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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위인전을 보는 시선은 좀 까탈스러운 편이다. 물론 이유는 있다. 외국 위인전에 비해 우리나라 위인전은 지나치게 ‘포장’된 경우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라도 좀 더 높여 표현하고, 싫은 소리를 할 때에도 조금 에둘러 말하는 방식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위인전이 결코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가득 찬 건 아니다. 방금 얘기한 대로 표현방식 차이에서 생기는 오해도 많다. 말하자면, 보기에 따라 얼마든지 우리나라 위인전에서도 독특하고 의미있는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의 선비>와 같은 한국판 위인전을 보는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 자라는 청소년들을 위해서인지 각 인물마다 살아 온 이력이며 동시대 사건에 관련된 그림까지 재밌는 곁가지 얘기들을 꽤 많이 넣어주었다.

 

또한, 이 책 지은이들이 선택한 30명 말고도 그들에 못지않은 선비 정신을 자랑하는 조연급 인물들도 틈틈이 책 사이사이를 지나간다. 가려 읽고 가려 먹고 가려 쓰자면 그 어느 것도 처음부터 버릴 일이 없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부담스러워 할만큼 전형적인 한국식 위인전 방식을 택하고 있는 <조선의 선비>를 보는 일 역시 처음부터 거부할 일은 아니다. 조금은 마음 쓰면 얼마든지 의미있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게다가, '갓 쓴 도둑' 논란에 휩싸인 새 정부 일꾼들 때문에라도 적잖이 관심을 받을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면 어떨런지.

 

‘출처’가 분명한 사람이 하는 일이어야 더 인정받는다

 

<조선의 선비>가 담은 선비 30인(1)

 

 

임금이 행색도를 청렴의 표본삼다 /양관

뛰어난 수완으로 나랏일 돌보다 /이서

판서 위세 부린 아들을 꾸짖다 /홍언필

만조백관이 인정한 청문으로 들어가다 /조사수

죽은 조상은 손자의 일을 모른다 /김신국

낙방자의 답안지에서 급제를 뽑다 /이문원

구멍난 부들방석도 조심스럽다 /이시백

얼룩진 비단치마에 포도그림으로 갚다 /홍수주

공신전 반환하고 백성에게 돌려주다 /이해

죽을 각오로 바둑판을 쓸어버리다 /김수팽

걸인청으로 빈민을 구제하다 /이지함

단벌 옷 빨아 알몸에 관복만 입고 외출하다 /김덕함

돈 보기를 흙처럼 하다 /이약동

벼슬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황

대의를 위해 핏줄도 잘라내다 /백인걸

생각지 않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사회문제를 떠올리며 책을 읽을 때가 있다. '강부자 내각'이네 '1억달러 내각'이네 등등 갖가지 화려한 수식어로 덧칠한 채 기우뚱거리는 새 정부를 보며 <조선의 선비>를 읽는 마음은  참 많이 불편했다.

 

'갓 쓴 도둑'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 보기엔 높디 높은 뜻을 품고 사는 진짜 선비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속은 도둑놈이더라는 말이다.

 

쇠로 만든 갓을 쓰고 다니며 상황에 따라 머리에 쓰고 다니던 쇠 그릇을 벗어 밥 해 먹기도 했다던 토정 이지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이처럼 하고 다니라는 건 아니지만, 옛말 그대로 '갓 쓴 도둑'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게 새 정부 장관 후보자들을 바라보는 국민들 마음이다.

 

한편, 장관 후보자들과 비서관 후보자들 중에는 '출처'가 분명치 않은 이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출처(出處)'란 흔히 어떤 말이 나온 근거나 이유를 찾을 때 쓰는 말인데, 사실 이 말이 지닌 원래 뜻은 좀 다르다. 그리고 막상 그 원래 뜻을 듣고 나면, 여전히 한껏 의욕만 불태우고 있는 새 정부를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出(출)’은 세상에 나아가 벼슬길에 오르라는 뜻이고, ‘處(처)’는 집에 물러나서 벼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출처’는 관변인이 세상에 나아가 벼슬길에 오르든가, 아니면 물러나와 집에 숨든가 하는 진퇴를 가리킨 말이었다. ‘군자는 항상 그 출처가 올바라야 한다,’”(이 책 278쪽/ 정붕 편에서)

 

유능한 공무원이기 전에 꼭 필요한 이것!

 

<조선의 선비>가 담은 선비 30인(2)

 

 

한 밥상에 두 고기 반찬을 올리지 않는다 /민성휘

초 한 자루로 백성의 수고로움을 알다 /이수광

손님에게 술 대신 간장 탄 냉수 대접하다 /이탁

나이 칠십 동안 무명이불만 고집하다 /장응일

평생을 옷 하나, 이불 하나로 살다 /신흠

돗자리를 짜서 생계를 잇다 /이시원

왕자도 엄한 법규로 다스리다 /홍흥

관기? 유혹을 뿌리치다 /송인수

잣은 높은 산에 있고 꿀은 백성의 집 벌통 안에 있다 /정붕

서른일곱 번 영의정 사표를 내다 /정태화

철저하게 청탁을 제거하다 /임담

죽마고우의 명태 한 마리도 받지 않는다 /이후백

색과 투와 득을 계로 삼다 /오윤겸

한평생 나물과 오이로 연명하다 /조원기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이다 /정광필

말 그대로 ‘출처’가 분명치 않은 새 정부 일꾼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통령이 직접 지적하기 전에는 한발도 움직일 수 없다는 듯 ‘출’과 ‘처’를 저울질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자잘한 옛 이야기 들춰가며 사사건건 막을 수는 없다. 그건 오히려 치사하기 그지없는 속 좁은 일일 테니까. 하지만, 동네 이장을 해도 정직과 성실을 따지는 마당에 나라 살림을 맡으려는 자에게 이것저것 묻고 따지는 게 속 좁은 트집 잡기는 아니지 않은가.

 

이 책이 담은 30명 아니 그 이상 되는 많은 조선 선비들은 한결같게 청백리(淸白吏)란다. 옛 조선시대를 사는 것도 아닌 마당에, 새 정부 일꾼들에게 청백리가 되라고 말할 필요는 없겠다. 그래도 그들에게 반드시 요구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들이 지닌 인생관이 아닌가 싶다. 능력 이상으로 필요한 가치관 말이다.

 

“지금도 그렇다. 유능한 공무원은 첫째 자기가 맡은 바 사무를 잘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도의 요채는 ‘사무를 밝게 살피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먼저 명리는 명리이기 이전에 도덕관과 국민관이 뚜렷이 서고 난 뒤의 이야기기 된다는 뜻을 노정승은 간곡히 당부한 것이다. 도덕성이 결여된 이도는 아무리 사무를 살펴도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것은 꾀 있는 도적에게 칼을 쥐어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본 것이다.“(이 책, 326-327쪽/ 오윤겸 편에서)

 

괜히 내가 먼저 움츠러든다. 내가 혹시 ‘꾀 있는 도적’은 아닌지, 그러고도 멋진 칼자루 받았다고 생각 없이 이리저리 휘두르는 사람은 아닌지 생각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희미하나마 양심이 있다면 누구든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물며, 나라 살림에 참여해보겠다는 이들에게야 더 말해 무엇 할까.

 

국민들이 새 정부 일꾼들에게 결코 물고기도 못 살 정도로 지나친 깨끗함을 바라는 건 아닐 게다. 그저 솔직한 태도, 정직한 자세를 바라는 것일 게다. 국민들이 새 정부 일꾼들에게 결코 완벽한 능력을 바라는 건 아닐 게다. 그저 자신이 가진 능력껏 하되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제대로 설명할 줄 아는 자연스러움을 바라는 것일 게다.

 

국회에서야 국회의원들과 서로 티격태격 하겠지만, 새 정부 일꾼들이 결국 상대해야 할 이들은 국민들이 아닌가. 완벽한 인물이 되길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눈높이 정치’를 바라는 게 그렇게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할 일이 많은 만큼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길 바랄 뿐이다. 사실, 옛 삶을 살펴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던 <조선의 선비>를 무거운 마음으로 내려놓고 지금 저 멀리 청와대를 향해 쓴웃음 한 번 날려 보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조선의 선비> 이준구, 강호성 편저. 스타북스, 2006.


조선의 선비 - 살아있는 조선의 청빈을 만난다, 개정판

이준구.강호성 엮음, 스타북스(2013)


태그:#선비, #조선의 선비, #이준구, #강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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