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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FCC(Federal Communication Commission, 미국연방통신위원회)는 언론이 거대 언론 집단에 의해 독점되어 정보의 흐름이 왜곡되는 병폐를 막기 위해 지난 1975년 제정되어 32년 동안 유지되어 오던 언론사의 신문과 방송 겸영 금지 규제를 풀고 방송과 신문의 겸업을 허용하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지난 12월18일 FCC는 이사회를 열고,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를 포함한 미국 주요 20개 도시에서 한 언론사가 신문사와 방송국을 함께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을 찬성 3, 반대 2로 통과시켰다.

 

FCC는 언론사의 신문과 방송의 겸업을 허용하는 대신, 해당 지역 시장점유율 4위 이내에 속하는 TV 방송사는 겸업 허용 대상에서 제외시키기로 했다. 이와 함께 겸업 허용 대상 도시에는 겸영 이후에도 최소한 8개 이상의 언론매체가 존재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이날 표결해 참가한 5명의 FCC 위원들 중, 미 공화당 출신의 케빈 마틴(Kevin Martin) 위원장과 2명의 공화당 소속 위원들은 찬성표를, 민주당 소속 2명의 위원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시민단체와 민주당, 법원 제소로 강력 대응 

 

FCC의 신문과 방송 겸영 허용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정이 실제 실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실 FCC는 지난 2003년에도 이번 규정과 똑같은 신문·방송 겸업 규제 완화 법안을 위원 3대 2의 투표로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언론학자 그리고 미 의회 의원들이 미 연방 항소법원에 이 같은 FCC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미 연방 항소법원에서 시민단체를 비롯한 소송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법안을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려 규제를 완화하려는 FCC의 계획이 무산된 바 있다. 따라서 아직까지 미국 주요 20개 도시에서 신문과 방송의 겸업이 허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 속단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FCC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민주당 의원들과 시민단체들은 이번 신문·방송 겸업 허용 결정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으며, 법원에 제소를 통해 FCC의 규제 허용을 반드시 막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민주당과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케빈 마틴 FCC 위원장은 2004년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존 케리 의원의 표결 연기 요청과 미디어 관련 시민단체들의 공청회 및 토론회 개최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표결을 밀어붙였다. 따라서 민주당과 시민단체들은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일부 거대 언론 기업들의 로비에 의해 결정된 이번 신문·방송 겸업 허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미국에서 언론사의 소유 구조에 관한 논쟁은 아주 오래된 주제 중 하나이다. 미국과 유럽의 언론학자들은 선진국의 언론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의 언론과는 달리 정치권력으로부터는 자유롭지만, 자본의 권력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에 의한 언론의 종속은 언론이 공공의 이익보다 언론 소유주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시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힘 있는 소수 언론 집단의 언론 독점은 결국 정보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가 일부 언론 집단에 의해 통제되어, 정보 소비자들이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미국 언론, 6개 거대 미디어 그룹이 장악

 

실제로 미국의 언론 소유구조를 살펴보면, 언론 독점의 폐해에 대한 우려가 단지 기우가 아닌 현실임을 실감하게 된다. 현재 미국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6개의 거대 미디어 그룹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실정이다.

 

미키마우스로 유명한 디즈니 미디어 그룹의 경우, 미국 전역에 10개의 텔레비전  방송국과 50개의 라디오 방송국, 그리고 미국의 대표적인 공중파 방송국 중 하나인 ABC 방송국을 비롯해 ESPN, A&E, 히스토리 채널, 디스커버리 매거진, 미라맥스(Miramax) 영화사, 그리고 자체 출판사 등을 소유하고 있다.

 

또 다른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 바이어컴 (Viacom)은 39개의 텔레비전 방송국, 184개의 라디오 방송국, 어린이 전문채널 니콜오디언(Nickelodeon), MTV, 파라마운트(Paramount) 영화사, 그리고 역시 미국의 대표적인 공중파 방송사 중 하나인 CBS를 소유하고 있다.

 

미국 내 거대 미디어 그룹으로 꼽히는 제너럴 일렉트릭 (General Electric)은 텔레비전 방송국 13개과 미국의 대표적 공중파 방송중 하나인 NBC 방송국, CNBC, MSNBC 등을 소유하고 있다.

 

루퍼드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뉴스 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은 26개의 텔레비전 방송국과 폭스(Fox) 뉴스 채널, <TV 가이드>, <뉴욕 포스트>, 위성방송국인 디렉트 TV, 20세기폭스영화사 그리고 소셜 네트워킹 인터넷 사이트인 마이 스페이스를 소유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몇몇 거대 미디어 그룹이 미국 전체 미디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FCC의 규제 완화가 큰 역할을 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FCC의 주도로 1996년에 통과된 ‘텔레커뮤니케이션 법’이다. 미국에서는 1996년에 이 텔레커뮤니케이션 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한 언론사가 미국 전역에 40개 이상의 라디오 방송국을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제했다.

 

그러나, 텔레커뮤니케이션 법의 통과로 언론사의 라디오 방송국 소유 규제가 풀리면서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은 라디오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는 클리어 채널 커뮤니케이션(Clear Channel Communication)사는 미 전역에 약 1,200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다.

 

언론시장의 정보 독점은 여론 왜곡 위험 

 

거대 미디어 그룹의 미국 언론 시장 장악은 결국 언론 소비자인 대중들의 다양한 정보 습득권을 제한하게 된다. 몇몇 거대 언론사에 의해 생산된 정보는 어떤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다양한 면을 담아내기에는 제한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외형적으로 미국 내에 많은 텔레비전 라디오 채널이 있지만, 그 채널의 소유주가 몇몇 언론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고, 거의 비슷한 정보와 내용을 전달하고 있어, 정보 소비자들이 어떤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거대 미디어 그룹들은 같은 뉴스와 방송 프로그램을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전국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다. 이러한 문어발식 소유를 통한 거대 언론사들의 정보 독점 현상은, 정보 소비자인 시청자나 독자들이 정확하고 다양한 양질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정보의 왜곡을 통한 여론의 왜곡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최진봉 기자는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매스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이기사는 미디어 미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케빈 마틴, #FCC, #신문과 방송 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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