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89년 11월 20일에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은 ‘자신의 견해를 형성할 능력이 있는 아동에 대하여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자유스럽게 표시할 권리를 보장하며, 아동의 견해에 대하여는 아동의 연령과 성숙 정도에 따라 정당한 비중이 부여되어야 한다’(12조)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1990년 11월 20일에 비준하였고, 미국과 소말리아, 동티모르를 제외한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비준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어린이 청소년들의 기본적인 권리에 관한 전 지구적인 보편적 규범이다.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한 우리나라 헌법 제6조 1항에 따라 아동권리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규범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국제 조약과 헌법의 정신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자기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의 의견을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급식에 사용될 쇠고기는 물론, 라면이나 조미료나 패스트푸드 등을 통해서 자신들의 건강과 생명이 직접 영향받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어떤 의사표시도 못하게 하는 나라는 이미 정상적인 민주 국가가 아니다.

 

촛불문화제 등 미국산 광우병 우려 쇠고기 수입 개방에 반대하는 운동이 한창인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표시할 권리를 보장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 아동권리협약의 국제법적 효력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교육부와 교사들의 고유한 교육적 권한이자, 살아있는 수업을 위한 중요한 요건이기도 한 시사 문제 관련 교육활동의 자유조차 가로막으려 하고 있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광우병 우려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중고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표시하는 행위를 막고 있다. 자발적이고 평화적인 의사표현이 큰 위법행위나 되는 것처럼 참가하지 못하게 종용하고, 불이익을 주겠다고 압박을 주거나 가정통신문을 보내면서까지 촛불문화제 참가를 저지하려 하고 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비준도 거치지 않고 수많은 국민들은 물론 여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반대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협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부 여당의 강경한 입장으로 인해, 국회의 비준까지 거친 국제법과 학생들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정부의 그러한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육부와 교육청과 학교의 논리에 설득당하거나 승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의사표현이나 외침은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지극히 정당한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들은 중고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함께 동반하여 가족 단위로 촛불시위에 참여하여 수입 개방 반대를 외치고, 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의 위험성을 자녀들이 인식하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촛불 문화제 참여를 불온시하거나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기회를 무조건 봉쇄하겠다는 시대착오적인 조치들은 실효성도 없을 뿐 아니라 학교와 교사들을 아이들의 웃음거리로 만들기 십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위해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밤늦게까지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도록 권장하고 부추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학생들의 의견에 귀기울이면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좀 더 ‘어른답게’ 대처해야 함을 역설하고자 함이다. 교과부나 교육청이, 인터넷을 찾아보면 너무나도 쉽게 확인되는 사실들을 왜곡하면서까지 학생들의 의문이나 불안감을 내리누르거나, 교사들을 동원하여 학생들 휴대폰의 문자메시지를 뒤지도록 하는 등의 유치한 대응을 중단하고, 일국의 정부기구다운 처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나 교육청 또는 교육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학생들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판단하며,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쇠고기 수입 개방에 대한 찬반의 특정 입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정부의 입장을 주입하는 것을 뛰어넘어, 먹을거리에 대한 학생들의 시각과 관점을 바로 세우고 가치관을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교육적인 마당을 펼쳐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논란을 크게 뛰어넘어 좀 더 본질적인 의미에서 참다운 교육을 위한 계기로 활용될 수도 있다. 즉, 언제 발생할 지 알 수 없는 일반적인 광우병 위험에 대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이해와 경각심을 높이고, 현대인들의 과도한 육식 문화와 그로 인한 공장 식 가축 사육 시스템의 문제점, 패스트 푸드 등 지나치게 가공된 음식문화의 문제점 등을 생각해 볼 기회를 줄 수 있음은 물론, 좀 더 생태적이고 대안적인 먹을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학교 수업시간에 미국산 쇠고기나 광우병의 위험, 좋은 식습관과 먹을거리 문제 등에 관한 조사 탐구나 토론 수업을 함으로써 가능해질 수도 있고, 좀 더 적극적으로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을 통해서 학생들의 의견이 좀 더 공식적이고 직접적으로 표출 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가능해질 수도 있다. 품격 있는 TV 정책 토론을 마련하여 학생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물론, 이 모든 ‘어른스러운 조치’를 위해서는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편에 서 있다는 진정성과, 문제가 있다면 재협상이라도 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세계 경제포럼(WEF)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제 기구들에 의해 높은 국가 경쟁력으로 인정받는 나라이자, OECD국가의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 학업성취도 비교연구(PISA)에서 우리나라와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는 핀란드에서는, 정부는 물론 범 사회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생각과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어른들의 당연한 책무로 되어 있다.

 

핀란드 헌법 제6조에는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 …… 어린이는 동등하게 그리고 개인으로서 대우받아야 하며, 자신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그들의 발달 단계에 상응하는 정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고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관련 조항이 거의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핀란드 정부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정부 부처들은 물론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참여하는 국가 프로젝트로 ‘청소년 참여 프로젝트’(NATIONAL YOUTH PARTICIPATION PROJECT)를 추진하였다. 청소년들이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사회참여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배우고 핀란드 사회를 이끌어 갈 능동적인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이처럼, 어린이와 청소년의 표현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정치인과 교육자 등 사회의 모든 어른들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견해에 관심을 기울이고 배려를 하는 가운데서 학생들은 핀란드를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 있는 나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동량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은 자신들 스스로, 때묻지 않은 어린이 청소년들의 눈 앞에 진정으로 부끄럽지 않은 어른들인지 성찰하고 어린이 청소년들의 입장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교과부 장관이나 교육감을 비롯한 모든 교육자들은 국제적으로 인터넷과 정보통신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독재정권이 사용했던 재갈을 물리려 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한국의 모든 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와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궁금증을 털어놓고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조사하고 탐구하여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자신들이 먹어야 할 학교급식에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가 사용되지 않도록 할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어느 나라도 먹지 않을 광우병 위험 소를 수입하는 쓰레기 처리장이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재기발랄한 창의성과 기(氣)를 살려주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태그:#이명박, #광우병, #학생권리, #표현자유, #아동권리협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울시 교육위원입니다. 교육과 관련된 좋은 소식을 널리 공유하고자 합니다. 오마이뉴스와 같이 일반인들의 관심사안들을 기사로 작성해 올릴 수 있는 매체가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믿고 새로운 흐름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전교조신문 등 신문을 만들면서 가졌던 감각으로 새로운 교육관련 소식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