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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며 지난2월 전국 국토순례에 나섰던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단이 24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 도착해 마무리 집회를 열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며 지난2월 전국 국토순례에 나섰던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단이 24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 도착해 마무리 집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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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서울 보신각에서 만난 종교인 도보 순례단의 이필완 목사는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최상석 신부(성공회)도 까맣게 탄 얼굴로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문정현 신부는 옆에 있던 신자들에게 "흑인보다 더 까매지셨다"는 소리를 들었다. 

3천리 길을 강을 따라 걸었던 103일 동안의 흔적이다. 지난 2월 12일 김포 애기봉에서 발걸음을 시작한 뒤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따라 쉼없이 걸었다. 떠날 당시에는 영하15도의 뼛속까지 차오르는 맹추위였으나 어느덧 시간이 지나 피부를 검게 태우는 여름의 문턱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어젯밤, 덥수룩한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갔던 불교환경연대 명계환씨는 가게 주인에게 "돈은 있으세요?"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순례단의 한 회원은 "택시를 탔더니 젊은 친구니 그냥 걸어가라고 택시기사가 말했다"라면서 승차거부를 당한 사연도 들려줬다.

"한발 한발 걸으며 '운하 설계도' 역시 한걸음씩 지우고 또 지웠습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며 지난2월 전국 국토순례에 나섰던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단이 20일 서울 청계천을 지나 보신각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며 지난2월 전국 국토순례에 나섰던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단이 20일 서울 청계천을 지나 보신각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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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종교인 도보 순례단의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날이다. 오후 2시경,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당도한 순례단은 3백여 환영 인파의 환호소리와 함께 발걸음을 멈췄다.     

"한발 한발 걸으며 무지와 탐욕을 지우기 위해 참회하고 또 참회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록 지도 위에 그린 미몽과 망상의 메모일 뿐이지만, 머지않아 한반도 대재앙의 근원지가 될지도 모르는 '운하 설계도' 역시 한걸음씩 지우고 또 지우며 걸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지금 왜, 무엇이 되어,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생명과 평화의 길을 끊임없이 모색했습니다."

'생명의 강 모심 선언문 낭독'을 마친 순례단원들은 서로 바라보며 큰 절을 했다. 103일이라는 시간동안 매일같이 해왔던 서로에 대한, 그리고 강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절을 마친 사람들은 강을 따랐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는지 하나 둘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빨갛게 충혈된 눈을 애써 숨기던 이원규 시인은 옆에 있던 이필완 목사를 감싸 안았고, 이 목사의 눈도 어느덧 벌겋게 달아올랐다. 김민해 목사와 최상석 신부도 서로 등을 토닥이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지관스님은 기독교 신자가 선물해 준 십자가를 목에 걸고 아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강을 따라 걷다가 맑은 강물을 만날 때는 순례단의 온몸에도 생기가 돌았으며, 골재 채취와 각종 폐수로 죽어가는 강을 만나거나, 불과 2년 만에 죽음의 사막화가 시작된 새만금 갯벌과 마주칠 때는 그만큼 온몸이 아팠으며, 속울음을 삼켜야만 했습니다."

"경제만능주의에 젖어 강을 재물로 바치는 행위 막아야"

최상석 신부는 "경북 상주지역의 굽이친 강물과 백사장, 그리고 한강과 낙동강 하구의 수  많은 철새들이 기억에 남는다"라며 "강 길을 걸으며 생명의 강을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살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 신부는 "계속해서 말을 바꾸는 정부의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며 "우리가 출발하기 전보다 국민들의 마음이 많이 변한 만큼, 국민의 변화가 꿈쩍 안고 있는 정부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눈시울을 붉히던 이원규 시인은 "계속해서 운하 계획이 엉터리라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라며 "정부는 물론이고 우리 국민들도 경제만능주의에 젖어 생명의 강을 재물로 바치지 않게끔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시인은 "우리 국민들도 바뀌어야 한다"라며 "진정한 선진국이란 과연 뭔가, 국민소득 4만불에 물질만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뭔지 고민해 봐야할 시기"라고 주장했다.

김민해 목사는 "이명박 대통령은 사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다. 그를 보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라며 "하지만 미움이 있고 분노가 있으면 살릴 수가 없다. 오늘 걸으면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강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끝이 아닌 시작..."청계광장서 봅시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며 지난2월 전국 국토순례에 나섰던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단이 20일 서울에 입성, 한강을 따라 걷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며 지난2월 전국 국토순례에 나섰던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단이 20일 서울에 입성, 한강을 따라 걷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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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순례단원들은 "오늘로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출발"이라며 "다시 시작입니다"라고 외쳤다. 전국의 모든 종교·문화·시민·사회단체들과 국내외의 학계와 연구단체, 그리고 온 국민과 더불어 범국민적이고도 범지구적인 '운하 백지화' 운동으로 확산시켜나갈 계획이라는 것.

"지난 2월 12일 김포 애기봉을 출발하여 이 땅과 강물을 따라 흐르며 오늘 여기에 도착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도보순례는 위와 같은 일을 위한 작은 시작일 뿐입니다."

김민해 목사는 "우리도 오늘 열리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 문화제에 참여 한다"며 다음과 같이 작별인사를 고했다.

"저녁에 청계광장에서 봅시다."


태그:#도보 순례단, #한반도 대운하, #종교인,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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