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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올인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가 도입을 시사한 이른바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찬반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발상의 근원지인 인수위에 대해 황당함과 허탈함을 느끼고 있다. 특히 며칠 전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오륀지’, ‘프레스 후렌들리’ 발언, ‘영어 안 하겠다는 사람들, 배우기만 해봐라’ 발언 등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논란을 가중시켰다.

 

이명박 당선인은 오히려 밖에서 혼나고 들어온 동생 달래듯 영어 올인 정책에 동조하고 영어 사대주의적 발언으로 인수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급기야 ‘인수위원회는 영어 올인 위원회다’라는 비아냥거림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을 개선해야한다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에 대한 혐오는 이미 수십 년간 이어지고 있고, 교육부장관이 교체될 때마다 바뀌어대는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도 이젠 충격의 정도가 무감각할 정도다. 근시안적인 교육정책은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를 죽이는 교육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사교육은 공교육의 역량을 뛰어 넘은지 오래요,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신뢰의 시절을 망각할 정도다.

 

영어교육의 개선은 필요

 

흔히 성문세대라고 불리는 억지문법 중심의 교육을 받은 세대를 뒤로하고 현재는 다소 개선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공교육에 있어서 영어교육은 그 질이 높다고 결코 볼 수 없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서까지 영어를 배움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일상대화조차 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영어 공교육의 현주소를 실감케 한다. 그런 점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영어수업에 대해서는 그 취지에 원칙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많은 교육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인수위의 영어 올인식 사고는 위험해 보인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거두어들인 전 과목 영어수업은 인수위의 영어사랑이 얼마나 극진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정책을 소개하고 다시 거두어들이는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는 발상이 바로 차기 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한 틀을 가다듬고 있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비록 강한 반감에 의해 정책이 재검토 방향으로 흐르게 됐지만 이러한 발상에 대해 국민들은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인수위는 벌써 사교육 시장이 들썩이는 현 상황을 가벼이 보아서는 결코 안 된다.

 

 

외래어 표기법 수정을 언급하는 인수위원장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오륀지’를 언급하면서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을 손봐야한다는 말도 했다.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영어를 한국어로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한국어를 영어로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듯 마찬가지로 영어 또한 한국어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가 쓰는 우리말의 특성을 고려치 않고 단순히 원어민 발음에 따른 표기는 그 기준의 선정부터 표준화까지 실로 엄청난 난제가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영어 사대주의적 발상을 쏟아내는 이 위원장은 자신의 사고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인식해야한다. 이 위원장의 사고, 즉 원어민 발음대로 표기해야한다는 식이라면 영어뿐만 아니라 외국어 모두에 대한 표기가 바뀌어야한다. 이를테면 러시어어에 있어 ‘도스토예프스키’가 ‘다스따예쁘스끼’ 혹은 ‘다스따예쁘스키’로 변화되어야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영어도 영국식을 따를 것인지 미국식을 따를 것인지 논란은 거셀 것이 자명하다.

 

영어에 미치기보다 우리말에 미치는 것이 더 필요

 

영어가 국제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영어교육에 있어 보다 효율적인 방식이 요구되는 것 또한 분명한 현실이다. 하지만 인수위가 생각하는 영어교육 개선방안은 그 시각 자체가 대단히 불순(!)하다. 영어를 위해 우리말을 희생하자고 말하는 것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모국어를 기반으로 하여 시행되는 외국어 학습은 그 방식이 너무나 당연해서 생각의 변화를 꿈에서 조차 할 수 없다.

 

어떻게 모국어를 잃는 민족에게 미래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필리핀에서 민족의 기상을 찾을 수 있던가? 홍콩이 번영했다한들 중국인의 기상을 가지고 있는가? 게일어를 잃어가고 있는 아일랜드의 모국어 회복을 위한 분투는 슬픈 현실이다.

 

지금 미국이 세계경제와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하여 영어를 모국어에 우선하여 배우자 말하는 것은 일본이 동아시아를 지배하던 시절, 일본어를 배워 성공하자는 것과 다름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실 미국의 영광이 언제까지 갈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중국이 세계를 뒤흔드는 때가 오면 중국어 올인정책으로 갈 것인가? 이건 아니지 않는가.

 

설익은 영어교육정책으로 국민을 혼란으로 빠지게 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영어사랑을 과시하기 위해 어쭙잖은 영어발음으로 ‘오륀지’를 말하는 인수위원장은 견강부회(牽强附會)를 당장 그만둬야할 것이다. 영어사랑에 빠진 이명박정부의 손에 맡겨진 한국교육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영어 올인식 사고에서 벗어나야한다. 진정 국민을 위한, 국가를 위한, 100년 후를 내다보는 교육정책에 대한 숙고를 지금이라도 백지에서 새로 시작하기 바란다.


태그:#영어몰입, #이명박, #이명숙, #인수위, #오륀지, #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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