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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이야기를 해보자. 이념적인 색깔은 보통 좌우파라는 분류방식이 흔히 사용된다. 이념의 코드가 확실하게 다를 때 그 구분은 더욱 선명하다. 남북문제도 그 중 하나다.

 

남북문제야 말로 사실 '코드'가 확실하게 갈리는 쟁점이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미디어는 미디어대로 자기 색깔과 주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차별성이 분명한 쟁점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개성공단-북핵 연계 발언을 들어 북한이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 남측 당국자들을 추방한 데 대해 신문들의 입장을 크게 세 가지로 갈렸다.

 

'햇볕신문' 대 '강풍신문' 대 '무지개신문'

 

첫째 부류는 북한의 추방조치에 대한 북한 측의 책임을 물으면서도 과거 정부에서 이뤄진 남북 관계의 진전을 애써 무시하고 이른바 '상호주의'에 입각해 북한과의 관계를 경색시키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과거 회귀적인 대북정책에 보다 큰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북한이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에서 결국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과의 공존을 중시하고,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여기에 속한다.

 

두번째 부류는 이명박 정부의 '상호주의'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다. 철저한 북핵 연계론이다. 북핵 문제 해결 없이 북한에 대한 유화적 태도로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이뤄낼 수 없다는 시각이다. 지금과 같은 북한의 존재는 남한을 위협하는 상시적인 불안요인으로 북한체제의 변화 없이 공존과 협력관계의 모색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입장이다. 북한에 대한 적대적 입장과 철저한 '힘의 논리'를 배경에 깔고 있다.

 

그동안 줄곧 대북강경 입장을 견지해왔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대표적이다. <국민일보>와 <세계일보>도 같은 대열에 서 있다. 한 때는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중앙일보>는 어제 오늘(28일) <동아>와 <조선>의 대열에 합류했다.

 

<중앙일보>는 그러나 내부적으로 그 입장의 정리를 둘러싸고 일정한 입장 차이도 표출되고 있다. 오늘 사설은 북한에 의연하게 대처할 것을 주문했다. 대북정책의 궤도 수정 과정에서 불가피한 경색과 진통의 과정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는 다른 주장을 폈다. 그는 기명칼럼 '대북정책, 역사는 반복되는가'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무시하고 10년 전의 남북관계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려 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행보를 에둘러 비판했다.

 

남북관계에 윈윈이 되고,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며, 미국을 포함한 4강과의 정책 공조를 잘 이끌어 낼 수 있는 실용주의 노선을 권유했다. 사설의 기조와는 크게 다르다.

 

세 번째 부류는 적극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한 경우다. <서울신문>과 <한국일보>가 그렇다. 남북관계의 경색과 그로 인한 파국적 상황을 우려하는 쪽에 방점을 찍었다. 남북 모두에게 책임을 묻고, 자제와 유연성을 촉구하는 입장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입장의 중간 쯤 되지만 이명박 정부쪽에 보다 유연한 입장을 요구하는 쪽이다. <한국일보>는 '실속없는 강경자세'를 경계했고, <서울신문>은 남북 모두에게 '실용'과 '유연성'을 강조했다.

 

<경향> <한겨레>가 좌파면 <조중동>은 우파?

 

코드가 확실하게 갈리는 사안에 대해 왜 코드가 다르냐고 아무리 이야기해본 들 생산적 논의는 불가능하다. 가치관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른 마당에 서로에 대한 비판은 삿대질로 끝나기 십상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이념적 색깔 문제를 정리하는 수준에서 그치자. 사실 남북문제를 놓고 좌니, 우니 하는 시각으로 분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조중동>식 좌우 분류 잣대를 차용해 보자면 <경향>이나 <한겨레>는 '좌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분명하게 밝혀두지만 이런 구분은 사실 그 자체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당연히 <서울신문>이나 <한국일보>는 중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중동>은? <조중동>은 스스로 '우파'라고 커밍아웃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들의 분류법대로 <경향>과 <한겨레>를 '좌파'로 규정한다면 그 대칭에 서 있는 <조중동>은 우파임에 분명하다. 여기까지는 별 어려움이 없다.

 

헷갈리는 것은 그 다음이다. 이들 우파언론들이 좌파방송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KBS 같은 경우는 그러면 어땠을까?

 

어제 오늘 KBS 보도는 아무리 봐도 그 자체만으로는 좌우구분이 잘 안 된다. 좌우파 신문에서도 별 차별성을 찾을 수 없는 일반 보도 기사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북한의 남측 당국자 추방 소식과 그 파장을 전한 <조선일보>나 <한겨레> 기사와 별 차이가 없다. 색깔이 없어도 너무 없다. 코드가 확연히 갈리는 이번 사안에서 이럴 진데, 왜 이들 신문들이 KBS를 툭하면 '좌파방송'이라고 비난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MBC 같은 경우 '논평'을 하나 내긴 했다. <한국일보>나 <서울신문> 수준이다.

 

<조중동>이 <서울신문>이나 <한국일보>를 좌파신문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의문이다. 적어도 이번 사안만 보자면 KBS나 MBC가 <조중동>을 너무 우파적이라고 비난해야 할지 모르겠다.

 

불현듯 이런 구분도 가능할 것 같다. <경향>이나 <한겨레>를 기준으로 놓고 보자는 것이다.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를 '햇볕신문'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조중동>은 '강풍신문' 혹은 '먹구름신문' 정도로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오락가락하거나 중도적 신문은 '무지개신문' 혹은 '회색신문' 이렇게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중동>도 KBS 등을 비난할 때 식상한 '좌파방송' 대신 '햇볕방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무색무취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안개방송' 이런 식으로 해 보면 어떨까. 좌파·우파라는 낡은 구분법에 식상한 독자들에겐 새롭기도 하려니와 정서적으로도 도움은 되지 않을까. 색깔도 따지고 보면 그 분류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태그:#색깔논쟁, #남북문제,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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