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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은 국회의원이 좀 그래요~"

 

“그런데 아가씨 이번 결혼식은 어디서 하는 게 좋을까요? 힐튼에서 할까요, 아니면 워커힐에서 할까요?”

“전무님 생각은 어디가 좋겠어요?”

“…힐튼은 좀 그래요.”

“그럼 워커힐은요?”

“에~ 워커힐도 쫌 그래요~”

“그럼 어디가 좋을까요?”

“아가씨 정도 레벨이라면 국회의사당에서 결혼식을 거행해야~”

“어머!!”

“그런데 아가씨이~ 국회의사당은… 국회의원이 쪼옴 그래요.”

 

창작극 전문집단 ‘홍사(紅絲)’의 다섯 번째 작품 <거꾸로 놓인 사다리>에 등장하는 김 전무(김수헌)의 너스레가 일순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셰익스피어 번역극과 세계적인 히트작의 번역극이 주종을 이루는 대학로 연극판에서 갖은 어려움을 이겨가며 분투하는 홍사 극단의 활동이 눈부시다.

 

김 대표는 이번 연극에서는 그간 올린 무대화 경험에서 체득한 야유와 풍자 수법으로 성공지상주의의 그늘에 묻힌 가난한 가정의 서글픈 현실을 보여준다는 야심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의 총수 자리에 올라, ‘대통령의 자리보다 더 높은 자본의 반석 위’에 서보겠다는 야심의 소유자 김 전무는 정우(조종근-권영복)란 사원을 자기 성공의 머슴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정우의 가정 배경까지 날조해가며 대산 총수의 외동딸 수진에게 접근,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게 하기에 이른다.

 

유명한 빌딩의 한 층을 통째로 빌려가며 정략 연애에 갖은 공을 들이던 김전무와 정우는 드디어 열망하던 ‘약혼식 거행’이란 총수의 복음을 듣게 된다. 바야흐로 정우와 김 전무의 앞길에는 성공의 황금색 카펫이 찬란하게 빛나는 셈이다.

 

성공신화에 상처받은 자들을 위한 기적 

 

그런데 돌연 야망에 불타고 있는 정우 앞에 노가다꾼 아버지(윤준환)와 장애인 여동생 지민이(유재선-이정하)가 나타난다. 궁상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는 앞으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며 구질구질하게 우는 목소리로 지민이를 돌봐줄 수 없느냐고 사정한다. 성공 직전에 '지뢰밭에 갇힌' 듯한 상황에 처한 정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깊어간다.

 

정우는 수진과 김 전무의 희망대로 대기업의 총수 자리를 차지하는 교두보를 확보할 것인가, 아니면 못난 여동생과 치명적인 병에 걸린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뒷수발을 들며 살아야 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정우는 그러나 김 전무의 압력하에 자기 가족을 천재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처럼 꾸미려 일대 요절복통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든 비밀이 백일하에 들통나고 만다. 수진이는 정우에게 저 못난 가족과 헤어지고 자신을 선택해야 한다고 반협박조로 나온다. 이에 지민이는 정우에게 가족처럼 함께 살자고 몸부림 친다. 사회적 통상에서 저능아에 가까운 순둥이 지민이가 수진이류의 인간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은 인간의 원초적인 유대감을 강렬하게 자극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정우가 보여주는 최종 선택은 일종의 기적처럼 느껴진다.

 

 

<한발장 대 장발장>, <야부리 스토리> 등 꾸준히 창작극의 무대화에 힘써온 극단 홍사의 <거꾸로 놓인 사다리>는 사랑티켓(www.sati.or.kr)의 공식후원작으로 선정되어 현재 대학로 홍사 소극장에서 장기 상연 중이다.


태그:#창작극, #홍사, #대학로 소극장, #김노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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