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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을 앞둔 정성진 법무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작년 말 사면은 DJ(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빚갚기 사면"이라며 "(이 문제에 관한 한) 김 전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DJ측은 사실관계와도 맞지 않은 매우 '무례한 발언'이라고 반박했다. 또 김 전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게 압력을 행사해 사면복권된 것으로 언급된 당사자인 신건 전 국정원장은 "사면복권을 제안한 것은 김 전 대통령이 아니라 청와대였다"고 밝혀 주목된다.

 

청와대가 당시 항소심 선고 직후 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에게 사면복권을 제안했다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적어도 두 전직 원장을 사법처리한 데 대한 부담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거나 도청 사건 자체가 정치적 사건이었음을 내심으로 인정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DJ측 "전·현직 대통령 이간질하는 무례한 발언"

 

현직 고위 공직자가, 그것도 법무장관이 전직 대통령에 대해 "나쁜 사람"이라는 비법률적 표현을 써 가면서 비판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 출범과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1일 특별사면 때 김 전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된 사면을 단행해 비난을 샀다.

 

이와 관련, 최경환 김 전 대통령 비서관은 24일 "정 장관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정 장관이 퇴임을 2~3일 앞두고 자기가 모시던 대통령에게는 예우를 갖추는 것처럼 하면서, 김 전 대통령에게는 무례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유감이다"고 논평했다. 전·현직 대통령을 교묘하게 이간질하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또 신건 전 국정원장도 24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 문제(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 사면 건)는 정 장관이 명백히 잘못 알고 있다"면서 "사면복권을 제안한 것은 김 전 대통령이 아니라 청와대였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말해, 정 장관이 '번짓수를 잘못 짚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정성진 장관은 23일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김 전 대통령을 작심한 듯 비난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정 장관은 박지원 전 비서실장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등 김 전 대통령 측근 인사가 대거 사면대상에 포함된 것을 예로 들면서 "작년 말 사면은 DJ에 대한 빚갚기 사면"이라며 "김 전 대통령이 도와 당선됐으니 노무현 대통령이 빚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정 장관은 또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 전 원장이 사면된 것을 거론하면서 "이런 것이 김 전 대통령의 압력이라고 본다"면서 "김 전 대통령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불법도청을 방관·묵인한 혐의로 기소된 신 전 원장은 작년 말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바로 취하해 형(刑) 확정 나흘 만에 사면된 바 있다.

 

신건 전 원장 "DJ는 사면복권과 무관... 청와대가 먼저 제안했다"

 

그러나 신 전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은 우리(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 사면복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전제하고 "(우리에게) 사면복권을 제안한 것은 DJ가 아니라 청와대였다"면서 "만약 DJ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을 거라면 우리가 뭐 하러 상고를 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당시 DJ측은 권노갑, 박지원, 한화갑씨 등 옛 동교동계 인사들의 사면복권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면서 "우리는 무죄를 확신하면서 상고했기 때문에 DJ도 끝까지 투쟁을 해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으라고 했다, 그러니 사면복권을 요청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청와대의 사면 복권 제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항소심 선고가 있던 날 바로 '상고하지 말라'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해야 (형이 확정되어) 사면복권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면서 "그러나 나는 억울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하고 1주일 뒤에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런데 상고 후에 다시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와 우리가 상고를 취하해야 대통령 임기내 사면을 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20일 항소심 재판부는 김대중 정부시절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신건ㆍ임동원 원장에 대해 "피고인들이 불법감청을 방관ㆍ묵인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1심과 같이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청와대측이 먼저 "상고를 취하하면 사면복권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은 두 전직 원장의 사법처리에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거나 도청 사건 자체가 정치적 사건임을 어느 정도 시인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신 전 원장은 또 "24일 결혼식장에서 정성진 장관을 만났는데 정 장관 본인은 내 이름을 전혀 거론하지도 않았는데 <조선일보>가 내 이름을 박아서 냈다고 해명했다"고 덧붙였다. 정 장관은 다만, "작년말 사면복권은 노 대통령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보은' 성격이 강하다"고 얘기했는데 거기에 작년말 동교동계 인사들과 함께 사면을 받은 신 전 원장의 이름을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신 전 원장은 23일 통합민주당 전주시 덕진 선거구에 공천신청을 냈다. 다음은 이와 관련된 신 전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신건 "항소심 선고한 날 바로 청와대에서 '상고하지 말라'고 연락이 왔다"

 

- 정성진 장관이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면복권에 압력을 넣은 것처럼 얘기했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오늘(24일) 결혼식장에 갔다가 정 장관을 만났는데 반갑게 내 손을 잡으며 본인은 내 이름을 전혀 거론하지도 않았는데 <조선일보>가 내 이름을 박아서 냈다고 해명하더라. 내가 아는 정 장관도 그럴 사람이 아니다(정 장관은 신건 전 원장이 대검 중수부장 시절에 중수부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편집자주). 정 장관은 다만, 작년말 사면복권은 노 대통령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보은' 성격이 강하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 작년 말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바로 취하해 형(刑) 확정 나흘 만에 사면되었는데, 이는 김 전 대통령의 요청을 받은 청와대로부터 '사면 언질'을 받았기 때문 아닌가.

"그렇지 않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 사면복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당시 DJ측은 권노갑, 박지원, 한화갑씨 등 옛 동교동계 인사들의 사면복권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 우리는 무죄를 확신하면서 상고했기 때문에 DJ도 끝까지 투쟁을 해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으라고 했다. 그러니 사면복권을 요청할 이유가 없다."

 

- 그렇다면 정 장관이 사실 관계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이번에 만나서도 '우리 문제(신건-임동원 전 원장 사면건)는 정 장관이 명백히 잘못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사면복권을 제안한 것은 DJ가 아니라 청와대였다. 만약 DJ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을 거라면 우리가 뭐 하러 상고를 했겠냐."

 

- 청와대가 언제 어떻게 사면복권을 제안했나.

"항소심 선고가 있던 날 바로 '상고하지 말라'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해야 (형이 확정되어) 사면복권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억울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하고 1주일 뒤에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런데 상고 후에 다시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와 우리가 상고를 취하해야 대통령 임기 내 사면을 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 누가 그런 제안을 했나.

"누구라고 밝히기는 그렇다. 다만, 그때도 나는 법률가로서 무죄를 확신하기에 끝까지 법적 투쟁을 해서 무죄를 받겠다고 얘기했다. 심지어 임동원 원장은 고령이니 상고를 취하해 사면복권을 받더라도, 나는 끝까지 법정에서 무죄를 다퉈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병합사건이라서 임 원장만 사면복권 해줄 수는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래서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 억울하지만 하는 수 없이 상고를 취하한 것이다."

 

정성진 장관, 인터뷰에서 김 전 대통령 비판하기로 작심한 듯

 

한편 정 장관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병풍사건 주역인 김대업씨를 사면하려 했던 것도 많은 비난을 샀다"는 질문에도 "김씨는 법무부가 반대해서 빠졌다"면서 "그 점에선 사면권자도 자제하려 했다는 점을 평가해야 한다, 아마 김대중 정부였다면 (김대업씨를) 포함시켰을 것이다"고 말해 노 대통령에 대한 차별화를 통해 김 전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정 장관은 또 "노 대통령은 재임 중에 헌법을 무시하는 발언을 많이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 측면도 있으나, 모시던 분이니 논평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지난 18일 경기도 과천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 장관은 따로 인터뷰 자료를 준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법무부에서 준비한 인터뷰 자료도 마다하고, 자신이 직접 쓴 메모지만 갖고 인터뷰에 임했다. 김 전 대통령을 비판하기로 작심한 인터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최경환 비서관은 "우리는 한나라당측이나 노 대통령측 사람들은 이미 사면복권 됐는데 동교동측 사람들만 남아 있는데 대해서는 부당하다고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면서 "그러나 신건 전 국정원장을 지명해서 사면복권을 요구한 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치인들의 사면복권에 '균형'을 맞춰줄 것을 요청했을 뿐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무죄를 주장한 두 원장에 대해서는 사면복권을 요구한 바 없다는 것이다.

 

최 비서관은 "또한 지난 사면복권에서도 상당수 동교동계 사람이 제외돼서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장관이 무례한 발언으로 전직 대통령을 비방하는 것은 매유 유감이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사법처리된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다 사면복권 되었는데 권노갑, 김옥두 전 의원 등은 아직 사면 복권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TK 마피아' 출신 정 장관의 '반DJ 정서'가 표출된 것

 

정 장관이 공식 인터뷰를 통해서 전직 대통령을 비난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특별사면을 반대하려면 그때 반대했어야지 주무 장관인 자신이 특별사면에 서명해 놓고, 퇴임을 앞두고 '노 대통령의 빚 갚기'니 'DJ의 압력' 때문이라고 해명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고 지적했다.

 

또 일부에서는 정 장관이 노태우 정부 시절 검찰 내에서 핵심 요직을 장악했던 이른바 'TK 마피아'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 체질화된 '반DJ 정서'가 노 대통령 퇴임을 앞두고 표출된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구 경북고 출신의 정 장관은 노태우-김영삼(YS) 정부 교체기에 대구지검장을 거쳐 대검 중수부장이라는 요직을 지냈으나 1993년 YS의 사정 드라이브에 불어 닥친 공직자 재산공개 태풍에 낙마했다. 정부 공직자 중에서 최고 재산가였던 그는 과다 재산이나 허위 신고 등으로 옷을 벗게 된 차관급 인사 5인방 중의 한 사람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국민대 총장이던 그를 부패방지위원장과 국가청렴위원장으로 연달아 기용했고, 그는 지난해 국가청렴위원장 때도 '2007년도 공직자 재산변동 신고' 결과, 40억2092만원이 늘어난 95억1748만원을 신고해 공직자 재산증가 순위 1위를 차지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노 대통령의 사법시험 동기인 정상명 전 검찰총장 등이 그의 경북고 동기(48회)이다. 이 때문인지 일부 언론에서는 그를 이명박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으로 급부상한 것으로 보도해 눈길을 끈다.


태그:#정성진, #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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