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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알프스의 융프라우요흐. 나의 가족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한가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알프스의 산정에서 최대한 시간을 보내다가 하산하기로 했다. 융프라우요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기로 했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우체국이 있다. 세계 각국으로 우편 엽서를 보낼 수 있는 우체국에서 신영이가 학교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내겠다고 한다. '탑 오브 유럽(Top of Europe)' 매점에서 융프라우요흐를 찍은 그림 같은 엽서 한 장과 스위스 국기가 그려진 빨간 볼펜을 샀다.

 

딸은 이 높은 산위에서 엽서를 보낸다는 사실에 너무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빠! 우리가 한국에 먼저 도착할까? 이 엽서가 선생님에게 먼저 도착할까?"

 

나는 우리의 몸과 이 엽서가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들어올 거라고 말해 주었다.

 

 

신영이가 엽서를 쓰고 아내가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나는 스핑크스 전망대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융프라우요흐역 주변 매점과 식당에 비해 이 통로는 비교적 한가한 편이었다. 융프라우요흐의 암반을 뚫어서 만든 길다란 땅굴이 개미굴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부는 보통 지상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지만 이 통로의 위쪽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스핑크스 전망대의 높이는 3571m. 여행자들이 융프라우요흐에서 올라가는 가장 높은 위치이자 내가 사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높이이다. 고속 엘리베이터는 전망대까지 108m를 순식간에, 정확히 25초 만에 올라갔다. 이 새로운 2기의 엘리베이터는 1996년 6월에 새로 만들어졌고, 이 엘리베이터 옆에는 1940년대에 제작된 과거의 엘리베이터가 보존되어 있다. 과거의 엘리베이터도 버리지 않고 이 높은 산의 역사로 만드는 그들의 안목이 돋보인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스핑크스 전망대 테라스를 향한 나선형 계단이 있고, 그 오른편에는 고급시계를 파는 시계가게가 있다. 가게의 점원도 한국 젊은이이고, 그 가게의 시계를 차고 사진으로 서 있는 광고모델도 한국의 인기 연예인이다. 가끔 외국 젊은이들의 키스 세례를 받는 것이 민망하지만, 알프스 산정의 한국 연예인은 기념사진 모델로 꽤 인기가 있었다.

 

 

드디어 나는 스핑크스전망대 테라스로 나왔다. 아까 클라이네 샤이데크(Kleine Sheidegg)에서 보았던 작은 점이 이 스핑크스 전망대였을 것이다. 격자 모양의 철제 바닥 밑으로 융프라우의 설원과 깎아 만든 듯한 절벽이 바로 내려다보였다. 아찔한 발아래의 정경을 보면서 비로소 내가 높은 높이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무수히 뚫려 있는 격자의 구멍 사이에 구름이 있었고, 전망대의 둥근 돔 위에도 구름이 내려앉아 있었다. 마치 안개같이 보이는 희미함은 바로 구름이었다. 그 구름 사이에는 최고 시속이 250km에 달한다는 알프스의 강풍이 넘나들고 있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1924년에 지어진 휴게소가 있었는데 그만 화재로 소실되었고, 3년간의 난공사 후 1970년에 이 자리에 들어선 것이 바로 스핑크스 전망대이다. 1996년에 개축된 이 복합건물에는 전망대 테라스 외에도 유럽의 방송전파 중계소와 천체관측소, 상대성원리 연구소가 함께 들어서 있다.

 

그래서 이 전망대 건물의 옥상에는 저녁에 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천체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물론 아쉽게도 여행자들은 접근할 수 없다. 이 복합건물의 외벽은 융프라우에 어울릴 정도로 인상적이다. 건물 외벽은 돌을 벽돌같이 만들어 쌓았고, 번개가 칠 때 발생하는 전력을 저장하는 수많은 철끈이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이 전망대 테라스에서 동서남북 모든 방향의 알프스를 즐겨 감상했다. 아침에 그리도 맑던 융프라우 산정에 구름이 몰려왔다가 지나가고 있었고, 하늘은 잠시 얼굴을 보였다가 다시 구름 사이로 몸을 숨겼다. 나는 구름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날씨가 흐린 날 융프라우에 오른 사람들은 융프라우 봉우리를 구경도 못한 채 사진만 찍고 내려가지만, 나는 융프라우에 구름이 걸친 모습이라도 감상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눈앞에 4158m 높이의 융프라우 정상이 떠억 버티고 서 있었다. 만년설에 쌓인 고봉이 나의 시야 전면을 압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대자연을 대하며 가슴 벅찬 느낌을 만끽해 보았다. 융프라우의 왼편에는 4105m 높이의 묀히(Monch) 봉이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산세가 완만하지 않고 깎아지른 듯한 장엄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산봉우리의 만년설은 선글라스를 끼고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부셨다.

 

전망대 테라스 격자 바닥 아래로는 모두 3000~4000m에 달하는 고봉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고, 그 사이로 빙하 줄기가 길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지구의 산하가 모두 내 발 밑에 있는 느낌이다. 나는 나를 둘러싼 거친 삼각형 모양의 알프스 봉우리들이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눈을 쌓아놓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서 있는 스핑크스 전망대는 피라미드를 지키려고 서 있는 '스핑크스'라고 생각했다.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까지 걸어가는 사람들이 설원 위의 점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저 봉우리를 돌아서면 또 다시 새로운 풍경이 여행자들을 압도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념을 가지고 눈 위를 걷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 딸이 융프라우요흐의 매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는 그 쪽으로 발을 뗄 수는 없었다. 설원 위의 하이킹이 가능하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미리 여정을 준비했을 것인데,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

 

나는 스핑크스 전망대의 매서운 바람을 뒤로 하고 실내로 돌아왔다. 신영이의 엽서에는 선생님께 보내는 글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신영이는 길다란 통같이 생긴 붉은 우체통에 엽서를 고이 넣고 즐거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이 사랑스런 알프스에서의 마지막을 한국 라면을 먹으며 장식하기로 했다. 우리의 수중에는 융프라우요흐 매점에서 한국의 매운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무료 쿠폰이 3장이나 있었다. 매운 컵라면은 공짜지만, 뜨거운 물 가격이 4 스위스 프랑, 젓가락 가격이 1.5 스위스 프랑이나 했다.

 

이 가격이 매점에 한글로 적혀있는 것은 반가웠지만, 그 가격 자체는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마실 물이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가져 온 비싼 물이라지만, 관광대국 스위스답게 모든 것, 작은 것 하나하나에 돈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알프스가 너무 아름답기에 이 높은 물가가 용서되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라면을 너무나 좋아하는 신영이가 예상 외로 컵라면을 먹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점심식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따뜻한 물까지 따라서 가져온 컵라면 한 개를 반납하러 매점 쪽으로 갔다.

 

매점 앞 식당에는 단체로 패키지여행을 온 한국 관광객들이 모두 모여서 컵라면을 먹는 일대장관이 연출되고 있었고, 그 옆에서 유럽의 관광객들도 젓가락질을 해가며 매운 라면을 정말 맛있게 먹고 있었다. 매점 앞은 매운 라면을 사려는 외국인들로 혼잡했고, 한 중동계 외국인이 컵라면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우리의 맛있는 컵라면을 그에게 그냥 선물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따뜻한 물까지 담겨 금방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을 그에게 주었다. 그는 나에게 정말 고맙다며 밝게 웃었다.

 

 

그런데 우리 자리로 돌아와 보니 신영이가 엄마의 컵라면을 뺏어 먹고 있었다. 나는 내 컵라면의 라면 면발을 신영이에게 나누어 주었다. 신영이는 스위스에서 라면을 먹는다는 사실을 너무 신기해하고 있었고,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라면을 먹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외국 여행 시에 그 나라 음식만을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래야 그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3500m 높이의 알프스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은 정말 끝내주게 맛있었다. 자극적인 라면 스프가 녹은 국물이 잎 안에서 꿀물인양 맴돌았다. 아마도 눈쌓인 설원을 바라보며 따뜻한 국물과 면발을 먹는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을 것이다.

 

나는 휴지통에 적힌 한글 설명문을 보고 다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라면 먹고 남은 국물은 휴지통에 버리지 말라'는 설명문이었다. 라면 국물이 너무 맵고 자극적이어서 많은 한국인들이 라면 국물을 휴지통에 버렸던 모양이다. 평소에 라면 국물을 다 마시지 않는 나는 국물을 다 마셔버리고 컵라면 통을 휴지통에 던졌다. 하수를 산 아래의 그린델발트(Grindelwald)까지 보내어 처리하는 이곳을 괜히 더럽히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컵라면을 마지막으로 융프라우요흐를 떠나기로 했다. 그린델발트로 가는 기차시간을 확인하며 우리는 융프라우요흐 역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내 옆의 갈색 머리, 파란 눈의 어린 아이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의 볼에 생긴 주근깨가 귀여웠다. 이 아이의 엄마는 고산증 때문에 기운이 없었다.

 

하산하는 기차 속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잠이 들었고, 객차 안은 조용했다. 왜 모두 잠이 들었을까? 높은 산에서의 고산증 때문일까? 고산증 때문에 융프라우요흐에서 신체가 피곤했기 때문일까? 기차 안에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어서 덥기 때문일까? 아니면 객차 내에 사람이 많아 이산화탄소 농도가 너무 높기 때문일까?

 

신영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 골아 떨어졌고, 아내도 잠이 들었다. 그런 가족을 찍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졸게 되었다. 눈을 떠 보니, 어느새 기차는 묀희 봉의 땅속을 나와 지상의 클라이네 샤이데크를 향하고 있었다.

 

언제 다시 융프라우요흐에 다시 오를 수 있으려나? 그게 언제쯤이 될까? 그때 나는 융프라우에서 잠을 청하며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 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7월 여행의 기록입니다.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스위스, #융프라우요흐, #스핑크스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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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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