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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신축된 역사. 편리함은 앞서지만 깊은 맛은 떨어진다.
▲ 춘양역. 1997년에 신축된 역사. 편리함은 앞서지만 깊은 맛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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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선(영주-철암) 개통과 함께 건축된 춘양역사(1955~1997). 이젠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다. 남아 있다면 근대문화유산 감이다.
▲ 구 춘양역. 영암선(영주-철암) 개통과 함께 건축된 춘양역사(1955~1997). 이젠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다. 남아 있다면 근대문화유산 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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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억은 춘양역에서부터 시작된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춘양목으로 유명한 춘양역의 겨울은 쓸쓸하다. 여전히 승객들의 발길이 뜸한 곳. 아직 오지로 남아있는 춘양. 춘양역 앞에서 옛 기억을 더듬으며 인근에 있는 그다지 유명하지도, 알려지지도 않은 석조여래입상을 찾아 나섰다.

춘양역에 남겨둔 기억은 이젠 잊어야 할 과거

춘양역 앞은 버려진 마을처럼 을씨년스럽다. 기차가 처음 개통했을 때만 해도 춘양에선 가장 번화가였지만 이젠 옛 영화를 짐작하기조차 힘들어졌다. 버려진 듯 빈 건물, 반쯤 깨어진 간판 안엔 거미줄이 가득하다. 기껏해야 지나가던 바람이나 머물까. 춘양역 주변은 빈 바람만 휭휭 떠돌았다.

철도 건널목을 건너 길을 따라 걸었다. 불상이 있다는 간판은 이번에도 없었다. 퍽 오래 전에도 불상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맸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시골에 길이라도 많나. 농로와 암자로 갈라지는 세 갈래 길에 서서 나는 길눈이 어두운 것도 아닌데 또 엉뚱한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걸을 때마다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끊임없이 나왔다. 기르고 있는 콧수염엔 가닥가닥 얼음이 맺혀졌다. 손으로 그것들을 쓸어내리며 언덕을 올랐다. 계속 걸으면 무슨 암자가 있다는 곳.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길은 아닌 것 같았다. 추운 날씨, 마침 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불상에 대해 물었다. 아이들은 마을에 불상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계속 올라가면 뒷산 자락. 지형상으로도 불상이 있을 곳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길을 되짚어 내려왔다. 불상에 관한 안내 표지판도 없는 세 갈래 길에서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마을 사람도 모르는 불상, 불상에 이르는 길은 여전히 좁고

그때도 이렇게 헤맸으니 불상과의 인연은 참으로 없는 셈이었다.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나서야 좁은 골목을 걸어 들어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집들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좁은 골목을 따라 걸으니 석조여래입상을 모시고 있는 집이 나타났다. 쉽게 찾을 수 있었음에도 해메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했다.

불상을 모시고 있는 집, 절이라고 하기엔 초라하다. 아무런 편액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마당은 이번에도 누군가 농사를 지었다. 오래 전 여름쯤에 왔을 땐 배추와 무가 심어져 있었다. 어느 집의 텃밭으로 사용되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춘양. 문화재라는 게 이렇게 소홀하게 취급된다.

하긴 석조여래입상에 대한 안내 표지도 없는 곳이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 마당을 갈아 엎어 야채 좀 심었다고 그게 무슨 잘못이라고, 얼굴 붉히며 야박하게 복원하라고 소리칠 일도 아니다. 어쩌면 마당이 개인 소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하려 해도 불상 마당에 농사 짓는 것은 심하다 싶다.

신라말 고려 초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보존이 잘 되어있는 편이나 코가 깨졌다. 경북 유형문화제 131호로 지정.
▲ 석조여래입상. 신라말 고려 초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보존이 잘 되어있는 편이나 코가 깨졌다. 경북 유형문화제 131호로 지정.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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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에 불상이 있다. 오래된 건물은 아니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건축된 건물. 열린 문 사이로 불상이 얼핏 보인다.
▲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 건물 안에 불상이 있다. 오래된 건물은 아니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건축된 건물. 열린 문 사이로 불상이 얼핏 보인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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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신라말이나 고려초인 10세기 무렵에 만들어졌다고 했다. 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은 석조여래입상. 인간의 짧은 생애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긴 세월을 한 자리에서 묵묵히 지내온 불상은 코가 깨졌다.

차라리 그냥 두지. 행정당국에서 한 일이겠지만 시멘트로 만들어 붙인 코는 불상의 잘 생긴 얼굴을 다른 얼굴로 성형을 시키고 말았다. 석공의 혼이 어이없이 무너진 현장엔 누군가 다녀갔는지 촛불을 밝힌 흔적만 남아있다.

호젓하게 앉아 천년의 세월을 느껴보고 싶었으나 주변엔 걸터 앉을 곳도 없었다. 철없는 새들만 낯선 객의 방문에도 아랑곳없이 이리저리 휩쓸렸다. 새들은 객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밭에 내려 앉더니 먹이를 물고는 급히 하늘로 비상했다. 여행자 또한 새들처럼 서둘러 떠나야 하는 곳. 불쑥 찾아든 객은 불상에게 두 손을 모은 후 자리를 떴다.

낡은 자전거포에서 노인의 '알통'을 보다

석조여래입상을 만나고 나오는 길,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한 자전거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자전거포 앞엔 고장난 자전거 두어 대가 서 있고, 한쪽엔 사용불능의 바퀴들이 고물처럼 모여있다. 자전거포 주인인듯한 노인 한 분이 담배를 피워 물고 나왔다. 그에게 다가갔다.

"오래된 자전거포 같은데요?"
"꽤 됐지."
"오토바이도 보이는데 그것도 고치나요?"
"오토바이나 잔차나 고치는 일이 비젓해."

노인은 할 일이 없는지 자루가 빠진 드라이버를 만지작거렸다. 실내를 들여다 보니 작은 공간엔 생경한 부품들이 가득 쌓여있다. 노인의 나이는 일흔을 넘겼다고 한다. 그 연세에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답이 재미있다.

"아직 다방 아가씨들 번쩍 안아 들 정도의 힘은 있지. "

노인이 팔을 들어보이며 '알통'을 만들었다. 여행자가 노인을 보며 풀썩 웃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 하니 "에이, 이런 건 찍어서 뭐해. 작품 사진을 찍어야지"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젊었을 때 사진 찍기를 즐겨했다며 카메라 이름을 줄줄 꺼낸다.

"요즘엔 디지털카메라라고 해서 찍은 것을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디지털? 그거 손자 녀석이 들고 다니는 거 봤어. 세상 좋아졌더만. 예전엔 필름 값도 무시 못했는데 말여."

노인은 카메라 이야기가 나오자 신명이 났다. 노인은 내게 잠시만 기다리면 집에 가서 예전 사용하던 카메라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나는 그럴 것까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손님은 옵니까?"  
"요즘은 없어. 추운 겨울에 누가 자전거 타려고 하나? 심심하니 가게 문 열어 놓는 거지 뭐."

노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낯술을 마신 사내 셋이 비틀거리며 지나갔다. 오십 대로 보이는 그들은 사거리를 지나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그들을 보며 "젊은 것들이 대낯부터 취해가지고선…"하며 혀를 쩟, 찼다.

자전거포를 운영하고 있는 권 할아버지. 겨울이라 손님이 뜸하다고.
▲ 권 할아버지. 자전거포를 운영하고 있는 권 할아버지. 겨울이라 손님이 뜸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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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오래된 자전거포. 할아버지의 손맛으로 고치는 곳이다.
▲ 자전거포. 낡고 오래된 자전거포. 할아버지의 손맛으로 고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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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에게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길을 따라 걸었다. 사거리를 지나 운곡천을 가로 지르는 다리를 건넜다. 백두대간에서 흘러내리는 운곡천은 춘양 사람들의 목을 적시는 생명수. 물은 오염원이 없는 탓에 맑았다.

담장 안을 기웃거리게 만드는 한수정, "대문 좀 열어두지" 

다리를 건너니 정자가 눈에 띄었다. 운곡천변에 있는 정자는 한수정. 운곡천을 흐르는 찬물처럼 맑은 정신으로 공부에 전념하라는 뜻이다. 중종 때의 문신인 충재 권벌의 손자 권래가 할아버지가 세웠던 거연현이 소실되자 그 자리에 한수정을 만들었다. 1608년에 세웠다니 꼭 400년이 되었다.

400년 풍상을 견딘 한수정은 그 시절 선비들이 간직했던 고고한 품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대문이 걸려있어 건물을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담장이 낮아 건물의 생김은 확인이 가능하다.

한수정은 '丁'형에 팔작지붕을 얹었으며 정자 주변으로는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예로부터 봉화는 안동문화권으로 정자 문화가 발달했다. 한수정은 봉화 지역의 200여개 정자 중에서도 건축미가 뛰어난 건물로 평가 받는다.

봉화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는 역시 충재 권벌이 유곡리 닭실마을에 세운 청암정이다. 그의 정신이 남아 있는 한수정도 청암정 못지않은 건축미와 자연을 이용한 인공 연못을 멋드러지게 조성하였으니 한수정이나 청암정에 가면 권벌의 풍류와 선비 정신은 물론이고 그 시절의 건축 양식까지 엿볼 수 있다.

담장엔 한수정을 세울 때부터 있었던 듯 늙은 느티나무 몇 그루가 한수정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었다. 여름철 정자마루에 둘러 앉아 잘 익은 차 마시며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수정.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시낭송회 같은 것을 한수정에서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400년 전에 건축된 건물로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는 뜻이다. 운곡천변에 있다.
▲ 한수정. 400년 전에 건축된 건물로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는 뜻이다. 운곡천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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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에서 만난 아이들. 추운지 볼이 발갛다.
▲ 춘양아이들. 춘양에서 만난 아이들. 추운지 볼이 발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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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춘양거리를 걸었다. 지나가는 차량도 뜸한 동네인 춘양. 아이들을 만났다.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과자를 사러 가게에 간단다. 아이가 지나가고 한 농부가 경운기를 몰고 거리를 지나갔다. 경운기의 소음이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여행객이 멈춘 걸음은 춘양정미소.

춘양에서 나는 쌀, 그 부끄러운 속살을 확인하다

정미소에 들러 물으니 춘양 일대에서 나는 쌀은 다 이 집을 거쳐 대처로 나간단다. 피댓줄 돌아가는 소리는 경운기 엔진 소리보다 크고 시끄러웠다. 춘양지역에서 나는 쌀은 다른 지역보다 조금 비쌌다. 왜 비싸냐고 물었다.

"춘양처럼 오지에서 나는 쌀이 어디 있나요?"

그래서 조금 비싸단다. 공기 좋은 곳에서 생산했으니 그 값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비행기로 농약 쳐가며 키운 쌀과는 분명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 촌사람들이 우직하게 키운 쌀은 그냥 쌀이 아니라 다들 자식 같은 것들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이야 아니지만 70, 80년 대만 해도 정미소는 그 지방의 돈을 다 끌었을 정도로 호황이었다. 지금도 돈을 많이 버느냐고 물었더니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미소를 나와 어디로 갈까, 하며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오래 전 춘양에 왔을 때엔 북지리 마애불을 만나고 늦은 시간 오전 약수에 들러 약수로 만든 닭백숙을 시켜 먹었다. 후식으로 나온 녹두죽이 맛있었다는 기억과 엄청나게 짰던 김치는 손도 대지 않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젠 과거가 되어버린 추억의 공간에서 어쩐 일인지 잊어야 할 것들만 머리속을 헤집는다. 그러나 여행자는 걸어야 하고, 목적이 있건 없건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그것이 여행자의 숙명 아니던가. 길에서 만난 인연과 악수하고 또 헤어지고, 그렇게 하다 조용히 늙어가는 것이 여행자의 삶인 것이다. 자, 가자. 저 길이 끝나는 곳으로.

춘양 지방에 나는 쌀은 이 집에서 몸을 씻은 후 대처로 팔려나간다.
▲ 춘양정미소. 춘양 지방에 나는 쌀은 이 집에서 몸을 씻은 후 대처로 팔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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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춘양, #자전거포, #봉화, #한수정,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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