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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개강 후 처음 시간을 내어 찾아간 대학 도서관. 그런데 그 곳에서 방학 내내 잊고 있던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서관의 사서가 내게 반환하지 않은 책이 두 권 있다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이어진 사서의 말. 앳된 사서의 초롱초롱한 눈이 별안간 놀란 토끼눈이 되더니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다.

 

"우와! 연체료가 1만2000원이네요?"

 

연체료가 있다는 도서관 사서의 말에 난 깜짝 놀랐다. 게다가 '우와'라는 감탄사는 나 역시 속으로 생각했다. 하루에 50원씩 붙는 연체료가 눈덩이처럼 불어 1만2000원이 되었다니, 실로 경악할 만한 일 아닌가? 갑작스러운 연체료 소식에 내 기분이 뾰로통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출하지 않아야 될 돈을 내 부주의로 지불해야 된다는 아쉬움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런데 문득 불안한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연체료가 붙은 그 책들이 어떤 책인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 책을 빌렸었나? 할 정도로 책에 대한 기억이 희미했다. 그래서 도서관 사서에게 부탁해 책 제목을 살펴보았지만 역시 기억이 없었다.

 

'설마 책! 잃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윽'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설마 책을 잃어버린 것 아니야? 라는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니길 바라지만, 속으로는 '큰일났다'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책을 잃어버리면 책값을 물어줘야 하는데 평범한 대학생에게 책값을 지불하는 것은 부담되는 일이다. 걱정스런 마음에 책값을 물어봤다. 제발 1만원 미만의 저렴한 책이기를,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기대를 저버리는 도서관 사서의 발언.

 

"권당 3만원 정도 하네요."

 

으악, 속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평온했던 새 학기에 찾아온 난데없는 비극이었다. 처음에는 큰돈이라고 생각했던 연체료 1만2천원은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잘못하면 책값 6만원을 보태 7만원을 물어줘야 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물어내야 할 돈만 7만원! 진짜 위기였다. 용돈의 3분의1이 거덜 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1만2천원 VS 7만원... 책 찾기 소동!

 

하지만 7만원을 고스란히 물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책 찾기에 들어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방불케 하는 초정밀 책 찾기 수사(?)에 들어간 것이다.

 

내 책상부터 시작해, 누나, 동생 책상, 아버지 책상, 엄마 서랍까지 있는 대로 살폈다.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찾았다. 덕분에 온갖 책들이 다 쏟아져 나왔다. 내가 알지 못하는 온갖 책들을 다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찾는 그 책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의 관심만 불렀다. 동생이 이유를 물었다.

 

"형, 무슨 일이야?"

"큰일 났어. 이번 달, 나 망하게 생겼어!"

 

내가 동생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유를 들은 동생은 소리 내어 웃는다. 형, '큰일 났네'라고 놀리듯 말한다. 하지만 나는 웃지 못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계속 책을 찾아야 했다. 그러기를 한 시간, 결국 책은 나오지 않았고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윽, 망했다'

 

아무리 찾아도 책은 나오지 않고 결국 포기를 하고 말았다. 그래서 물어줄 생각을 하고 책상 서랍에 있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보았다. 하지만 지갑에 있는 돈은 기껏해야 10만원 안팎, 도서관에 책값 지불하면 빈털터리가 될 것이 뻔했다.

 

그런데 누군가 절망의 끝에서 빛이 보인다고 말했던가? 순간 생각나는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책상 뒤 틈새였다. 과연 그런데 책이 빠져있을까? 하고 의아함이 들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상을 밟고 올라가 뒤를 살폈다. 그런데 빙고, 거의 반년동안 행방불명이었던 책 두 권이 그 곳에 턱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야호! 찾았다"

 

난 너무나 기뻐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뒤에서 동생도 와, 정말 찾았네? 하며 놀라워한다. 고대 유물을 찾아낸 고고학자의 기분을 만끽하며 나는 책상 빈틈에 반년동안 빠져있던 그 두 권의 책을 가슴에 안고 한참동안 기뻐했다. 이 책들이 보통 책들이랴, 현금 6만원을 지켜준 고마운 책들이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연체료 1만2000원을 챙겨 가방에 넣고 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도서관에 연체료를 지불할 생각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연체료를 지불하는 내 모습에 도서관 사서는 의아해하며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엥? 연체료를 만이천원이나 내면서 뭐가 그렇게 기뻐요?"

 

그때 나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냥, 그럴 일이 조금 있었어요. 하하, 연체료가 참 저렴하네요."

 

사람 마음이 참 웃기다. 처음에는 연체료 1만2000원이 비싸다고 느껴졌는데, 7만원을 물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1만2천원이 참 싸다고 느껴지니 말이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다. 값비싼 책을 다시금 찾게 되어서, 대학 개강과 함께 일어났던 나의 책 찾기 소동(?)이 이렇게 행복한 결말을 지으며 끝이 나게 되어서 말이다.

 


태그:#연체료,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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