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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편지에서 이어집니다.

 

시민의 문화를 위한다는 서울 메트로의 꼭짓점에 서 계시는 김상돈 사장님! 정말로 시민의 문화, 특히 책 문화를 놓고 고민을 하셨다면 경영서, 자기 계발서 등의 실용서 위주로 팔리는 도서시장의 현실을 한 번쯤 생각해 보셨을 것입니다. 지하철 서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셨다면 그곳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의 종류가 사은품이 제공되는 패션 잡지라는 것도 아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실용서적들의 대부분은 시장이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구 역할에만 충실합니다. 오로지 앞을 바라보게 하고 사람을 옥죄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판 기업들은 계속해서 이러한 책들을 앞서서 내고 있습니다.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케팅에 현혹된 사람들은 이 한 권의 책이 자기가 처해 있는 불안을 가시게 해줄 것이라 믿게 되고 책값을 지불합니다.

 

통계를 낼 수 있다면 계발, 경영 서적들의 판매량과 시민들의 불안 수치는 비례관계가 있다는 게 드러날 것입니다. 이는 지금 대한민국이 점점 더 잔혹한 경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이에 따라 불안은 커져가는 상황을 반증합니다. 여기에 출판사들은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있습니다.

 

앞의 편지를 읽으시고 혹시 생각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대여판매시스템? 책이 무작정 많이 팔린다고 해서 문화가 성장하는 게 아닐 텐데 하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첫 번째 편지에서 제안한 내용은 판매 시스템만을 고려한 것으로 현재 출판시장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이 대여판매시스템은 자칫 도서시장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가속화 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가벼운 책,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에 경쟁력을 더해주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문화를 위하는 서울 메트로라면 단지 어떻게 책을 많이 팔 수 있을까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자본에 예속된 구조를 변화시켜 어떤 책을 읽게 할 것인가에 느낌표를 찍어야 합니다. 서울 메트로는 대다수의 서울 시민들이 반드시 머물고 지나가는 거대한 장이기 때문에,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그 힘으로 구조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두 번째 편지에는 어떻게 하면 서울 메트로가 공기업으로서 일상의 공간인 지하철을 보다 풍성한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지, 서울 메트로가 어떻게 하면 기형적인 출판시장의 구조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를 모색해 보았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연계, 작은 책 만들기

 

각 시민들이 얼마 동안 지하철을 타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대략 20~30분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20~30분이면 단편 소설 한 편, 시 네, 다섯 편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김상돈 사장님께서는 소설이나 시를 좋아하시는지요. 시간 때우기 위해 읽거나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의미에서 소설이나 시 같은 건 필요 없다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다른 학문들이 인간 삶의 부분 부분에 구분 획을 긋고 접근할 때에, 문학은 여전히 총체적으로 다가섭니다. 여전히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금 여기의 현실을, 또한 덮여 있는 현실을 드러내고 재현합니다. 꼭 살려야 할 기초 예술 분야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20~30분을 충분히 활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단편 소설 한 편을 작은 책으로 엮어 내는 것입니다. 시 네, 다섯 편을 엮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라는 곳이 있습니다. 문화예술 창작자들을 지원하고 보급하는 곳입니다. 현재 한국문예예술위원회에서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을 선정하여 작가들에게 상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여러 장르가 있지만 단편소설만 놓고 봤을 때 여기에 뽑힌 소설은 300만원을 받습니다. 대략 1년에 200여 편이 선정됩니다. 단순계산으로 연 5억원의 기금이 이 사업에 사용됩니다.

 

이 기금을 모두 작은 책을 만드는 비용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서울 메트로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좀 더 많은 시민들이 한국문학을 향유할 수 있도록 그 기금을 바로 작가들에게 나눠주기보다 단편 책을 만드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시민들도 그 우수작품 좀 보자고 말입니다 설득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현재 잡음이 많은 이 지원 사업을 개선하기 위해 머리를 쓰고 있는 터에 이러한 제안은 꽤 반가울 것입니다. 작가들도 흔쾌히 동의할 것입니다. 돈 몇 만원보다 독자 한 사람이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예 안 받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인세로 돈을 받게 되니 말입니다. 백이면 백, 일이백 만 원을 더 받는 것보다 더 많은 독자를 만나는 편을 택할 것입니다.  

 

단편 소설을 담은 이 작은 책들은, 점점 그들만의 리그로 변해가는 한국 문학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문예지를 사 읽는 독자들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이 작은 책은 독자들이 가장 쉽고 빠르게, 한국 작가들의 최신작을 만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며, 더 많은 독자들의 비평은 한국 문학의 쇄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표지와 본문의 종이 재질을 낮춰 1000원 정도에서 책값을 정하면 대여판매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은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에 천 부씩, 250일만 팔려도 원래의 기금만큼 다시 모이게 됩니다. 가난한 작가들, 다시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이 사업기금은 자발적인 세금, 바로 로또로 마련된 기금이니, 세금을 낸 시민들의 입장에서, 자기들이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사회적 신뢰도도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지하철에 앉아 작은 책을 읽다가 외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피눈물을 머금고 쏟아 부은 로또, 겨우 이 정도 수준의 소설에 지원한단 말이냐? 차라리 내가 쓰고 말겠다. 문학의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시민들은 문학작품을 통하여 더 많은 문화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작가들에게는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나는 기회가 됩니다. 또 소설뿐 아니라, 철학 인문 서적도 작은 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 주제로 쓴 논문들을 모아서 내는 경우, 동시에 낱권 형태의 작은 책으로도 출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출판문화와 도서 시장의 형태를 바꾸는데 서울 메트로가 할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지하철 서점 철거 계획을 철회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공문과 제안서 하나만 쓰면 됩니다. 그 작은 노력으로 작은 책이 들어서게 된다면, 서울 메트로는 문화와 함께 달리는 지하철로 평가될 것입니다. 김상돈 사장님, 사장님께서 지금 생각을 조금만 바꾸신다면, 서점을 죽인 사람에서 한국문학발전에 기여한 사람으로 그 기록이 달라질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편지로 이어집니다.


태그:#지하철 서점, #서울 메트로 , #한우리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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