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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香格里拉)의 첫 아침은 소박했다.

 

천장이 높은 식당, 장난감 같은 의자에 앉아 숯불을 끼고 먹는 빠빠 한 조각. 내피·외피 이중 점퍼를 입었는데도 몸을 옹송그린 채 입김 나오는 입으로 아침을 먹었다.

 

주인 여자는 소꿉장난하듯 주방에서 음식거리를 장만하고, 주인 남자는 전날 미처 다 팔지 못한 삶은 계란을 물수건으로 닦아 다시 소담스럽게 가게 앞에 내놓는다.

 

오전 9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거리는 썰렁하고 빵차는 보이지 않는다. 식빵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 미엔바오처, 빵차를 타고 벽탑해에 갈 계획이었는데, 빵차는 커녕 빵 부스러기도 보이질 않는다.

 

150위안으로(한화 약 2만원) 약속을 하고 택시를 탔다. 역시나 까치둥지 같은 헤어스타일의 청년 기사다. 세수도 않고 눈곱만 간신히 떼고 나왔을 법한 생김새다. 샹그릴라에 도착해 겨우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그 모습을 충분히 이해한다.

 

해발 고도 3100m의 겨울 샹그릴라는 바깥보다도, 난방이 되지 않는 실내가 더 추운 듯싶었다. 지난 밤, 남편과 아이는 겉옷을 두 개나 껴입은 채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었다. 이제 샤워는 이틀에 한번으로 족하고, 샹그릴라에 와서는 실내복조차 갈아입지 않았다. 위생과 청결을 벗어던진 지 이미 오래. 어느새 우리는, 지저분하다고 욕하던 이곳 사람들을 닮아가고 있다.

 

조용한 아침의 호수, 소도호와 벽탑해

 

택시를 내린 곳에서 오후 1시쯤 다시 만나기로 기사와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셔틀버스를 타면, 고산 호수인 소도호와 벽탑해를 두루 구경할 수 있다. 여러 대의 버스가 경내를 순환하는데, 자유롭게 경관을 둘러보던 관광객들은 적당히 가까운 곳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

 

차창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황량한 듯 아름답고 썰렁한 듯 따뜻하다. 험준한 산들이 높이 솟아 시야를 가로막은 것도 아니고 눈 시리게 푸른 자연도 아니다. 부드러운 실루엣의 구릉들이 엄마 젖무덤처럼 따뜻하고, 순한 황톳빛 대지는 모든 걸 품을 듯 넓어 보인다. 키 낮은 나무와 덤불숲에는 지난밤 내린 서리들이 꽃처럼 피어났다. 아침 햇살을 받아 마치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바람이라도 분다면 '짤그랑짤그랑' 소리가 날 것만 같다. 티베트 노래가 높게 흘러나오는 셔틀버스 안은 너무 포근하고 따뜻해 까무룩 잠이 든다.

 

문득 눈앞을 스치고 간 야크 떼에 화르륵 잠이 깬다. 그저 그림자였나 싶을 정도로 까맣디까만 야크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파리가 따로 없다.

 

쉬지 않고 중국어로 지껄이는 가이드 아가씨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지만,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버스가 서면 내리면 되고 둘러보다가 다리가 아프다 싶으면 수시로 오고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얼음이 언 소도호(屬都湖)는 고요한 호수였다. 우리는 호숫가를 따라 한참을 걸었는데, 가끔씩 커다란 소리가 호수 주변에 낮게 울려 퍼지곤 했다. 마치 호수 저 밑바닥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두꺼운 얼음이 아침 햇살을 못 이기고 쩌억 갈라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겁 없는 다람쥐가 바로 발치에까지 쪼르르 따라오고 있었다. 우리가 저를 헤치지 않을 거라는 걸 어찌 저리 철썩 같이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고산지대의 호수가 이렇게 평화로울 줄 몰랐다. 낮게 깔린 풀들, 야크 털처럼 축축 늘어진 나무들은 분위기를 더해 준다.

 

 

셔틀 버스를 타고 넓게 펼쳐진 갈색의 초원을 지나 벽탑해로 향했다.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저 풀들 덕분에 질 좋은 야크 젖이 난다고 한다.

 

벽탑해(碧塔海) 역시 호수인데,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재밌는 볼거리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즈음 두견화가 흐드러지게 피는데, 호수에 떨어진 두견화를 먹은 물고기들은 '벌러덩' 기절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다시 깨어나 헤엄을 친다는데, 그 좋은 구경 대신 우리는 그저 조용히 숨 죽인 호수만을 볼 수 있었다. 요란하거나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재빨리 구경을 마치고 우르르 다시 돌아간다. 우리는 소도호에서처럼 호숫가를 따라 걷다가 적당한 곳에서 버스를 타기로 한다. 나무 데크를 걸어가는 사람은 우리 셋뿐, 호젓하기 그지없다. 햇살은 한결 따사로와졌고 물비늘은 나뭇잎처럼 팔랑거리며 빛나고 있다.

 

이곳인가, 이상향 샹그릴라가…. '샹그릴라'는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서>에 나오는 이상향이다. 그곳은 사람이 늙지도 않고 갈등과 싸움이 없는 곳. 히말라야 산맥 어디쯤일 거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리하던 곳을 드디어 발견했다고, 1997년 중국 정부는 공식 발표했다. 그리하여 윈난 서북부의 중띠엔(中甸)은 샹그릴라로 이름이 바뀌었다. 중국이 발빠르게 중띠엔을 상업화시킨 면이 없지 않으나, 소설 속에 묘사된 샹그릴라와 중띠엔의 모습이 흡사하다고 하니 그렇다고 믿을 수 밖에.

 

'샹그릴라'는 티베트의 사투리로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 하늘에서 태양이 따스하게 내리 비추지만 아직 내 마음속에 둥두렷이 떠오르진 않는다. 적어도 이상향이라고 한다면, 보자마자, 아! 이곳에서 살고 싶다, 는 마음이 불끈 솟구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기에 나는 너무나 도시의 삶에 젖어 있고 문명의 때에 절어 있다. 맨발로 흙땅을 디디고 강가에서 빨래를 하며 살아갈 자신은 없다. 나는 이제 이상향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왔다. 화살표가 그어진 이정표를 만난다 해도, 그곳이 이상향일 거라 짐작할 만한 혜안을 가지고 있지를 않다. 갈등과 다툼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 그런 게 사라져 버린다면 뭔 재미로 살까, 싶다. 그렇다면 내 마음속에서 해와 달은 영원히 떠오르지 않을 것인가….

 

 

50분을 5분처럼 기다린 그 청년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생각에 빠져 한참이나 걸어왔는데 버스 타는 곳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 가족뿐이어서 호젓했는데, 이제 우리뿐이어서 불안해진다. 시계를 본다. 택시 기사와 약속한 시간에 대려면 빠듯할 것 같다. 온 길을 다시 돌아가면 한참이나 늦어질 게 뻔하다. 길을 믿고 서두를 수밖에.

 

걸음을 점점 빨리해서 걷는데, 맞은편에서 불쑥 여자가 튀어나온다. 마치 새가 날아든 듯 그렇게 느닷없이. 소수민족 의상을 입은 모습을 보니 이곳 관리인쯤 되는가 보다. 쭉 가면 버스가 있는지 손짓발짓으로 묻는다. 여자는 가만히 손짓을 해대는데 아무래도 버스가 없다는 표시 같다. 이런 젠장! 우리는 불안해 죽겠는데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미소만 짓고 있다, 검은 치아를 입안에 가득 문 채. 차를 지독하게 마신 게 틀림없다.

 

어쩔 수 없이 우리 가족은 그 길로 뒤로 돌앗! 한 다음, 두 세배 속도로 '앞으로 갓!' 할 수 밖에…. 숨이 차게 달려 셔틀버스를 탔지만 시간은 이미 1시를 훌쩍 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 편히 가자 싶어, 택시 기사가 웃돈 요구하면 까짓 거 주지 뭐, 하는 심정으로 안달하지 않기로 한다. 내가 버스 안에서 달린다고 더 빨리 도착할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소심한 마음에 이래저래 걱정이다. 터무니없이 올려달라고 하면 어쩌지, 약속도 안 지켰다고 성질 부리면 어쩌지, 아니 혹시 기다리다 가버렸으면 어떻게 하나, 허허벌판에서 택시 잡기도 힘들텐데….

 

다행히 택시는 약속한 자리에 있었다. 투정은커녕 기사는 미소까지 지어 보인다, 50분이 아니라 5분밖에 안 기다린 것처럼. 택시를 타고서도 내 머리는 굴러간다. 약속 시간보다 한참 늦었는데 저렇게 여유만만인 걸 보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 대체 웃돈을 얼마나 요구할 작정인감?

 

한참을 달리던 기사는 속도를 늦추면서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열심히 가리킨다. 티베탄 장족(藏族)들이 사는 마을인 것 같다. 얼씨구, 이제 관광안내까지? 아주 우리 같은 외국인을 봉으로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다른 저의가 깔린 과잉된 친절은 달갑지 않아 단호하게 거절했다.

 

드디어 시내에 도착하고 담판을 지어야 할 시간. 우선 약속한 150위안을 건네면서도, 웃돈은 얼마가 적당할까, 내 잔머리는 계속 돌아간다. 돈을 받자마자 기사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겠지? 10위안이면 될 것 같은데 더 달라면 어떻게 따지지, 말도 안 통하는데?

 

기사의 처분을 기다리듯 나는 눈치를 본다. 그런데 어라? 아무 말이 없다. 그저 내가 건넨 돈을 공손히 받을 뿐 그 이후의 시나리오가 더 이상 전개되지 않는다.

 

사람은 자연을 닮고 자연은 사람을 닮고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어쨌든 나는 10위안을 더 주었다. 10위안을 건네받던 그 기사의 눈빛! 난 그 눈빛과 표정에 가슴이 철렁 했다. 뭐랄까. 그 표정은, 간사스럽게 공손한 것도 아니고, 무례하게 당연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난 그런 표정은 정말로 처음 보았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두 가지 표정뿐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남보다 잘나서 깔보거나 남보다 못나서 비굴하거나….

 

지금 내 주변을 돌이켜 보면, 샹그릴라 청년의 그 눈빛과 표정은 찾을 수가 없다. 대체로 작은 근심과 걱정, 작은 미움과 작은 상처와 작은 욕망으로 얼룩져 있다. 그렇지 않은 얼굴을 보기 전에는 그걸 깨달을 수 없었다.

 

그을린 얼굴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던 그 청년의 눈빛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게 무슨 말이지, 눈빛이 다르다는 게 어떤 건지를 샹그릴라에서 절절하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순수하고도 형형하게 빛나던 눈빛. 지금 우리 모두는 잃어버렸지만 아주 오래전에 누구나 간직했던 눈빛.

 

샹그릴라에서는 동물도 사람도 자연을 닮는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무의 이끼처럼 휘날리는 털을 가진 야크, 새처럼 날아온 숲속의 여인, 아침 서리꽃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눈빛의 청년.

 

드디어 내 마음속에 해 하나 떠올랐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12월 13일에 떠나 중국 윈난을 여행하고 12월 24일에 돌아왔습니다.

이 글은 네이버카페 '중국여행길라잡이'에도 올립니다.


태그:#샹그릴라, #소도호, #벽탑해, #중국 윈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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