?

 

한날 할머니와 또 싸웠는데, 할머니가 하는 말씀이 "내가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 네가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울컥 눈물이 났다. 난 매일 할머니가 미워서 못되게 굴었는데, 그런 생각을 했던 나는 창피스럽고 할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는 우리들을 먹여 살리려고 돈을 버신다. 70세가 넘은 연세에 등이 구부러지고, 팔다리가 안 쑤시는 데가 없다고 하신다. 오늘 글짓기 주제가 '우리 가족'인데, 이렇게까지 밖에 쓸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난 할머니께 감동받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부터는 할머니와 싸우지 않고, 내가 조금 힘들다고 해서 짜증을 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일을 꿋꿋이 해내야겠다. 할머니가 참 고맙다. 집에 돌아가면 할머니 어깨를 가만가만 주물러 드려야겠다. 자꾸만 눈물이 난다. - 영산중학교 1학년 ○○○  

 

소개한 글은 내가 맡고 있는 '방과후논술아카데미'에서 한 중학생이 쓴 글이다. 읽노라면 그저 가슴이 먹먹해진다. 녀석이 다 쓴 원고를 나에게 내밀었을 때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그렇지만 원고를 교정해 주면서 나는 애써 마른 눈물을 삼켜야했다. 14살 사춘기 여학생의 일상사가 너무나 애틋하게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반년 동안 녀석과 부대끼면서 난 왜 녀석의 가정형편을 몰랐을까. 무심해서, 아니, 무관심했단 말인가. 녀석은 언제나 구김살 하나 없는 얼굴이다. 그만큼 자기 아픔을 감싸 안고 있었다. 그게 더 마음 아프다. 어린 나이에 그러한 상황을 참고 견뎌내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글 쓰는 것, 하나 더 가르치기에 앞서 이 아이의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어떻게 다독여야하나. 아무리 부모노릇 하기가 참 힘들다 해도 같은 부모로서 이해의 입장에 서 보면 이토록 무책임한 일에는 할말을 잃는다. 

 

문제는 이와 같은 사단이 너무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사정 탓에 결손가정이 늘어나고, 급기야 농촌에선 조손가정이 문제시되고 있다. 이는 단지 아이 부모의 책임만은 아니다. 경제정의가 무너지고, 가정윤리가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총체적인 사회모순의 실타래가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져 원상태로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도 난마처럼 엇갈려 있는 세상이다.

 

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 꼬였을까? 정부와 언론은 연일 장밋빛 환상을 내걸지만, 지금 이 나라에 그와 같은 허상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소위 최상의 계층의 1% 정도만 자족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머지 99%의 국민들은 들러리고 엑스트라란 말이냐. 경우에 따라서는 주연보다 조연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다. 정말 소수의 기득권층을 향한 퍼주기 잣대만큼은 아니다.

 

그래도 그뿐이다. 행정 관료나 정치집단은 여전히 모르쇠다. 경제파탄에 대한 일체의 책임의식을 갖지 않는다. 왜냐? 그들은 하나 잘못이 없으니까. 잘 살고 못 사는 건 마땅히 국민의 책임(?)이다. 아무리 가난은 나라도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다.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이 안타까운 현실,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물론 아이의 가정환경이 이렇게 허물어지까지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국가사회가 그 책임을 면피하기는 어렵다.

 

뜬금없이 제 원고 교정을 기다리고 서 있는 아이에게 난 다만 거짓부렁의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지금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가.

 

"얘, 글 솔직하게 잘 썼네. 이쯤이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다."

 

하지만 왜 나는 말꼬리를 흐려야만 했을까. 지금까지 난 녀석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그토록 어렵고 힘든 상황을 모른 채 허접은 이야기만 계속했으니.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제 엄마아빠로, 한통속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녀석은 제 글을 읽고 있는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연신 환하게 웃으며, "선생님, 제 글 읽어보니까 어때요? 선생님, 무거운 얼굴 하지 마세요. 난 괜찮아요"라며 원고를 받아들고는 내게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요즘 들어 우리 시골학교로 전학을 오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도회지에서 농촌으로 마지못해 거처를 옮겨야했던 아이들이다. 근데 아이의 손을 잡고 교실에 들어서는 학부모는 칠팔 순의 할아버지거나 할머니다. 소위 조손가정, 결손가정의 자녀들인 것이다.

 

'애들 부모는 어딜 갔을까?'

 

곰곰이 생각할 것도 없다. 불경기가 거듭됨에 따라 청운의 꿈을 안고 도회지로 흘러들어갔던 농투성이들이 빚더미에 저당 잡히고, 결국엔 아이를 떼놓고 떠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시골로 내몰린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키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평생을 농투성이로 살아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노쇠한 육신하나 건사할 힘뿐인 노인네가 서넛 손자손녀를 건사하는 것은 몸에 부치는 일이다. 잘 부탁한다고, 잘 돌봐달라고 손을 모으는 할머니, 나는 담임으로서 그 뿐께 애써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며 힘주어 말씀 드렸지만, 자신이 없다. 마치 덫에 걸린 산노루처럼 불안해하는 아이를 바라보면 난 얼마나 더 마음을 다그쳐야 하련지. 이런저런 고민이 깊어진다, 이런 것이 시골초등학교 교사의 일상일까.


태그:#조손가정, #결손가정, #장밋빛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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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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