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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어린이 가운데 짝꿍이 없는 '나홀로 입학생'은 전국적으로 130여 명에 이른다(잠정 집계). 이들이 다니게 될 대다수의 학교는 농·어촌 학교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아프게 대변하는 '나홀로 입학생'은 농·어촌의 '마지막 잎새'다. 지난 2000년 창간돼 올해로 만 여덟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여덟살의 '나홀로 입학생'의 벗이 되고자 한다. 시민기자, 독자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더불어 함께'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함께 하는 마을' '더불어 함께'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경준이의 입학식 모습.
 경준이의 입학식 모습.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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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강원도 정선에 와 있습니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다 잠깐 고개를 들면 동강이 보입니다. 3월을 맞아 몸을 푼 동강은 시리게 맑습니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입니다. 동강 주변으로 깎아놓은 듯한 바위 절벽도 보입니다. '끝내준다'는 표현이 제 격인 곳입니다.

계절은 사람과 지역을 차별하지 않고 찾아온다고 했던가요. 자판을 두드리는 손이 시리지 않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벌써 3월이고 오늘은 3월의 첫 월요일입니다. 월요일부터 놀러온 것은 아닙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차비와 밥값을 쥐어주며 저를 이 곳으로 떠 밀었습니다. 8살 산골소년 김경준의 '나홀로 초등학교 입학식'을 보고 오라는 주문입니다.

오늘(3일) 오전 내내 경준이의 입학식을 지켜봤습니다. 동강의 비경만큼 '끝내주는 입학식'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겠습니다.

산골 어머니의 소망 "남 위할 줄 아는 사람 됐으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경준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경준이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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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준이는 강원도 정선군 운치리에 살고 있습니다. 운치리는 정선군 읍내에서 차로 동강을 따라 약 1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입니다. 3일 오전 8시경 경준이네에 도착하니 떠들썩합니다. 경준이가 공교육에 첫 발을 내딛는 오늘, 그의 둘째 형 태헌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합니다.

농사를 짓는 아버지 김용성(48)씨와 어머니 이기자(48)씨도 이 날만큼은 멋지고 곱게 차려입었습니다. 아버지는 형 태헌이를 차에 태우고 영월로 떠났습니다. 빨간색 가죽 점퍼를 입고 입술에 역시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엄마와 경준이는 제 차에 올랐습니다. 경준이네 집에서 운치분교까지는 걸어서 1시간이 걸립니다. 

학교까지 가는 길, 어머니에게 "막내아들 초등학교에 보내는 기분이 어떠시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 이기자씨는 그냥 말 없이 웃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는 나직하게 자신의 기분이 아닌 바람을 이야기했습니다.

"경준이가 남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대통령 같은 것도 좋겠지만, 먼저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죠. 그게 사람의 근본이잖아요."

경준이는 말 없이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경준이는 아직 어머니의 '말씀'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를 겁니다. '남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란 게 뭔지, '배려'라는 단어가 어떤 뜻인지 모호하기만 할 겁니다. 이 모든 걸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할겁니다. 그걸 배우기 위해 경준이는 지금 학교에 가고 있습니다.

정작 어머니의 말에 큰 울림을 느낀 건 바로 저였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지도자 양성" "국가를 이끌 인재 육성" 같은 조금은 부담스런 구호가 교육현장에 넘쳐나는 시대에,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산골 어머니의 목소리는 가슴 저린 울림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며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경준이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여덟명, 어른은 열명 이상

운치분교에 도착하니 교실에는 벌써 아이들이 여럿 와 있습니다. 운치분교의 전교생은 경준이를 포함해 모두 8명입니다. 정혜주(3학년)·정화평 남매, 김현정(6학년)·김예중(2학년) 남매, 3학년 황찬우, 5학년 민웅기, 그리고 경준이의 형인 6학년 김현준.

형과 누나들을 바라보는 경준이의 눈빛에는 큰 호기심이나 걱정 같은 건 없습니다. 오히려 무심한 표정입니다. 경준이를 맞이한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은 이미 한 마을에서 나고 자라, 서로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학부모들도 속속 학교에 모였습니다. 혜주·화평 남매의 부모님, 웅기의 부모님, 그리고 부모님 대신 찬우를 키우는 할머니·할아버지도 참석했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뛰어놀고, 학부모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단연 경준이의 입학입니다. 모두들 경준이에게 "건강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덕담을 전합니다.

오전 10시에 열린 입학식. 경준이가 교실 맨 앞에 홀로 앉았습니다. 경준이 뒤로 형과 누나들이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학부모들이 앉았습니다. 박대규 선생님을 비롯한 교사 3명은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었습니다. 아이들은 여덟인데, 어른들은 열 명이 넘습니다.

첫번째 의식은 국기에 대한 맹세입니다. 작은 카세트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 육성이 흘러 나오자 형, 누나들이 오른 손을 왼쪽 가슴에 올립니다. 주변을 살피던 경준이가 당황해 합니다. 그리고 이내 오른손을 자기 왼쪽 가슴에 대고 정면의 태극기를 응시합니다. 애국가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부릅니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가 산골 분교에 울려 퍼집니다.

"경준이의 입학은 학교의 행복이자 축복"

3일 입학식을 한 경준이가 함께 학교에 다니게 될 형·누나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3일 입학식을 한 경준이가 함께 학교에 다니게 될 형·누나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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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입학하는 경준이는 운치리의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못박았습니다. 박대규 선생님은 "산골 분교에서 입학생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자 행복"이라며 "선배들은 경준이를 잘 보살펴 주고, 경준이는 형 누나들을 잘 따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어 경준이와 선배 7명이 마주보며 섰습니다. 서로 고개 숙여 인사하는 순간, 만날 보는 얼굴인데 굳이 또 인사하는 게 어색했던 것일까요. 경준이도 웃고, 아이들도 웃었습니다.

이날 경준이는 선물로 학용품 세트를 받았습니다. 이날 운치분교의 입학식은 경준이만을 위한 행사였습니다. 10여분만에 끝난 입학식이었지만, 경준이는 이날의 기억을 오래도록 곱씹을 겁니다.

작은 학교의 작은 입학식. 그러나 이마저도 앞으로 운치분교에서는 쉽게 보지 못할 듯합니다. 운치리에서 경준이 다음으로 어린 아이는 현재 5살입니다. 취학을 앞둔 누군가가 이사를 오지 않는다면, 2년 동안 입학식은 열리지 못합니다.

경준이 어머니는 "예전에 운동회가 열리면 장사꾼들이 이 산골에 들어올 정도로 아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닙니다. 운치리에 사는 지연옥(58) 할머니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등교 시간이면 마을 전체가 이동하는 것처럼 시끌벅적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경준이 선배' 이종순(52)씨는 "경준이가 쓸쓸하겠지만 공부 열심히 해서 이름을 널리 알리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축하 인사를 건넸습니다. 환하게 웃는 이씨의 얼굴에 사람 좋아 보이는 주름이 잡혔습니다. 그는 운치리에서 나고 자란 운치분교 18회 졸업생입니다.

경준이와 학생들이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다.
 경준이와 학생들이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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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 3월 3일 오후 5시. 강원도 정선에, 푸른 동강에, 그리고 아담한 운치분교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경준이도 이 눈을 집에서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날, 축복같은 흰눈이 펑펑 쏟아졌다"고 기억할 겁니다.

경준이에게 축하 인사 부탁합니다. 작은 격려와 응원을 받은 경준이는 정말로 "남들을 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경준이가 있기에 산골 분교는 입학식을 열 수 있었고, 마을 주민들과 선생님은 한 자리에서 웃었습니다. 격려와 응원 받기에 충분합니다.

영화 <선생 김봉두>의 그 착한 아이들이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태그:#나 홀로 입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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