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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탑 전망대에서 본 일몰
▲ 사리탑 일몰 사리탑 전망대에서 본 일몰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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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아침 9시 50분, 드디어 살아생전 한번은 참배해야 한다는 봉정암 불뇌사리탑에 이르렀습니다. 간이 콩알만 한 내가 험한 고개를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깔딱 고개 아래 아스라이 누워있는 억겁의 바위고개들을 뒤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그 고개에서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봤더라면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사리탑
▲ 사리탑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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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산중 탑... 애절한지도 모르지요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왜 그 험한 깔딱 고개에 자리했을까요? 만약  길모퉁이나 서울의 한복판에 불뇌사리탑이 세워졌더라면 국보 제 1호인 숭례문처럼 우리는 모두 식상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첩첩산중 발품을 파는 자만이 만날 수 있고, 암벽을 네발로 오를수 있는 자만이 볼수 있는 탑이기에 더욱 애절하고 감탄사가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깔딱 고개에서만이라도 사리탑이 눈앞에 보였더라면 기도문이라도 준비했을텐데, 준비없이 만나는 사리탑은 그저 무아지경 벙어리가 된 느낌입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치장했던 장갑도 모자도 선글라스도 벗었습니다. 배낭까지 내려놓으니 우와- 온몸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리탑 주변
▲ 사리탑 주변 사리탑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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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이 무상(無想)이라면 탑 앞에서 무념(無念)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석가탑 앞에 넙죽 절을 했지요. 내 어머니가 길을 가다가 돌무덤 앞에서면 합장을 했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석가탑에 삼배를 하고 나니, 아차, 짊어지고 온 오이며 쌀, 미역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출발할 때 오지 절집에 쉬어가는 길손들을 위해 양식을 준비해 왔었거든요. 그래야 복을 받는다나요?

사죄하려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경배하려 했던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부처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복을 달라 매달리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생각해보니 오세암에서 출발하여 4km, 바윗덩어리 능선을 타고 걸었던 시간은 무상(無想)이었습니다. 그리고 해발 1,224m 부처의 진신사리가 묻힌 탑 앞에서니 그저  무념(無念)이었던 같습니다.

사실 나는 진실한 불자는 아닙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땐 길 위에 쌓아둔 돌탑에 두 손을 모으는 토속신앙이었을 테고, 내 유년시절에 고모님의 등에 업혀 교회당에도 다녔었지요. 그러다가 보수적인 집안에 시집와 불교에 입문하고부터 어렴풋이 부처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내 불심은 그저 석가탄신일에 촛불을 켜는 정도니 부처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복을 달라 외치는 것은 무리지요. 따라서 불뇌사리탑앞에선 나로서는 그저 내 지은 죄를 사죄할 수밖에요.

바위도 경배
▲ 바위 바위도 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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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암벽까지 사리탑에 경배하더라

구름이 걷히더니 설악의 바위들이 그 형체를 드러냈습니다. 부부바위 곰 바위, 부처바위, 그리고 원숭이 모양을 한 바위 한 쌍도 석가탑을 향해 부동자세로 서 있습니다. 풍우에 제 몸이 갈라지고 찢겨진 봉정암을 감싸고 있는 봉 바위도 구름을 이고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용아장성, 공룡능선, 설악에 뿌리 내린 각양각색의 바위는 모두 부동자세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설악에 자라는 일송정, 10월이면 핏빛으로 물들일 단풍나무, 다람쥐를 위해 열매를 키우고 있는 도토리나무까지 모두 부동자세입니다.

사방 기단은 연꽃잎 모양
▲ 연꽃잎 사방 기단은 연꽃잎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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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뇌사리탑에 핀 연꽃 잎

탑을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바위를 뚫고 솟아난 5층 석탑 옆에 서 있으니 만물이 나를 향해 시선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설악은 봉정암의  탑을 1천3백5십여년전부터 받들고 있었다지요? 

기단없어
▲ 기단없어 기단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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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뇌사리보탑이 다른 탑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기단부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이를 두고 ‘설악 암벽에 뿌리를 내린 탑이다.’라 말하더군요. 그 기단부의 4면에는 16개의 연꽃잎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원뿔형 보주
▲ 원뿔형 보주 원뿔형 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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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탑의 꼭대기를 올려다보니 마치 연꽃이 핀 듯 원뿔형의 보주가 하늘을 치솟고 있더군요.

사리탑 전망대에서 본 저녁노을
▲ 저녁노을 사리탑 전망대에서 본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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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장성 봉우리 운무는 바다위에 떠 있는 섬 같다.
▲ 용아장성 운무 용아장성 봉우리 운무는 바다위에 떠 있는 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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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탑 전망대 저녁노을에 숨이 멎을뻔...

저녁 6시 30분, 공양을 끝내고 석가탑 옆에 있는 봉정암의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이곳에 서니 세상에 제일 높은 곳에 선 느낌입니다. 구름속에 솟아난 설악의 한 봉우리가 마치 바다위에 떠 있는 섬 같더군요. 바람 한 점 없는 해발 1224m에는 구름도 잠들어 있습니다.

넓적한 바윗덩어리가 바로 전망대입니다. 그 바위 밑 오른쪽으로 오세암으로 이어지는 깔딱고개가 있습니다. 왼쪽으로는 백담사 길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깔딱고개가 있지요.  이 길을 걸을 예정입니다.

6시 50분, 용아장성 너머에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바닷가의 일몰은 자주 보았지만, 산에서 보는 일몰은 처음입니다. 풍경이라기엔 너무나 눈물나는 순간입니다. 석가탑을 향해 경배했던 마음처럼 내 마음에 고요가 일더군요. 아마 숨이 멎는 순간은 깔딱고개가 아니라, 사리탑 전망대에서 보는 저녁노을 같습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이렇게 가슴에 고요가 일었던 적이 있었던가요? 전망대 오른쪽 능선 끄트머리에서 불빛이 반짝입니다. 아마 그곳은 강원도 어느 소도시인 것 같습니다.

사리탑에 불공... 지옥고를 면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 사리탑 불공 사리탑에 불공... 지옥고를 면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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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를 면하려는 설악의 염불소리

저녁 7시,  인적이 끊이지 않는 석가탑에 어둠이 내려 앉았습니다. 석가탑에 주변에 깔아놓은 돗자리에 중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탑을 둘러싸고 사방에서 염불소리가 들려옵니다. 염불소리는 설악의 여름밤을 수놓았습니다. 지옥고를 면하려는 내 마음처럼 말입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31호 5층 석가탑
사리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31호
▲ 강원도 유형문화재 31호 사리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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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 진신사리탑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한 한 석탑으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31호이다. 이 탑의 유래는 신라선덕여왕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건너가 도산율사로부터 수계한 후 석가세존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받아가지고 돌아와 도왕 12년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전해진다.

1350여년 전 자장율사가 불사리를 봉안하려 금강산을 헤맬 때 머리 위로 봉황새가 나타나 내설악 산정으로 안내하여 봉정암이라고 이름 지었으며, 5층 석탑에 불사리를 모시니 이 탑이 석가탑이라 한다.


태그:#불뇌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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