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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안셀마는 퇴직교사이다. 수업시간에 성행위를 묘사하며 자신을 조롱하는 학생의 따귀를 때린 일로, 용감하고 자부심 강한(교사로서) 그녀는 결국 퇴직서를 내고 말았다. 학생의 부모가 그녀를 비난하자 교장이 퇴직을 권고했으니 "퇴직 당했다"가 맞겠다.

 

이런 그녀에게 "학교에서 강제로 쫒겨난…"란 표현으로 조롱하는 남편도 있었다. 그러니 그녀의 결혼생활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

 

"파병되어 조국을 위해 싸우다 한쪽 발을 절게 되었다"는 남편의 명예스런 부상은 알고 보니 음주운전 때문이었고, 청혼하면서 내밀었던, 그리하여 그녀에게 "시가 없는 생활은 있을 수 없어"라고 말하게 했던 남편의 '자필 시집'은 알고 보니 남의 작품을 토씨하나 빠뜨리지 않고 베낀 것이었다.

 

이런 남편은  뻔뻔스럽게도 죽기 직전까지 어떤 젊은 여자를 유혹하고자 그 시들을 다시 베껴 쓰고 있었다. 이처럼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인 '결혼'과 '일'에서 뼈아픈 실패를 한 안셀마는 그리하여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아들과 딸이 있지만, 남편의 뻔뻔스런 유전자가 승리하는 바람에(안셀마의 표현대로라면) 남편의 성격까지 꼭 빼닮은 아이들은 쓸쓸하게 살아가는 엄마에게는 냉담하지만 죽은 아버지를 그리워하였다. 손자들도 무례하기는 마찬가지.

 

"감정이라는 환상은 그녀의 인생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여러 해 동안 그녀는 공포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살았다. 겉으로는 살아 있었지만 안으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책속에서

 

이처럼 인생의 패배자로, 껍데기처럼 살아가던 안셀마는 어느 날 쓰레기통에서 누군가 버린 무지갯빛 앵무새 한 마리를 줍게 된다.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버림받은 자신과 같은 처지인, 검은 봉지에 담겨 쓰레기통에 내동댕이쳐진 앵무새 한 마리에 대한 안셀마의 사소한 동정은 꽁꽁 얼어붙은 그녀의 감정을 녹이고, 회색이던 그녀의 삶을 바꿔놓기 시작한다.

 

안셀마는 몇 년 전에 암으로 죽은 친구 '루이지타'의 이름을 따서 앵무새에게 '루이지토'란 이름을 붙여준다. 부모 말 잘 듣고 소심한 그녀의 어린 시절, 삶의 의미를 가르쳐줬던 친구 '루이지타'는 그녀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였던 것이다.

 

루이지타라도 있었다면 안셀마의 삶은 지금처럼 수분도 모두 빠져나가고 바짝 말라버려 쪼그라든 잎, 그리하여 누군가 조금이라도 힘을 주어 쥐면 산산조각 나고 말 것처럼 위태롭고 건조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래. 지금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야. 그렇지만 할 수가 없단다.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법이 사랑보다 더 중요하거든."- 책 속에서

 

안셀마는 루이지토와의 교감으로 예전의 활기를 되찾고 세상과의 화해를 시도하지만, 안셀마가 세상으로 다시 나오길 원치 않는 듯 세상은 그녀와 앵무새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 이 정도가 <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인적이 거의 없는 시간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안셀마가 앵무새 한 마리를 쓰레기통에서 발견하는 장면부터 시작, 루이지토와의 교감을 통해 지난 세월을 회상하는 전체적인 내용도 짧아 한두 시간 읽으면 될 만큼 짧은 이야기다.

 

그래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 아니다. 아니었다. 이 책은 결코 가볍고 쉽게만 읽혀지지 않았다. 앵무새와 안셀마의 상처는, 우리 사회 우리들의 끊임없는 고민이자 무거운 숙제였기 때문이었다.

 

'살아있는 어린왕자 수산나 타마로'의 짧고 강한 메시지, 그 울림

 

'실패한 결혼', '뛰어넘을 수 없는 자녀와의 세대차이', '와해된 가족', '이웃과의 단절', '물질주의에 짓밟힌 정신적인 것들', '교권상실', '버려지는 노인들',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하거나 버리는' 등이 이 짧은 어른동화에 압축되어 있었다.

 

인간의 말을 흉내 낼 수 있는 앵무새, 때문에 사랑받다가 어느 날 폐기처분되는 물건처럼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져 쓰레기통에 내팽개쳐진 앵무새 루이지토를 통해 작가 수산나 타마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나는 동물을 사랑한다. 또한 어린이들도 사랑한다. 신비하기도하고 끔찍하기도 한 삶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가 아니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분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분류헤서 사랑하는 것이 무슨 사랑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그런 도덕주의자들은 내 농장에 절대 들어올 수 없다."-수산나 타마로

 

'살아있는 어린왕자'란 별칭이 붙은 수산나 타마로는 신문도 텔레비전도 없는, 그리하여 흡사 동물원을 방불케 하는 시골의 한 농장에서 수많은 동물들과 어울려 산다고 한다.

 

그녀가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 중에는 <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처럼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을 주워온 것들도 많다고 한다. 이렇게 살고 있는 그녀가 자신이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 앵무새를 오래 지켜보고 나눈 교감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우리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은? 우리를 사람답게 하는 것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물어왔던 것처럼 우리들 역시 끝없이 고민하고 물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아니, 사람으로 살아가는 한은 결코 끝날 수 없는 문제들일 것이다.

 

하지만 앵무새 루이지토와 안셀마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 역시 우리의 몫 아닌가? 안셀마가 어느 날 쓰레기통에서 주운 검은 봉지 속 <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와 수산나 타마로와의 만남은 훨씬 의미 있어지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 <마법의 앵무새,루이지토>는 '마음가는 대로'로 국내 많이 알려진 '수산나 타마로'의 2008년 신작(레드 북스 4월 15일 출판)으로 공지영은 이렇게 말한다. 

"수산나 타마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와 따스함을 전해준다!"고.


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레드박스(2008)


태그:#수산나 타마로, #어른 동화, #살아있는 어린왕자, #생명경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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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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