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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도 적어도 고려시대 이전 것으로 보이는 천문도(왼쪽), 건상열차분야지도(오른쪽)
천문도적어도 고려시대 이전 것으로 보이는 천문도(왼쪽), 건상열차분야지도(오른쪽) ⓒ 연세대 학술정보원


고구려 고분벽화에 쌍삼성, 남두육성, 북두칠성 등이 그려진 것이 있을 정도로 고구려는 군사적으로 강대한 나라였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천문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천문학 유물이나 문헌은 고려대를 뛰어넘어 조선 초기 태조 4년(1395년) 검은 석판에 새긴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로 다시 나타난다. 그런데 왜 이 천문지식이 고려시대를 건너뛰었을까?

그런 궁금함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한글판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한 국제천문연맹 천문학사위원회 위원장인 연세대 나일성 명예교수가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천상도가 확인되었다고 연락해왔다. 나는 그 천상도가 전시되어 있다는 연세대 '연세·삼성 학술정보관' 내 전시실로 뛰어갔다.

전시실에 들어가자 나일성 교수와 학술정보원 김영원 국학자료실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 전시실에는 지난 5월 10일부터 오는 6월 28일까지 '한국 과학의 전통과 연세'라는 제목으로 '연세·삼성 학술정보관' 개관 기념 고문헌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회는 '수학, 새로운 지평을 열다'라는 제목의 홍길주 수학세계 등 수학 고문헌을 전시하고 있고, '천문학, 하늘의 이치를 기록하다'라는 제목의 천문학 고문헌이 전시되고 있다.

먼저 두 개의 천상도에 눈길이 갔다. 하나는 권근의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일부 차이가 있는 '건상열차분야지도(乾象列次分野之圖)'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기 위한 시제품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옆에는 그린 이, 그린 때를 알 수 없는 천상도가 또 하나 나란히 전시돼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보다 간략한 필사본으로 그냥 천문도라 이름 붙였다.

나일성과 김영원 천문도를 설명하고 있는 나일성 교수(오른쪽)과 김영원 국학자료실장
나일성과 김영원천문도를 설명하고 있는 나일성 교수(오른쪽)과 김영원 국학자료실장 ⓒ 김영조

천문도에 있는 설명의 방향으로 볼 때 천문도의 방위가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시계 방향으로 90도 틀어져 있고, 중앙의 주극권과 은하수는 표시되어 있지만 28수(宿)의 구획을 나타내는 방사선, 적도와 황도 등은 없다. 천문도 설명 부분은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건상열차분야지도에 있는 것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나일성 교수는 천문도 발전 계통을 볼 때 천상열차분야지도 이후의 천문도는 아님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또 이 천문도가 천상열차분야지도와 방위가 90도가 다르다는 것이 특히 그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세차운동은 2만6000년에 360가 도는데 그러면 90도가 다르다는 것은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이 만들어질 당시보다 적어도 6500년 전의 각도일 것으로 본다. 하지만, 옛 사람들은 한 번 그리면 오랫동안 그대로 써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6500년 전인지 삼국시대인지 고려시대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아래에 기록된 권근의 글에 임금에게 '전해진 천문도의 하늘이 지금과 달라 다시 측정, 계산해서 천문도를 그려야 할 것'을 주청해서 그리하라는 명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참고한 이전 자료 적어도 고려시대 천문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에 확인된 천문도는 적어도 고려시대 이전의 천문도라고 나 교수는 주장했다.

이에 서지학적 분석이나 탄소측정을 할 수는 없는지 물었다. 이에 나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확인해 봤다. 그런데 서지학적으로는 이 천문도와 비교할 수 있는 다른 문헌 자료들이 없어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또 탄소 측정은 문헌 일부를 잘라내 측정해야 하는데 딱 한 장인 것은 물론 천문도에 여백도 별로 없어 역시 불가능했다. 천문도 발전 계통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어쨌든 최소한 고려시대 이전의 천문도를 확인하는 수확을 우리는 거둔다.

성변등록 조선시대, 혜성의 변동을 그림으로 상세히 기록했다. 세계에서 오직 하나뿐이다.
성변등록조선시대, 혜성의 변동을 그림으로 상세히 기록했다. 세계에서 오직 하나뿐이다. ⓒ 연세대 학술정보원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성변등록(星變騰錄)>이다. 다시 말하면 관상감에서 혜성, 객성 등 천체의 이상 현상을 관측 기록한 문헌이다. 특히 1759년 3월에 헬리혜성을 관측한 기록은 현재 전하는 기록 중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혜성을 기록한 것은 많지만 그림으로 자세히 그린 것은 유일한 것이어서 세계적인 가치가 있다고 나 교수는 강조한다. 어쩌면 이 <성변등록(星變騰錄)>은 머지않아 국보로 지정될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밖에 나 교수는 조선시대의 과학자 홍대용에 대한 칭찬을 그치지 않았다. 나 교수는 "일본의 천문학자 오가와(小川晴久)는 연세대에 와서 일본의 유명한 천문학자 미우라 바이엔과 홍대용의 세계를 비교연구했다. 하지만, 그가 논문을 쓸 때는 미우라 바이엔은 빠지고 온통 홍대용 얘기로 일관했다. 그건 미우라 바이엔이 우리의 홍대용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 얘기 아닐까?"라고 말했다.

주해수용 조선시대 과학자 홍대용이 산법, 천문지리 관측과 측정을 기록한 주해수용
주해수용조선시대 과학자 홍대용이 산법, 천문지리 관측과 측정을 기록한 주해수용 ⓒ 연세대 학술정보원

홍대용 이전엔 중국에 짓눌려 감히 우주론을 말하지 못했지만 홍대용은 김석문의 지전설
(地轉說)을 받아 우주무한론을 주장한 대단한 학자라는 것이다. 나 교수의 천문학 얘기는 끝이 없다. 오랫동안 쌓아온 내공을 어찌 몇 시간 만에 다 털어놓을 수 있으리?

한 편에는 수학 관련 문헌을 전시했다. 홍대용이 쓴 <주해수용(籌解需用)>과 조선말기 철종 대의 천문학자 남병길이 지은 수학책 <산학정의(算學正義)>와 <무이해(無異解)>, <해경세초해(海鏡細草解)>와 측량책 <측량도해(測量圖解)>는 물론 직사각형에 관한 244개의 문제와 풀이를 수록하고 첫머리에 피타고라스정리를 설명한 <유씨구고술요도해(劉氏勾股述要圖解)>들이 있다.

전시 책임자인 학술정보원 김영원 국학자료실장은 "온고지신하는 마음으로 조선시대 과학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천문도와 혜성의 변화를 기록한 성변등록을 크게 알리고 보여주고 싶었다. 전시하고 보니까 학생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다만, 학생들이 문헌에 의한 수식계산을 직접 해볼 수 있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라고 전시 소감을 말했다.

역학이십사도해 김석문이 지은 역학서, 지전설(地轉說)을 제시하고 있다.
역학이십사도해김석문이 지은 역학서, 지전설(地轉說)을 제시하고 있다. ⓒ 연세대 학술정보원

천문유초 조선 초기 천문학 수준을 가늠케 하는 이순지의 천문학서
천문유초조선 초기 천문학 수준을 가늠케 하는 이순지의 천문학서 ⓒ 연세대 학술정보원

유씨구고술요도해 직사각형 관련 244 문제와 풀이 그리고 피타고라스 정리가 들어있는 조선말기의 학자 남병길의 책
유씨구고술요도해직사각형 관련 244 문제와 풀이 그리고 피타고라스 정리가 들어있는 조선말기의 학자 남병길의 책 ⓒ 연세대 학술정보원

나 교수는 지금 자신의 천문학 연구를 집대성한 전집 8권을 쓰고 있다고 한다. 곧 나올 그 첫 권이 바로 천문도 얘기다. 마지막 8번째 책은 우리 역사를 망라한 과학자 인명사전이라고 귀띔했는데 현재의 천문학 연구는 참으로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집 발간은 자신이 일생을 바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결국 후배 학자들의 연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득 담겨 있는 듯했다.

얼마 전 우리는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를 배출했다. 한 방송국에서는 이를 계속해서 중계했고, 많은 국민은 관심을 두고 지켜봤다. 하지만, 천문학에 대한 기초도 부실하고, 천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한 사람의 우주인 배출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 것인지 묻고 싶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진입을 바라보는 나라임이 분명하다면 이제라도 천문학 연구를 홀대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천문도#연세대 학술정보원#고문헌#나일성#성변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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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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