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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메트로에 관한 새 소식 몇 가지를 읽었습니다. 최근에는 조직 혁신을 위해 노력하시더군요. 참으로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사장님의 노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 역시 며칠 동안 어떻게 하면 서울 메트로가 문화적으로 진일보하고 서울 시민들에게 환영받는 지하철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장님께서 진심으로 서울 지하철의 문화 발전을 위한다면 제 글이 도움이 되어드릴 거라 생각합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많은 시민들은 그냥 신발을 신고 외출을 하듯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향합니다. 저 역시 일상의 옷을 입듯 익숙하게 지하철을 이용하였습니다. 간혹 노조가 붙여 놓은 벽보가 내가 어떤 거대한 시스템 안으로 들어간다고 일깨워 주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며칠 전, 지하철 서점이 곧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남부터미널역의 서점에서 일하시는 고모로부터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고모가 몸 담아 일하던 곳이 곧 사라지게 된다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가뜩이나 뉴타운을 비롯하여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되면서, 사람까지 함께 철거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이제는 지하철의 작은 철재 박스와 함께 우리 고모까지 쓸려 나가게 되었습니다. 고모의 한숨 섞인 전화 한 통으로 인해, 겨우 지하철을 이용하는 고객 중에 하나일 뿐인 제가 감히 사장님께 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한 지하철 이용객이 서점에서 책을 사고있다.
▲ 간이서점 풍경 한 지하철 이용객이 서점에서 책을 사고있다.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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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돈 사장님, 책은 한 문화를 보여주는 큰 상징입니다. 출판기업들이 어떤 책을 출판하고, 독자들이 어떤 책을 읽으며, 시민들이 그 책을 발판으로 어떤 토론을 벌이느냐는, 그 문화를 평가하는 척도입니다.

그런데 서울 메트로는 그 문화의 작은 통로이며, 창구인 지하철 서점을 철거하려고 합니다. 이는 서울 메트로가 생활 속의 문화공간으로 시민들의 일상 속에 항상 살아 숨쉬고자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뚜렷이 반대되는 태도입니다.

서울 메트로 부대사업팀 박기철 주임께서는 지하철 서점 철거의 이유로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의 발달, 독서율 감소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대부분 대기업 제품을 이용하니까, 중소기업들은 문 닫아도 되지 않느냐는 발상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현명하신 사장님께서 잘 알고 계시듯, 한 나라의 경제는 대기업만으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굳이 논증을 하지 않더라도 중소기업들의 죽음은 대기업의 죽음과 상관관계를 이룹니다.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이 담당하는 역할은 결코 지하철 서점과 같은 작은 서점이나 헌책방이 담당하는 역할과 같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작은 서점들을 죽이면, 우리나라의 책은 함께 죽게 됩니다.

참, 그러고 보니 박 주임께서 독서율이 줄고 있으니까 서점을 없앤다는 말도 덧붙이셨습니다. 이것은 가뜩이나 떨어지는 독서율에 엑셀레이터를 밟는 격입니다. 그리고 독서율이 감소를 하니까 서점을 없앤다는 것은 쌀 소비량이 줄고 있으니까, 이까짓쯤의 농지는 팔아버리고 공장부지로 바꾸자는 논리입니다.

문화를 생각한다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논리입니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다양성이 보장될 때 발전하게 됩니다. 표현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의 다양성, 유통의 다양성, 모두를 포함한 다양성입니다. 대안과 선택의 폭이 좁혀진다면 사람들의 창의적인 사고와 열린 사고는 함께 좁혀지게 됩니다.

혹시 문화도 좋고, 독서도 좋은데, 아무리 공기업이라도 기업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건 남겨둘 수 없다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븐 일레븐이나 지에스 이십오를 들여오려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수익이라는 놈은 도덕과 가치 뒤에 꽁꽁 숨어서 졸졸 따라다니다가 막판에 얼굴을 내미는 놈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어쩔 수 없이 어떻게 하면 지하철 서점이 수익이 발생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1. 지하철 서점의 판매 시스템을 대여판매 시스템으로 전환  

지하철 승강장 입구의 한 간이서점
 지하철 승강장 입구의 한 간이서점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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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서점의 판매 시스템을 바꿉니다. 지하철이라는 특수 환경을 고려하여 기존 도서 시장의 유통 형태와 다른 형태를 취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들어가는 역에서 책을 사고 나가는 역에서 책을 되파는, 대여 판매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에 정가가 10,000원인 도서가 있습니다. 한 번도 팔리지 않은 새 책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들어가는 역에서 그 책을 10,000원에 샀습니다. 지하철을 타는 동안 그 책을 속독으로 다 읽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나가는 역에서 9,000원에 되팔 수 있습니다.

그 책을 받은 서점의 직원은 그 책 뒤에 붙어 있는 대여표에 반납 표시를 합니다. 1회 판매가 되었습니다. 다시 그 책을 사는 사람은 9,000원에 사고 8,000원에 되팝니다. 2회 판매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여표에 반납 표시를 합니다.

그 다음 사람은 8,000원에 사고, 7,000원에 되팝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판매를 합니다. 판매 횟수에 따라 책의 보관 상태가 안 좋아졌을 테니, 10회가 넘어갔을 때부터는 1,000원에 사고 500원에 되팝니다. 그리고 20회가 넘어갔을 때는 필요한 이들에게 증정합니다.

책을 산 사람은 굳이 다시 팔지 않아도 됩니다. 판매자 측의 수익에는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전 날에 책을 샀다가 다음 날 파는 경우를 생각하면 됩니다.

책을 구입할 때 대여표에 날짜를 기재합니다. 구입한 날짜로부터 1일이 지났을 때는 2회 판매된 것으로 간주하여 정가가 10,000원인 책의 경우에 8,000원에 팔 수 있도록 합니다. 2일 지났을 경우에는 7,000원입니다. 지난 날짜 만큼을 판매횟수로 간주합니다.

이 대여판매시스템이 도입된다면 장거리를 가야 하는 승객, 지하철 대기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짧은 거리를 간다고 하더라도 책의 대강을 알고 싶은 사람들도 꽤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만나기로 한 친구는 늦는다 연락이 왔고, 가방에 읽을 거리도 준비하지 못한 날, 혹은 지갑에 돈 천 원밖에 없는 날, 저렴한 가격에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환영할 만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을 적은 비용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할 수 있으니 공공의 이익도 증가하는 시스템입니다. 멀리 떨어져서 본다면 지하철은 유동성이 큰 하나의 도서관처럼 움직이게 됩니다.

- 두 번째 편지에 계속 이어집니다.


태그:#지하철, #서점, #한우리 , #서울메트로, #독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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