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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이 요즘 새로운 녹색관광지로 뜨고 있다. 사진은 전북 고창 학원농장의 청보리밭 풍경이다.
 보리밭이 요즘 새로운 녹색관광지로 뜨고 있다. 사진은 전북 고창 학원농장의 청보리밭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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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에는 어릴 적 추억이 서려 있다. 보리밥, 보리떡, 보릿국, 혼식 등. 배고프고 코끝이 찡한 시절의 이야기들이다. 요즘 이 보리가 새삼 인기다. 보리밥과 보릿국 등 보리가 들어간 음식이 웰빙식품이라며 인기다.

궁핍했던 시절, 허기를 달래주던 보리가 웰빙식품이 된 것이다. 옛날 흔했던 보리밭은 새로운 녹색관광지가 되고 있다.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더니, 보리도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보리밭에 갔다. 그것도 보리밭이 아니다. 27일 전라북도 고창에 있는 학원농장엘 갔다. 고창은 예부터 보리를 많이 심었고, 또 보리농사가 잘 되는 지역이다. 고창의 옛 지명인 모양현의 '모'자는 보리를 뜻하며, '양'자는 태양을 뜻하는 것으로 '모양현'이 문자 그대로 보리가 잘 자라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예슬이가 보리밭 사잇길에 쭈그리고 앉아 보리피리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예슬이가 보리밭 사잇길에 쭈그리고 앉아 보리피리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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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피리를 불고 있는 예슬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실감했을 것이다.
 보리피리를 불고 있는 예슬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실감했을 것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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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는 11월 초에 파종을 하면 11월 말 경에 잔디 모양까지 자란다. 그 이후 성장을 잠시 멈추고 눈 속에서 새 봄을 기다린다. 보리가 얼어 죽지 않도록 밟아주는 것도 그 때다.

겨울 추위를 이겨낸 보리는 새 봄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하고, 4월 초에는 이삭이 나온다. 이때부터 5월 중순까지 보리가 누렇게 익기 시작한다. 보리밭이 제일 아름다운 때다. 바로 이때의 보리를 '청보리'라 부른다. 5월 중순부터 익기 시작한 보리는 6월 초에 수확을 한다.

우리나라에 보리밭은 적지 않다. 하지만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에 있는 학원농장 청보리밭의 아름다움은 으뜸이다. 여인의 곡선을 닮은 호남땅 특유의 부드러운 구릉을 뒤덮은 청보리밭은 절로 감탄사를 터뜨리게 만든다.

초등학교 4학년인 예슬이도 그랬다. 보는 순간 감탄사를 토해냈다. 그것도 잠시. 바로 보리피리 만드는데 더 관심을 가졌다. 솟아오른 보리의 목을 조심스럽게 뽑아내더니 알아서 흠집을 냈다. 그리고 입술에 물고 불어본다. 그러나 헛바람 새는 소리만 들릴 뿐 피리소리는 들리질 않는다.

"아빠! 어떻게 해요? 소리가 안 나요. 아빠가 해 보세요."

'숙달된 조교'로서 보리피리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는 모양이다. 똑같이 하는데 대체 피리소리가 나질 않는다. 두 번, 세 번…. 짜증이 날 때쯤 해서 드디어 보리피리 소리가 새어 나온다.

예슬이가 몇 번의 실패 끝에 보리피리 몇 개를 만들고 쾌재를 부르고 있다.
 예슬이가 몇 번의 실패 끝에 보리피리 몇 개를 만들고 쾌재를 부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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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 공기를 잔뜩 모아서 힘껏 불고, 피리소리를 듣더니 흐뭇해한다. 드디어 해냈다며 으스대는 표정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부러워한다. 예슬이는 거기에 관심이 없다는 듯 일부러 모른 척 한다.

예슬이가 내는 보리피리 소리는 삐-하고 났다. 나중에 만든 다른 것은 뿌-하고 났다. 뿌-웅-하고 나는 것도 있다. 한하운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보리피리 소리를 '피-ㄹ 닐니리…' 하고 묘사를 했지만 그런 소리는 나질 않는다.

예슬이는 보리피리 세 개에 만족하지 않고 네 개, 다섯 개를 만들었다. 그것도 부족한지 농장 보리를 다 뽑을 태세다. 보리밭 구경에는 관심도 없다. 온통 보리피리에만 신경을 쓸 뿐이다. 동행하지 못한 언니 것까지 챙겨야 한다면서 아예 발걸음을 멈춰 버린다.

연녹색의 보리밭이 예슬이의 놀이터가 돼 버렸다. 마음결도 연녹색으로 부드럽게 물들고 있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봄바람이 차가웠지만 보리피리 앞에서 맥을 못 추는 것 같았다. 예슬이는 보리밭 하나에서 일상탈출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예슬아! 거기서 뭐하고 있어?"
 "예슬아! 거기서 뭐하고 있어?"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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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피리 만들고 있는데요?"
 "보리피리 만들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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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보리피리, #학원농장, #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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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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