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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직감적’으로 ‘느낌’

.. 청색 비닐 커버의 대학 노우트. 직감적으로 느낌이 이상했다 ..  <이상현-사회부기자>(문리사,1977) 42쪽

‘청색(靑色)’은 ‘파란빛’이나 ‘파란’으로 고칩니다. ‘커버(cover)의’는 ‘껍데기’로 손보고요.

 ┌ 직감적(直感的) : 사물이나 현상을 접하였을 때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아니하고
 │     진상을 곧바로 느껴 알아차리는
 │   - 직감적 판단 / 직감적으로 알다
 │
 ├ 직감적으로 느낌이 이상했다
 │→ 느낌이 이상했다
 │→ 문득 느낌이 이상했다
 │→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 …

몸으로도 ‘느끼’고 마음으로도 ‘느낍’니다. 곧바로 느끼기도 하고 어렴풋이 느끼기도 하며 문득 느끼기도 합니다. 퍼뜩 느끼면서 알아차리는 일이 있고, 찬찬히 느끼면서 깨달아 가는 일이 있습니다. 살갗으로 느끼는 가운데 받아들이기도 하고, 살갗으로 느끼지 못하며 멀리하기도 합니다.

알맞게 쓴 말을 알맞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알맞지 못하게 쓴 글이 알맞지 못한 줄 못 느끼기도 합니다. 알맞지 못한 말을 알맞다고 잘못 느끼면서 알맞지 못한 말과 말투와 말씨에 길들어 가기도 합니다.

얄궂게 쓰이는 겹말이 자꾸만 퍼져나가는 까닭이라면, 잘못 쓰이는 겹치기말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까닭이라면, 우리 스스로 우리 말과 글을 못 느끼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우리 말을 하고 우리 글을 쓰는 데에 자꾸만 무디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 직감적 판단 → 바로 느끼며 생각
 └ 직감적으로 알다 → 곧바로 알다 / 느낌으로 알다

곧바로 느끼는 일이 ‘직감’이라 한다면, “직감적으로 느끼는” 일은 “곧바로 느끼는 느낌”이 되어 버립니다. 겹치기입니다. 꼭 한자말을 넣고 싶다면, “직감이 이상했다”처럼 적어 줍니다. ‘직감’이라는 말은 굳이 안 써도 괜찮다고 느낀다면, “느낌이 이상했다”처럼 적어 봅니다. 이렇게 적으면서 앞쪽에 ‘문득’이나 ‘무언가’나 ‘어딘가’ 같은 꾸밈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ㄴ. ‘이야기’와 ‘에피소드’

.. 내 자신을 설명하는 첫 이야기로 이게 얼마나 적절한 에피소드인지는 잘 모르겠다 ..  <피우진-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삼인,2006) 31쪽

‘적절(適切)한’은 ‘알맞는’이나 ‘걸맞는’으로 다듬습니다. ‘설명(說明)하는’은 ‘이야기하는’을 뜻해요. 그러면 이 글 첫머리는 “내 자신을 이야기하는 첫 이야기” 꼴이 되는군요. 겹치기로 쓰인 셈이니, “내 자신을 보여주는 첫 이야기”나 “내 자신을 들려주는 첫 이야기”쯤으로 손봅니다.

 ┌ 에피소드(episode) : 남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재미있는 이야기.
 │   ‘일화(逸話)’로 순화
 │   - 재미있는 에피소드 한 토막 / 에피소드를 남기다
 └ 일화(逸話) :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아니한 흥미 있는 이야기
      - 숨은 일화를 공개하다

‘에피소드’로 쓰기보다는 ‘일화’로 쓰라고 하는 국어사전 풀이입니다. 그러면 ‘일화’란 무엇인가요. ‘에피소드’ 풀이와 ‘일화’ 풀이에 똑같이 나오는 말은 무엇인가요.

 ┌ 에피소드 : 재미있는 이야기
 └ 일화 : 흥미 있는 이야기

‘흥미(興味)’는 ‘재미’를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우리 말은 ‘재미’입니다. 곧, ‘에피소드’이든 ‘일화’이든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리키는 셈이며, 두 낱말 모두 ‘이야기’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토박이말로는 ‘이야기’요, 한자말로는 ‘逸話’요, 미국말로는 ‘episode’입니다.

 ┌ 내 자신을 보여주는 첫 이야기로 이게 얼마나 알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 이 이야기가 내 자신을 보여주기에 얼마나 알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 이 이야기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기에 얼마나 알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보기글에 나타나는 ‘에피소드’를 ‘이야기’로 고쳐 보는데, 바로 앞에 “첫 이야기”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같은 말이 되풀이는군요. “적절한 에피소드인지는”은 “알맞는지는”으로 손질해 줍니다.

그러고 보니, 이 보기글에는 ‘설명-이야기-에피소드’ 이렇게 나오는데, 세 가지 모두 ‘이야기’를 가리키는 낱말이네요. 한 번은 한자말을, 한 번은 토박이말을, 한 번은 미국말을 썼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겹말, #우리말, #우리 말, #중복표현, #겹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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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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