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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가는 우리의 전통 소리를 전하는 소리꾼 김지희씨의 쌀타령 공연 모습.
 잊혀가는 우리의 전통 소리를 전하는 소리꾼 김지희씨의 쌀타령 공연 모습.
ⓒ 황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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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서 나왔네, 속 터져서 나왔네. 우리 쌀로 우리 먹을거리를 만들어 이웃과 나눠야지 물 건너온 것들이 밥상에 올라서야 되겄소?"

알록달록 몸빼바지를 입고 뽀글뽀글 아줌마 파마를 한 초보 농사꾼의 푸념이 늘어진다. 피인줄 알고 모를 뽑아버리고 냉해와 엘니뇨 등 자연재해로 걱정 가실 날 없으며, 농사가 잘  되어도 도지 내랴 기름 값 내랴 남는 건 없고, 수입 농산물로 등허리 굽는 우리네 농사꾼 횡성댁의 농사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어서 "나 같은 여장부도 신세타령이 나오네요"라며 객석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능청맞게 객석으로 엎어지고 농을 건네며 찰떡처럼 달라붙는 현대판 판소리가 울려 퍼진다. 흥겨운 우리의 소리다. 잊혀져가는 우리의 노랫소리가 아낙의 입을 통해 들려온다.

우리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즐겼던 쌀 타령을 구성지게 한 곡조 뽑아대는 소리꾼 김지희(35)씨. 그녀를 통해 단절된 우리의 전통문화가 다시금 되살아난다. 우리의 소리를 좀 더 체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전통공연예술단 '농음'을 창단한 김씨를 만나 그녀의 삶과 노래를 들어봤다.

그녀가 창단한 '농음'은 국악을 하면서 즉흥적으로 내는 꾸밈음을 나타내는 말로 농익은 소리, 농촌 소리를 표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즉 우리네 어른들이 농사지으며 흥겨움에 내뱉던 소리를 잊지 않고 후대에도 널리 전승하겠다는 김씨의 의지가 엿보인다.

"농요 같이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어르신들께 배웠던 소리들이 있는데 사라져가는 것이 아쉬워 그것을 발굴하고 현대적 요소를 가미해 새로운 세대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는 그녀의 말처럼 김씨는 이제 단순한 예술인이 아닌 문화전도사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기존의 판소리를 토대로 농촌의 문화와 공동체 이야기를 춤 잘추고, 소리 잘하고, 입심 좋은 김씨가 농사꾼의 목소리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농사꾼 이야기를 걸쭉하니 뿜어내는 김씨는 젊은 시절을 서울에서 보낸 '서울 아가씨'다. 그녀는 한양대 국악과에서 판소리를 전공하고 당대의 명창이던 김수연, 안숙선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중등학교 음악과 자격증까지 취득한 그야말로 앞날 창창한 젊은이였다. 특히 졸업 후 김씨는 각종 악극과 마당놀이, 뮤지컬에 출연하며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촉망받던 국악인 김씨는 2004년 귀농한 지금의 남편 유종호(37)씨를 만나 결혼하며 돌연 횡성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그리고는 농사꾼이 되기로 결심한다. 구성지게 노래를 읊조리던 여장부는 어느새 다소곳한 새색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집안에서도 어렵게 음악 공부시켰더니 이제 와 농사꾼이 되려 한다며 반대가 심했어요. 하지만 제가 워낙 고집이 있어 사람 좋고, 땅이 좋아 가겠다니 결국엔 부모님이 허락해 주시더라고요."

김씨가 횡성에 내려온 지는 올해로 5년째다.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또한 우리의 소리를 전국 방방곡곡에 전하고 있다. 그녀의 노래에는 자신의 경험이 담겨 있다. 농사라고는 전혀 모르고 지내던 여대생이 농사꾼에게 시집와 겪은 수많은 얘기들을 소리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익살스러운 농담 속에서 펼쳐지는 그녀의 노래는 비단 한번 웃음 짓고 넘기기에는 농민들의 애환을 너무나도 잘 담아내고 있다.

농촌에 불리한 정책으로 젊은이들이 죄다 도시로 빠져나가고 점점 고령화돼 일손이 부족한 농촌의 현실과 남아도는 수입쌀로 인해 정부에서 우리 쌀 수매를 중단하는 사태 등 우리 농민들의 고단한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직접 농사를 짓다 보니 농민들의 애환을 절실히 느끼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들의 아픔을 달래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쌀을 애용하도록 쌀타령을 목청껏 부르고 다니죠"라 말하는 그녀에게서 남다른 농촌사랑이 느껴진다.

김 대표는 "그동안 횡성댁의 쌀타령이라는 1인 마당극을 중심으로 전국을 돌며 활동했는데 앞으로는 제가 살고 있는 횡성에 예술적 정착을 하고 지역의 문화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한때 세인들의 주목과 화려한 무대에서 자신의 재능을 뽐냈던 김씨. 비단 지금은 화려한 무대 위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는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에 의해 꼭 말해져야만 할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는 아름다운 확성기를 자처한 김씨의 아름다운 용기에 한평생 농사만 지어온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김씨는 쌀부대를 앞에 두고 경쾌하게 몸을 흔들어대는 이른바 횡성댁의 '쌀사댄스'를 통해 우리 농민들의 시름과 아픔, 절망을 떨쳐버릴 것이다. 그리고 농사꾼의 한 사람으로서 건강한 우리네 식탁을 위해 값진 땀방울도 흘릴 것이다.


태그:#김지희, #쌀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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