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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박정희 독재 치하에서 구성진 담시적 문체로 암울했던 시대를 향해 일갈했던 김지하 선생의 시 '오적(五賊)'을 다 알고 계실 겁니다.

 

가난과 억압으로 얼룩졌던 70년대, 권력의 상징이었던 다섯 도적(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들을 신랄하게 꾸짖음으로 인해 참지식인들의 사상의 통로였던 사상계(1970년 5월 폐간)가 폐간되었고 그 후, 오적들의 만행이 극에 달했을 때에도 그의 정신을 답습했던 젊은이들의 피 끓는 외침이 통한과 투쟁이 교차하는 여의도에 울려 퍼질 때 이 나라 민중은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말할 것도 없는 암흑의 80년대, 어두운 학보편집실에서 대자보를 만들며 오직 뛰고 있는 심장 하나 믿고 세상과 부딪치며 '시대의 새벽길'(정호승 시인 '부치지 않은 편지' 인용)을 찾던 그들로 인해 93년, 반만년 하얀 소매 적시며 기다리던 민주 대한민국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10여 년이 지난 후, 또다시 한반도가 이 땅의 젊은이들의 함성으로 뜨거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2002년에도 한·일 월드컵 때 그랬고, 효순이 미순이 사건 때도 화염병과 각목 대신 촛불을 든 더욱 성숙해진 이 나라의 청춘들로 인해 삼천리가 촛불의 물결로 뒤덮였습니다.

 

돌아보면 70년대의 항쟁의 현장에는 우리 부모님들이 계셨고, 80년대가 우리의 삼촌들의 연대와의 싸움이었다면, 2000년대는 우리들의 동생, 조카들이 붉은 한 손에는 촛불, 한 손에는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시대를 향해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70~80년대에는 너무 어려서 시대를 몰랐고, 90년대에는 IMF로 인해 망가진 나라 대학졸업하고 오갈 때 없어서 시대의 아픔보다 스스로 아픔이 더 컸었다는 거 이해합니다.

 

그렇게 힘들 게 얻은 직장, 아등바등 꾸려나가야 할 가정살림 때문에, 어느덧 불어난 뱃살 탓에 붉은 악마 티셔츠 입기가 민망해서 광장으로 뛰어나가기를 주저했다는 거 이해합니다.

 

조금 더 편안하게 직장생활해 보려고 대기업 회장 출신 대선주자의 손을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들어주었다는 거 또 이해합니다.

 

저녁마다 뉴스를 보면 내 부모님 세대에게 미안하고 동생들 조카들에게 미안해서 조는 척, 피곤한 척, 퇴근길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린다는 거.

 

하지만, 70년대 태생, 90년대 학번 친구들 보십시오. 이것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왜 이 시점에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연일 보도되는 부정비리로 얼룩진 뉴스를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는지…. 조·중·동 잡질만 가득한 쓰레기인 줄 알면서도 뒤적거리고 있는지….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인용하자면 이명박 정부는 오적의 '수괴(首魁)'입니다. 재벌과 고급공무원의 유전자를 타고 태어나 민생을 미끼로 고도로 진화된 사냥기술로 시대를 초토화 시키려는 '키메라'(종의 경계를 넘은 그리스 신화의 괴수)입니다.

 

지금 이 괴물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내장을 도려내려고, 대기업들의 손으로 운하를 파려고 합니다.

 

일본국왕을 '천왕'이라 부르며 독도의 수호신 이사부 장군을 비웃으려 하고 있습니다. 모국어도 잘 쓰지 못하는 이가 미국말을 가르치겠다고 하면서 민족의 큰 얼굴 도산 안창호 선생을 안창호씨라 부르고 있습니다.

 

근거 없는 졸속협상으로 전 세계가 거부하는 미국산 소를 우리의 마당에다 풀어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며 오적들의 홈그라운드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안 된다고 그러면 안 된다고 조금 밀쳤을 뿐인데, 우리의 조카들을, 동생들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촛불을 든 이 나라의 국민을 폭도로 몰아세우고 수갑을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70년대 태생, 90년대 학번 친구들이여!! 우리가 왜 아직도 분노하고 있지 못하는지, 이런 현실 앞에서 소주잔 기울이며 TV를 통해서만 확인하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70~80년대 그러지 못했다면, 부끄러워서 시청 앞 광장을 차창 넘어 지켜보고만 있었다면 이제는 화염병 대신 우리의 정당한 분노를 오적들의 수괴를 향해 던져야 합니다.

 

광화문 네거리는 오적들과 수괴의 꼬임에 빠진 어눌한 공안경찰이 가로막고 있을 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들에 손에 끌려나가면서도 끄지 못하는 촛불이 타올라야 할 곳입니다. 이제는 정당한 분노를 외치면서 서로의 어깨 걸고 나가야 할 우리들의 자리입니다. 이제는 그 자리를 70년대 태생, 90년대 학번!! 우리가 지킬 차례입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이 비에 젖어 있습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의 동상도 잠시 잠깐 내리는 이 비로 인해 흥건히 젖어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바라보십시오. 그의 눈빛은 조금도 비에 젖지 않았습니다. 결코 변질되지 않을 시선으로 이 현실을 내려다보시고 계십니다. 축 쳐진 우리들의 어깨를 두드리시고 계십니다.

 

이순신 장군의 눈빛처럼 빛나고 있는 이 촛불은 결코 꺼질 수 없습니다.

 

20080528  이재경


태그:#촛불집회, #촛불문화제, #소고기협상, #이명박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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