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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배달이 힘들다는 것은 몇 번씩 강조했다. 하지만 힘들다고 그것이 무슨 업보라도 되는듯 생각할 가치는 추호도 없음을 또한 강조했다. 다만 신문배달의 4년을 정리해보면 힘들면서도 기분좋은 가치를 찾아가는 버릇이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기분좋은 가치만 생각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오직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할 때도 많다. 그 신문배달의 딜레마를 소개한다.

한 신문 지국에 쌓여있는 신문 뭉치.
 한 신문 지국에 쌓여있는 신문 뭉치.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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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일찍 일어난다(하루가 길다)→일찍 일어나야 한다(하루가 너무 길다)

일찍 일어나면 좋은 거다. 누구나 매일 아침을 깔끔하게 일어나서 열심히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신문배달부가 다른 직종에 비해 주변에서 더욱 동정적인 시선을 받는 것은 다른 것보다 "그 시간에 일어난다"는 기적에 가까운 기상 능력에 대한 인정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평생 바라던 '일찍 기상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신문배달은 뿌듯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새벽 6시면 몰라도 새벽 2시(빠를 경우)~4시(늦어도)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또한 한번쯤은 일찍 일어나기 싫은데 그럴 수 없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옛날 고시원에 살 때 한번은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고 깊이 잠든 적이 있었다.

신문사 직원이 우리 고시원까지는 찾아왔는데 내 방이 어디였는지는 몰랐다. 그래서 그 직원이 거의 70개 고시원 방문을 열어본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있다. 쪽 팔려서 고시원을 옮겼다.

자발적 기상과 어쩔 수 없이 '깨어나야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만 또 그렇게 일어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매우 뿌듯한 것도 사실이다. 하루를 길게 사용하기 때문에 철저한 시간관리를 24시간 활용하는 것도 매우 놀랄 일이다.

하지만 언제나 일찍 일어나야 하는 다음날 걱정에 초저녁부터 어떤 모임이든 긴장하게 되는 스트레스는 항상 불만이었다.

② 아침운동을 충분히 한다→아침부터 운동을 과하게 한다

아침운동 하나만큼은 완벽하다. 계단 오르기도 장난 아니다. 아무리 먹어도 최소한 살이 찌지는 않는다. 좀 빈곤히 먹으면 살빠지는 것은 기본이다. 신문배달은 유연성과 지구력을 동시에 요하는 종목(?)이다.

일단 오토바이에 신문 150~200부를 탑재하여 자유롭게 운행하자면 유연성이 필수다. 하지만 몇 백 번을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계단을 오르고 허리를 굽히고 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끈기도 필요하다.

특히 비가 오는 날 우의를 입고 있으면 그 안에서 흘리는 땀은 가히 환상적이다. 배달 그만두면 상당시간 돈을 내고 운동을 하는 것이 굉장히 꺼려진다. 돈 벌면서 운동했던 시절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과하다. 부상도 꼭 동반한다. 조금 빨리 배달하려다가 오토바이 넘어지고, 넘어지면서 엔진에 다리 화상 입기도 한다. 가게 문에 머리박는 일은 다반사요. 미끄러주심은 기본이다. 절대적인 체력 고갈도 문제다.

프로야구팀도 전지훈련 가면 4일 운동 1일 휴식의 패턴을 취한다지만 이것은 6일 배달, 1일 휴무의 법칙을 준수한다. 운동이 과해지면 하루가 피곤하다. 아침을 깔끔하게 시작하면서 하루를 보람차게 살기 위함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새벽에 깔짝대고 하루종일 체력 보충해야하는 꼴이다.

지금 신문배달을 그만둔 지가 1년이 넘었는데 늘어나는 체중 탓에 항상 다시 복귀하고픈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만큼 가장 효과적인 운동을 제공해 주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다가 또 '나는 건강해지지만', 하루 자체는 피곤해질 것이 두려워서 항상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③ 상쾌한 새벽의 기운을 느낀다→더러운 아침의 절정을 맛본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새벽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신문배달을 할 때 매일 새벽 정확한 시간에 학교로 가는 고3 학생이 있었다. 빌라 지하 관리실 단칸방에서 세 식구가 사는 집의 수험생이었다.

기특해서 신문을 주면서 논술 공부하라고 했다. 그렇게 2년동안 4개의 신문을 매일 주었다. (지국장한테 미안하지만) 어쨌든 그 친구가 명문대에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부모님이 나에게 감사하다고 예쁜 선물도 주셨다. 이게 바로 아침을 여는 자의 보람이다.

그 외에도 아침은 언제나 아름답다. 크리스마스 때는 정말 양말을 받기도 한다. 추석과 설날 때는 먹을것을 주시기도 한다. 아주 보람찬 일이다. 룰루랄라 대한민국의 새벽은 이렇게 아름답다.

얼마나 더러울까? 일단 술취하신 분들. 중요한 것은 이들은 술 드시다가 새벽까지 살아남은, 즉 '끝까지 살아남은' 강자 중의 강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술 주정도 가히 메가톤급이다. 소위 '개념 상실'이라고 한다. 신문을 그냥 가져간다. 그리고 열심히 하라고 다독거린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새벽이면 말릴 사람도 별로 없다. 그러니까 웬만해서는 싸움도 끝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오토바이에 있는 신문뭉치를 싸움도구로 애용하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오바이트~ 빈대떡~'이다.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약간의 눈치를 보시는 분들은 상가건물의 한 층 정도를 올라가서 그런 짓을 하신다.

굉장힌 더운 여름날. 배달부가 그곳을 간다. 밀폐된 곳이다. 그 냄새는 상상을 초월한다. 가끔 그렇게 올리시고 그 자리에서 쓰러지신 분들도 있다. 그 사람 피하다가 내가 그곳에 미끄러진 적도 있다. 정말 대한민국의 새벽은 개판이다. 내가 신촌에서 배달을 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문배달의 이런 양면은 쉽게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좋았던 일들도 금방 잊어버리고 나빴던 일들도 금방 잊어버린다. 그러니까 순간의 불안과 만족이랄까? 어제는 좋았는데 오늘은 뭐같은날이 계속 반복되니까 그런 것 같다.

④ 신문배달 하는 멋진 청년으로 인정→신문배달이기에 무시 당하는 경우가 허다

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단지 신문배달을 한다는 이유 때문에 장학금 혜택을 받은 적도 몇 번 있었다. 그 분들은 그 상황에서 오직 나만을 추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신문배달의 이펙트는 이만큼 강하다. 그러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스스로 성찰적 자세를 유지하기도 한다. 그런 동정표 없으면 사실 신문배달은 매우 힘들다.

하지만 철저한 계급적 지위를 투사하는 직종이기도 하다. 아무리 성실스러운 모습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저 '배달부'일 뿐이다. 아무리 내가 '낮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시간에는 배달을 하는 사람일뿐이다. 배달에는 어떠한 지적노동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직 이 물건을 그곳으로 배달하는 육체노동만 있을뿐. 그런데 지적노동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시'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배달이 뭔가 문제가 생겼을때, 의외의 '막말'을 하시는 독자들이 상당하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힘든 일'에다가 '무시'가 첨가되면 그 상대적 허탈감과 박탈감은 상당하다. 세상에서 내가 버림받았고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짜증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하지만 수고한다고 물 한잔 주시는 분 한 명만 만나면 이런 고통도 잠시 잊게 된다. 그게 새벽의 노동이다.

⑤ 시급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맑은 날)→시급이 엄청 낮은 편이다(눈·비 오는 날)

신문배달이 몸에 적응되고 그러면 날만 좋다면 신문배달의 시급은 가히 8000원에 육박한다. 대개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고 아침운동 대행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금액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하루 3시간 정도 일하고 50-60만원의 돈을 버는 것은 짭잘할 수준이다. 다만 이것은 청명한 날씨가 보장되어야 한다.

웬만큼 고수가 되면 궂은 날씨에도 별 다른 영향을 받지 않지만 억수같은 비가 오거나 야속한 폭설이 앞을 가로막게 되면 상황은 언제나 대략난감이다. 특히 새벽에 눈이 와서 도로가 얼어버렸을 때는 '생명수당'없이 목숨을 담보로 배달을 해야하는 위험을 체험해야 한다.

2시간만에 끝날 일이 4시간이 되면 이거 곤란하다. 7시에 마쳐 출근준비를 해야할 상황인데 9시에 배달 끝나면 그거 하루가 난감하다. 그런 일이 일년에 최소 4-5번은 있다. 365일 중에 4-5일이지만 상당히 고통스럽다.

정리하면, 정말 열심히 산다는 소릴 듣는 기분으로 또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신문배달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생각에 매일이 괴로울 뿐이다. 하지만 본인이 선택했으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그 좋았던 기억만을 가지고 자기 인생 멋지게 살아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세상 모든 일이 다 이러한 딜레마를 가질 것임을 명심하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blog.daum.net/och7896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신문배달, #신문, #신문배달의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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