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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선동'을 반론의 핵심 삼지는 말아야

 

지난 7일자 기사 '진보정당에 재 뿌리는 이, 과연 '분당파'일까' 기사에서, 나는 이렇게 주장했다.

 

"지금은 1980년대가 아니다. 학생운동하던 시절의 관성으로 정치를 하기엔, 이명박 정권의 무자비하기까지 한 신자유주의는 너무나도 강력하다. 그런 판국에, 자주파의 저런 돌발행위에 시달리며 발목을 잡혀서야 어디 싸울 수 있겠는가?"

 

이명박 정권이 앞으로 5년간 시도할 신자유주의 정책은 그야말로 '무자비'하다. 그 '무자비함'에 경종을 울리고 대중에게 경고하며, 그에 대항하기 위한 힘을 모아가는 것이 진보정당이 추구해야 할 핵심과제일 것이다.

 

손석춘씨의 생각도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그의 반론글 <진보가 서 있을 곳은 이명박 정권 앞이다>를 살펴보자. 제목에서부터, 다음 부분에서도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 진보가 서 있을 곳은 신자유주의를 노골화하고 분단 체제의 갈등을 심화시킬 이명박 정권 앞이다. 옆이나 뒤가 아니다."

 

그렇다. 나도 그렇지만, 진중권씨도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손석춘씨도 이런 의견이라니 정말 다행이다. 커다란 전제에 대해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논쟁은 무엇 때문에 유발됐을까? 민주노동당은 왜 '분당'이 거론되고 있고, 조승수 전 의원을 비롯한 평등파는 왜 '신당 창당'을 선언했을까?

 

다시 한번 손석춘씨의 반론을 거론해보려 한다. 다음 부분을 살펴보자.

 

"'종북 타령'과는 단호히 결별하길, 정책으로 경쟁하길 마지막으로 권한다."

 

그렇다. 그는 '종북 타령'과 단호히 결별하라고 말한다. '종북'이라는 말 자체를 거론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쳇말로 말해볼까? '종북'에 한해서는 입을 다물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조중동'이라는 수구언론을 통해 '친북 세력'이니 하는 오해에 시달리게 한 이유를 제공하는 세력이 있는 한, 입을 다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동료들의 정보를 북한 정보국에 팔아넘긴 사람이 있고, 단지 같은 파벌이라는 이유로 그를 감싼 이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당이 어떻게 대중적으로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

 

손석춘씨는 민주노동당 분당과 관련해 많은 글을 썼지만, 저 부분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런 주장을 내세웠다.

 

"어느새 누구든 민주노동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당 내부의 일부 고위인사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이 '종북 당'으로 색칠해서다. '종북'은 국민 대다수에게 북의 지령을 받는 당으로 들린다. 그럼에도 여전히 종북의 실체를 다그치며 자극적으로 캐묻는다."

 

'종북'의 실체, 나도 반복했고 진중권씨도 반복했다. 같은 당 동료들의 정보를 북한 정보국에 팔았고, 그런 범죄를 저지른 이에 대해 단지 같은 파벌이라는 이유로 '용서'하며 쇄신에도 반대한 것, 그게 바로 '종북'의 실체다. 이걸 지적했다고 '마녀사냥'이라고 딱지를 붙이거나, '내부 정파 갈등'쯤으로 덧칠한다면, 너무 한 사람은 나와 진중권씨가 아니라, 오히려 손석춘씨다.

 

한마디만 더 하자. "누구든 민주노동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는 것은 명백한 감정적 선동이다. 누가 민주노동당 지지한다고 '갈구기'라도 했다는 뜻인가?

 

그런 적 없다. 단지, 해서는 안될 짓을 하지 말자고 했으며, 그 짓을 저지른 사람들과 같은 당에서 활동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했던 것 같다. 나도 그에 동조하면서 손석춘씨의 칼럼에 이견을 제기했을 뿐이다.

 

어이없는, 해묵은 강준만식 논법

 

손석춘씨의 반론글을 보고 떠올린 사람이 있다. 누굴까? 강준만 교수다.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중권씨와 이른바 '옥석 논쟁'을 벌였을 당시의 논리와 큰 틀에서 비슷하기 때문이다.

 

손석춘씨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해보자.

 

"신자유주의를 노골화하고 분단 체제의 갈등을 심화시킬 이명박 정권 앞에서 당 동료를 향해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행위는 한 줌도 안되는 진보를 분열시키려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정히 분당을 하겠다면, 통일운동에 재나 뿌리지 말라."

 

이것 아닌가? 재미있게도 강준만 교수의 논법도 이런 식이었다. "수구세력 한나라당과 이회창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역량이 안되는) 민주노동당은 서울시장을 포기하고 구청장 선거에나 나가야 하며, '소극적 진보'인 노무현과 김민석을 밀어주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 당시 내세웠던 큰 틀에서의 논리였다.

 

"한나라당과 이회창에 대항하기 위해서",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노골화하고 분단 체제의 갈등을 심화시킬 이명박 정권 앞에서".

 

보라. 쌍둥이 논리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 앞에서라면 뭘 해도 덮어놔야 하며, 움직이지도 말아야 한다는 뜻인가?

 

하지만 이 쌍둥이 논리가 민주노동당에 도움이 될까? 한쪽은 "구청장 선거에나 나가라"고 윽박질렀으며, 한쪽은 '북한 정보국에 당원들의 정보를 팔아넘긴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도 않은 채, '통일운동'을 망치지 말라고 투정을 부린다.

 

전에도 말했던 것이지만, 다시 한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당 동료들의 정보를 북한 정보국에 넘기는 행위가 '통일운동'인가? 북한 정권의 실패를 부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에는 '종북'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주장하는 행위(김창현)가 '통일운동'인가? 이런 통일운동, 차라리 하지 말기를 권한다.

 

손석춘씨는 "민주노동당은 어느새 '간첩'을 옹호하는 당으로 '둔갑'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둔갑'이 아니라, '사실'이 돼버린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한나라당조차도 '성추행자'를 출당시키고 '수해골프'의 당사자를 제명시켰다. 수구정당조차도 여론을 의식해 범죄 혐의자나 정치인으로서 해서는 안될 짓을 한 이에게 그런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당 동료의 정보를 북한 정보국에 넘긴 이를 감싸는 짓을 진보정당이 해서야 되겠는가? 이래도 손석춘씨는 "상대는 아니고 자신만이 진보정당이라는 독선이 깔려있다"고 신당파를 향해 주장할 것인가.

 

손석춘씨는 이 당면한 사태를 앞두고 그저 '통일운동이나 망치지 말라'고 투정을 부렸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 앞에서'라는 말을 앞세우며, 논의 자체를 막으려 한다. 강준만 교수식 논법이다. 하지만 그 논법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으니, 이를 어찌 해야 할까.

 

손석춘씨, 정말 '저주'를 안하셨는가

 

"내가 평등파를 '저주'하며 '수구세력으로 덧칠했다'(박형준)거나 '분당파=조중동'으로 등식화했다(진중권)는 사실과 다른 주관적 논리로 구성된 '반론'에 답하기란 허탈해서다."

 

손석춘씨 입장에서 본다면야, '사실과 다른 주관적 논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말에는 '맥락'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손석춘씨는 대놓고 저 논리를 내세울 수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손석춘씨가 취하고 있는 포지션, 안그래도 손석춘씨의 민주노동당 분당 관련 칼럼에 부정적인 누리꾼들이 날카로운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판국에, 저 등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어봐라. 그 누리꾼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나는 손석춘씨가 그 정도 눈치는 있는 분이라 판단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맥락'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저주'를 안했다고 주장했나? "통일운동에 재나 뿌리지 말라"면서 "더는 민주노동당을 죽이지 말라"고 했다. 홍세화씨나 변영주씨가 민주노동당에 애정이 없어서 허탈한 소회와 함께 탈당했을까? 그들이 '가만히 아무 죄 없는 민주노동당'을 죽이려고 작정이라도 했을까?

 

손석춘씨, 그런 그들을 향해 뭐라 그랬을까? "곰비임비 다른 이들의 탈당을 부추기는 언행들"이라고 했다. 자주파는 그런 그들을 향해 '해당행위자'라고 퍼부어댄다. 손석춘씨는 오히려 그들의 저주를 부추겼다. 진짜 '해당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은 뒤로 미뤄버린 채 말이다. 이게 '저주'가 아니면 무엇인가.

 

'수구세력 덧칠'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너희들의 '해당행위'로 인해 조중동이 환호하고 있다"고 했다. 왜 '조중동에 유리한 짓을 하느냐'는 관점, 조중동이 환호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제 살 깎아먹기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살'인지 '암 덩어리'인지 정도는 미리 판단해야 할 일이다. '암'을 치료하고자 하는데 '조중동 환호론'을 내세워서 '탈당'이나 '분당' 자체만을 탓한다. 이걸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손석춘씨, 우리 속담에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이 있다. '말리는 척 부추기는 행위'가 직접적인 저주보다 더 파급력도 셀 뿐 아니라, 더 강한 인상이 남는 법이다. 시누이 노릇, 당장 그만두시라.

 

할 말만 마치고 떠나겠다는 것?

 

"막아보려던 분당이 이미 현실화했기에 더는 분당과 관련한 글을 쓰지 않으련다."

 

이건 어떻게 봐야 할까? 나는 입장에 끝까지 책임을 지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 할 말만 하고 쏙 빠지는 행위는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나 하는 짓이다.

 

진중권씨가 제기한 의문 중에는 "김창현은 민주노동당에 종북파는 한 명도 없다고 했는데 손석춘은 없지는 않다고 했다"는 것이 있다. 손석춘씨는 이번 반론글에서도 이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복했다. "민주노동당 안에는 주체사상이 신념인 사람도 있을 터다. 하지만 그들이 줄곧 민주노동당 지도부였고 중심노선이었던가? 아니다"라고, 또박또박 밝혀뒀다.

 

이 부분만 해도, 손석춘씨는 해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그들이 줄곧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중심노선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주파가 지도부를 주도적으로 구성한 동안, 당의 정책연구원들을 해고하고 당직자의 급여조차 제대로 지불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망가졌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백만민중대회'를 선거전략으로 채택하면서 득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숱한 당원협의회 장악 시도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부디 도망가지 마시라.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당파를 비롯해, 비록 민주노동당 당원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입장에 동조하는 나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손석춘씨의 해명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시누이' 노릇 그만두고 입장을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손석춘씨의 다음 칼럼을 기다릴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민노당 위기,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 분당, #손석춘,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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