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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타이완에 도착한 지 1주일 지나고 처음 맞는 토요일이다. 아주 맑은 아침이나 지난밤의 바람소리는 아직도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오늘은 켄딩국립공원을 한 바퀴 돌며 관광하는 짧은 여정이다. 아침 늦게 11시 정도에 숙소를 나섰다.

켄딩국립공원은 타이완 최남단에 있는 자연경관보호구이다. 제1의 관광지답게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호화스러운 리조트가 있으며 다양한 숙소가 많이 있다. 26번을 타고 내려가니 에메랄드 빛의 바다와 하얀 모래가 수백 미터 어울려져 있다. 해수욕장을 지나자 해면에 거대한 기암이 마치 선박처럼 솟아 있는 촤판스(船帆石)가 나온다.

해면에 솟아있는 거대한 기암 촤판스 앞에서
 해면에 솟아있는 거대한 기암 촤판스 앞에서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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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최남단의 곶에 있는 해안공원 어롼비(鵝饗鼻)로 갔다. 공원은 바다와 울창한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정표와 함께 산책로가 아주 잘 조성되어  있다. 언덕 위에는 타이완 최대 규모의 하얀색 등대가 바다를 향해 바라보고 있다. 어롼비공원에서 나와 언덕 위로 올라가니 바닷가에 바람과 모래가 만들어낸 자연의 조형물 펑추이사(風吹沙)가 아름답게 눈앞에 펼쳐진다. 바람이 어찌나 강하게 불던지 앞서 나가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바람과 모래가 만들어낸 조형물 펑추이사
 바람과 모래가 만들어낸 조형물 펑추이사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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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 가격과 비슷한 식당의 맥주 값

언덕을 내려가는데 어찌나 강한 맞바람이 부는지 자전거가 휘청대고 잘 내려가지 않을 정도이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니 해안을 따라 온갖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펼쳐있다는 자러수이(佳樂水)가 나온다. 모든 차와 자전거는 주차해 놓고 그곳서 제공한 관광트럭을 타고 들어가니 해안가를 따라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생긴 다양한 기암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다.

자러수이의 기암
 자러수이의 기암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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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러수이 입구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가보니 돼지꼬치구이를 팔고 있었다. 몇 개 사들고 바로 옆 식당으로 갔다. 맥주와 함께 점심을 시켰다. 음식을 잘 몰라 주로 차미엔(沙麵)과 차판(沙飯)을 먹었다. 차미엔은 우리의 가락국수 같은 것이고 차판은 볶음밥 같은 것이다. 반찬이 딸려 나오기는 커녕 물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맥주를 마셨다. 일반적인 식당 뿐 아니라 관광지에서도 식당의 맥주값은 편의점에서 파는 가격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술이 없는 식당도 여럿 보았다. 이런 경우는 사다 주기도 하고 우리가 사갖고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식당에서 파는 맥주가 3000원이니 편의점에 비해 거의 3배나 받지 않는가?

200번 도로를 타고 헝춘(恒春)으로 가니 처음으로 높은 언덕이 나타난다. 헝춘을 지나 다시 켄딩으로 들어오니 우뚝 솟은 따지엔산(大尖山)이 보인다. 산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산 정상이 눈앞에 보이는 곳까지 갔다. 산 정상은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다. 전망대에 오르니 3면의 바다가 보인다. 서쪽은 타이완해협, 남쪽은 바시해협 그리고 동쪽은 태평양. 산 위에서 숙소로 내려오는 길은 환상 그 자체였다. 힘들게 오랫동안 올라간 노력의 대가를 짧은 시간에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을 만큼 짜릿함을 느끼며 내려왔다.

우뚝 솟아있는 따지엔산
 우뚝 솟아있는 따지엔산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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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 남녀성기 노출한 부조물

2월 17일. 이제부터 힘든 여정만 남았다. 어제 일부 경험하였지만 마치 우리나라의 태백산맥과 같이 타이완도 남북으로 길게 산맥이 형성되어 있다. 영토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으나 우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2000m 급 이상의 산이 수두룩하다. 서쪽은 언덕이 거의 없는 평지였으나 이제 서쪽에서 동쪽으로 넘어 가려면 이 산을 넘어야 한다. 더욱이 동해안은 산을 깎아 도로를 개설한 곳이 많아 높은 언덕이 많다.

오늘 가야할 길이 멀어 8시에 출발하였다. 26번 도로를 타고 처청까지 되돌아 나가 199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갔다. 길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무단에 들어서니 마을 입구에 원주민의 활동상을 조각한 아치형의 조형물이 우리를 맞이한다. 특이한 것은 한쪽 기둥 네 면에는 남자의 벌거벗은 상이 조각되어 있고, 다른 한쪽은 여자의 벌거벗은 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성기의 표현을 남녀 모두 사실적으로 나타내었다. 아마도 외침이 있을 때 남녀가 함께 싸운 것 같고 절대 남녀차별이 없는 원주민 사회인 것 같다. 타이완의 인종은 청나라시대 때 본토에서 이주한 본성인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주한 외성인 그리고 말레이폴리네시아계 원주민으로 구성되는데 원주민의 비율은 2% 정도로 매우 적다.

 무단 입구의 조형물
 무단 입구의 조형물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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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낭패를 보다

무단을 지나 산마루에서 갈림길이 나섰다. 오른쪽 도로 199甲은 동해안 수하이(旭海)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9번 도로에 있는 소우카로 가는 길이다. 전체지도를 보니 수하이에서 다렌(達仁)으로 가는 해안도로가 공사 중으로 나타났으나 지역지도에는 완성된 듯이 나타나 수하이로 향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곧 우리를 매우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했다. 내려가는 길은 환상 그 자체였다. 그 높은 산에서 마을까지 계속 내리막인 것이다. 길을 따라 가니 파출소가 나오고 더 이상 길이 큰 길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물어보니 다렌으로 가는 도로는 아직도 공사 중이라며 자전가로 가기에는 힘들다는 것이다.

엄청 난감하였다. 내려왔던 그 길을 생각하면 다시 올라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마침 산마루에서 보았던 자전거를 타고 오는 젊은이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하였다. 다행히 그들과는 어느 정도 영어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었다. 파출소에 들어가 혼자 있는 순경에게 무어라 말하더니 나와서 주변에 어울려 있는 마을 사람에게 산마루까지 차를 태워줄 사람을 찾는다고 한 것 같다. 그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달라기에 그럴 수 없다고 하고 다른 사람을 찾고 있었다. 마치 한 젊은 사람이 나서더니 500위엔에 데려다 준다고 하여 자전거를 트럭에 싣고 그 높은 곳을 올라갈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소우카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여러 번 나타났으나 산 능선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경치는 무척 좋았다. 위성항법장치로 확인해 보니 오늘의 표고 차는 400m가 넘었다.

9번 도로와 만나 다렌으로 언덕을 내려가는데 맞바람을 맞아 순간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바람이 몹시 불 때는 속도를 줄여야 했다. 다렌을 지나 다위(大武)에서 타이마리(太麻里)로  갈 때 높은 언덕이 나왔으나 태평양의 아름다운 모습에 힘든 것을 느끼지 못하고 올라간다. 타이마리의 길고 긴 하얀 백사장의 해안선을 끼고 있는 해수욕장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포루투칼 사람들이 타이완을 호모사(Formosa)라는 애칭으로 부른 것이 이해가 된다. 호모사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이다.

타이마리 해변가에서
 타이마리 해변가에서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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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온천은 우리나라가 최고

타이마리를 지나 타이완 동남부의 대표 온천 휴양지인 지번(知本)으로 향하였다. 지번 입구에서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방이 필요하냐며 불러 세웠다. 무척 피곤하기도 하고 방도 구해야 하므로 그 청년이 제시한 것을 보았다. 과히 나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자 영어가 되는 아가씨를 불러준다. 아마 둘이 동업하는 것 같다. 호텔방 하나를 자기들이 관리한다며 후론트도 들리지 않고 바로 방을 보여준다. 한국에도 와 보았다하며 명함과 열쇠를 주고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한다. 방은 물론 사진으로 보았던 것과 비슷하였지만 관리는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 가격이면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에게 100위엔을 추가로 주고 온천표를 구입하였다. 나중 보니 그들 말대로 입장료는 200위엔이었다. 직접 구매할 가격의 절반을 주고 구입한 것이다. 그러나 그 온천이 기계고장으로 수리중이라 연락하니 오토바이에 태워 다른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 온천은 호텔 옆에 있던 그 온천과는 시설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물론 입장료도 더 비싼 300위엔이다. 그러나 그 표를 주고 들어갔다. 그들이 혹시 손해 보지 않았나하는 걱정이 든다.

수영복을 착용하는 것 까지는 알고 준비했으나 수영모까지는 준비하지 못했다. 없는 것을 어쩌나 그냥 온천욕을 즐겼다. 관리인이 다가와서 무어라 하지만 말이 안 통하니 그냥 간다. 남의 시선도 부담되어 조금 있다 나왔다. 역시 온천은 벌거벗고 사우나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우리나라가 최고다.


태그:#켄딩, #무단, #지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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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전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현 배재대 명예교수,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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