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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보는 시골풍경이야 좋지만...

 

이제 곧 명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내려가 조상묘소에 들를 것이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며칠 쉬어가고 싶기도 하고 아예 몇 년 눌러있다 가고 싶기도 할 것이다.

 

고향에서 돌아와 친구 녀석에게 산소 가는 길에 시골은 참 한적하고 좋았노라고, 그곳에서 몇 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녀석은 피식 웃는다. 밖에서 보는 농부 모습은 목가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제 농부의 삶이 얼마나 처절한지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녀석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나는 농촌에 대해 아는 것없이 그저 풍경에 젖어서 멋대로 떠들었을 뿐이다.

 

최근 민주노동당 분당 논쟁에 대해 보여주는 손석춘씨의 모습이 그렇다. 당 밖에서 보면  한줌도 안 되는 진보세력이 서로 날선 논쟁을 하며 분당을 각오하는 것이 안타까워 보일지 모른다. 그런 손석춘씨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현재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소박한 감수성이나 단순한 산술계산으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몇 년을 민주노동당원으로 살아온 나는 소위 신당파의 일원이다. 현재 우리가 맞서고 있는 것은 같은 진보세력이라는 이름으로 알게 모르게 용인되어 왔고, 고쳐지지 않았던 비상식이다.

 

지금 당장 당 게시판에 들어가 보라! 지난 몇 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당비대납과 회계부정은 부지기수다. 10명이 주소지를 한집으로 옮기는 것도 모자라 자기 자식을 입당시켜서 지구당을 접수했다. 이 따위 짓거리가 진보정당 안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문제에 대한 반성과 시정은 없었고 비판은 묵살당했다. 이러한 일들을 저지르는 당내 세력이 있다. 소위 자주파다.

 

우리가 당에서 지키고자 하는 것은 난해한 이론적 노선이나 운동의 강고한 규율이 아니다. 사람이면 지켜야할 기본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도 못 지키면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거짓말 하지 말자. 정치는 정직해야 한다. 거짓을 덮어두고 무조건 뭉치라고? 그것은 야합이지 단결이 아니다.

 

우리는 상식이 통하는 당을 만들 것이다. 진보신당이 단순히 파이를 갈라먹는 분당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이해하는데 기초적인 상식만 있으면 족하다. 손석춘씨가 말하는 것처럼 현학적 사유의 대상이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줌도 안 되는 세력이니 뭉치라고? 그런 손석춘씨의 모습을 보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네다’라고 외치던 60년 전 한 노회한 정치가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일인가.

 

이런 상황에서 한줌도 안 되는 세력이니 뭉치라고? 

 

2004년 총선 때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한 지역구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후보는 낮은 득표율로 보조금도 못 돌려받았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될 줄 알았던 우리 후보는 결국 낙선하고 말았다. 상심이 컸다. 만날 지는 선거만 해도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남이 뭐래도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자신감 말이다.

 

그러나 당을 바라보며 과거에 가졌던 자신감은 이제 없다. 노동자를 위한다면서 상근자 급여를 연체하는 정당, 재벌의 비리는 욕하면서 자신은 부정한 정당이 있을 뿐이다. 지금 당이 절망적인 것은 지지율 3% 때문만이 아니다. 당원들에게 그것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총선 때 어머니는 민주노동당의 열성적 지지자였다. 직장 동료나 친척들에게 민노당 찍으라고 권유하고 다니셨다. 내가 선거운동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가면 그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다가 오늘은 누구를 꼬셨노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셨다.

 

그런 어머니가 이번 대선에서는 냉랭하시다. 어머니 잘못이 아니다. 권영길 카드와 ‘코리아 연방’으로 누구를 얼마나 설득할 수 있겠는가. 이제 민주노동당은 내 부모도 설득 못하는 정당이 되고 말았다. 결과는 지지율 3%.

 

그보다 더욱 참담한 것은 잘못된 후보 선택과 전략에 대해 누구 하나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당 구조와 행태로 보아 부모님 설득하기는 계속 글러먹을 것 같다. 한 줌도 안 되는 정당을 쪼개야만 하는 것은, 앞으로 계속 한줌짜리 정당으로 남아 있지 않기 위함이다.

 

 손석춘씨는 당을 나가려거든 통일운동에 재나 뿌리지 말라고 한다. 통일운동도 여러 가지 다. 멸공통일도 있고, 북진통일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통일운동이냐는 것이다. 북핵을 비판하지 못하며 당원 정보를 북에 넘기는 통일운동, 어디 찢어지게 힘든 당 재정은 안중에도 없이 북한방문 이벤트나 여는 통일운동, 상근자 급여를 연체하면서까지 반미집회를 남발하는 그런 통일운동이라면 나는 재보다 더한 것도 뿌릴 것이다.

 

 분명히 말한다. 우리가 쪼개려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간판만이 아니다. 과거에 있어왔던 몰상식과 몰염치, 그것을 은근히 용인했던 우리의 잘못을 쪼갤 것이다. 이것만 이루어진다면 우리 앞에 놓인 고생길이 그리 누추하지는 않을 것이다.


태그:#민노당 논쟁, #신당, #분당, #손석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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