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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우리는 예비 임산부 배지 달기, 높낮이가 다른 지하철 손잡이 설치 등 작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현실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희망제작소'의 사회창안센터가 만들어낸 변화이다. 그 이름과 분위기에서부터 딱딱한 연구소의 틀을 벗어버린 '희망제작소'의 윤석인 부소장을 만나 인터뷰를 나누었다.
 
윤석인 부소장은 '희망제작소'를 ‘진보’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진보진영의 연구소 중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편임을 생각했을 때 의외의 답이었다. 그는 진보라는 말 대신 실사구시의 정책대안이라는 표현을 써달라고 주문했다.

 

'희망제작소'는 일상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말 중요한 것들 그러나 남들이 간과했던 것들을 연구하려고 한다. 이와 함께 이제까지 사회운동에서 가장 기본적인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대상화되었던 시민들을 다시 주체로 세우는 것을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 보고 있었다.

 

현재 연구소에서는 국가적 의제를 다루는 대안센터, 지역 활성화를 모색하는 뿌리센터,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사회창안센터, 공공문화센터, 소기업 발전소를 중심으로 연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우리사회 14개 분야에 대해, 각 분야 당 30명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통해 얻은 연구결과를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통계와 선행연구 비판 중심의 연구에서 벗어나 새로운 연구방식을 개척해간다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진보' 대신 '실사구시'라 불러달라

 

- 인터뷰를 제안 드리면서 한국의 진보 연구소 소개라는 취지를 말씀드렸더니 '희망제작소'는 ‘진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우선 이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면 어떨까요?

"‘진보’라고 하면 ‘보수’라는 대립항이 바로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 모두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이 변화하면 진보와 보수의 기준도 변화하는 것이죠.

 

또한 이념적인 오해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흔히 단순하게 진보는 좌파, 보수는 우파라고 규정짓게 됩니다. 이러면서 버려야 할 이데올로기적 유산까지 함께 떠올릴 수 있습니다. 생산적이지 않은 선입견을 유발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내부적으로는 진보나 보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희망제작소'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스스로를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정책대안을 만들어가는 민간 싱크탱크라고 표현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좌파냐, 우파냐, 중도파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답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좌파도, 우파도, 중도파도 아니며 그렇게 규정당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진보나 보수라는 거대담론 대신에 아주 작은 일상의 개혁을 추진하는 것, 대안의 정책으로 비판하는 것 그리고 실천하는 것을 우리의 정체성으로 삼고 싶습니다."

 

- '희망제작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입니까?

"시민들에 의해서 시민들을 위한 정책이 만들어지는 사회, 시민이 주체가 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시민이 중요하다, 민중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시민과 민중을 대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7,80년대의 사회운동은 상대방과 나의 구분이 명확한 이분법적 인식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분이 유의미했고 불가피했기에 그것이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민중이 지지하는 투쟁, 국민이 지지하는 투쟁이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지금 시대는 이분법적으로 피아를 나눠서 싸우는 것이 적절한 방편이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기본은 결국 시민 중심, 국민 중심입니다."

 

다원화된 사회, 이분법적 인식을 탈피해야

 

- 피아 혹은 적아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회인식이 이제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인가요?

"문제를 풀어가는 방편으로 옳지 않아 보입니다. 이제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원화되었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이명박 당선인의 경제정책과 대북정책 등을 모두 지지하면서도 열렬한 환경론자인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하나의 잣대로 규정하기 어려운 사회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분법적 인식은 적절한 방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사회 전반으로 볼 때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노동’, ‘환경’, ‘빈곤’ 등의 각 분야로 나누어서 생각할 경우에는 적아의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노동의 문제를 예로 들어 이야기하자면, 그 역시도 지금 시대에는 적아가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 의미의 노자관계는 많이 무너졌습니다. 산업화가 맹렬히 진행되던 시기와 지금의 노자관계는 상당히 다릅니다. 존재양식도 다르고, 그것을 바라보는 패러다임도 달라져야 합니다.

 

물론 ‘노동시장의 유연성’만을 강조하고 그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책은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현실적인 극복대상은 있을 수 있습니다. 현실정치세력을 중심으로 엮여 있는 재벌, 매판세력들을 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한 발만 더 들어가면 복잡합니다. 단순화하기 어렵습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대기업 노조의 횡포가 제기되기도 하며, 자본가라고 하여 중소기업도 대기업과 똑같이 적대적으로 취급하거나 책임을 묻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이제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전통적 대립관계로 양분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에게 하나로 단순화된 전선이 얼마나 절실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 많은 진보진영에서 신자유주의를 중심에 놓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연구소는 거대담론에 대한 토론이나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없고,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논의해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대담론이 불필요한 규정과 논쟁을 가져오기 때문이죠. 또한 우리가 거대담론에 대한 자신있는 답변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말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간과된 것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예를 들자면 조례재정 사업 같은 것이죠. 우리 일상의 삶을 일일이 규정하는 것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연구하는 곳은 없었죠. 재난관리와 예방도 매우 중요한 국가적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연구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마침 충북대학교에서 이와 관련한 연구소를 세운다고 하셔서 우리와 함께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각 분야 당 30명의 시민들과의 심층면접을 통한 연구 진행

 

- '희망제작소'의 연구 사업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조직체계 상 크게 다음의 5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회창안센터, 뿌리센터, 공공문화센터, 대안센터, 소기업 발전소입니다. 2006년에 3월에 창립하면서 처음 시작한 것이 사회창안센터입니다. 시민들의 작은 생활 아이디어를 온라인으로 모아서, 그 의미와 현실가능성을 검증한 후 제도개선으로 실현하는 사업입니다

 

뿌리센터는 2006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난 후, 신임 자치단체장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시장학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자치단체장들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교육을 지원한 사업이었고요. 여기서부터 조례연구소, 주민참여클리닉, 농촌희망본부 등이 세워졌습니다.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모든 것을 연구하고, 직접 컨설팅도 하고 있습니다.

 

국가아젠다를 다루는 대안센터에서는 ‘우리시대 희망찾기’라는 이름으로 14개 분야에 대해 시민들의 심층면접을 토대로 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현재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가 완료되어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재난관리, 조직퇴직자 문제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공공문화센터는 간판, 공원, 건축물 분야에서 현재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계아젠다, 국가아젠다, 지역아젠다를 모두 관통하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에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소기업 발전소는 가장 늦게 시작된 사업으로 우리산업의 미래전망을 소기업에서 찾자는 취지입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조선 산업, 반도체 산업 등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이 산업들도 언젠가는 하향산업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산업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답은 분명 현재 존재하고 운영되고 있는 작은 기업들 속에 있다고 봅니다."

 

- 시민들과의 심층면접을 통한 대안센터의 연구방식이 신선하게 다가오는데,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앞서 말씀드린 민주주의 외에도 교육, 복지, 환경, 평화, 지역, 법률 등의 분야의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하나의 분야라고 해도 한 번의 연구로 다루기에는 방대한 내용들이기 때문에, 2년을 단위로 각 분야를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는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일단 일차적으로 올해 말까지 각 분야에 대한 연구결과가 책으로 발간될 것입니다.

 

연구는 각 분야 당 30명의 시민들을 직접 만나서 심층면접을 하고, 그것을 분석하는 방식을 진행됩니다. 연구자는 심층면접을 하는 시민들의 솔직한 의견을 듣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그 사람의 생장과정 전체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방식이 정착되고, 성과가 쌓이게 되면 통계와 선행 연구 분석 중심의 연구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연구방식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시민을 주체로 세우기 위한 노력

 

- 심층면접이라는 연구방식을 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국민, 시민, 민중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대상화해왔다는 자성에 출발했습니다. 학자들은 어쩔 수 없이 추상화된 연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마저도 그런 것에 익숙해져서 가장 기본을 놓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 시민들을 직접 만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 현재 연구원들은 몇 명 정도 있나요?

"얼마 전 신규채용한 분들까지 합해서 대략 70명 정도가 있습니다."

 

- 연구소 운영 재정은 어떻게 마련하고 계십니까?

"현재 연구소를 후원하는 회원들이 1000여 명 정도 계십니다. 올해는 회원 확장에 중점을 두어 전체 재정의 50% 정도를 회원 후원금으로 감당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민간 연구소들의 상황이 다 어렵듯이 우리도 사정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연구원들의 헌신이 많이 필요하죠."

 

이명박 정권 하에서 우려되는 언론의 행태

 

- '희망제작소'가 진보연구소의 대표격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일단은 ‘박원순’이라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컸다고 봅니다. 진보라는 규정에 갇히지 않으려고 하고, 국민들을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 주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던진 점 등 우리 나름의 원칙이 받아들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직은 내실을 더 기해야죠. 특히 올해는 지난 2년간 확장된 사업의 내실을 튼튼히 채워가는 시기로 삼을 생각입니다."

 

-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경제대통령이라는 국민들의 바람으로 당선된 만큼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경제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나름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식은 제쳐두고라도 일자리 창출이나, 성장률 상승과 같은 최종목표는 이룰 수도 있겠죠. 그러나 경제, 성장이라는 것 외에 가치지향점을 찾을 수 없다는 점과 동시에 포퓰리즘적 정책운영 면에서 우려가 됩니다.

 

희망제작소(소장 박원순)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5번지 동일빌딩 2~6층

홈페이지 : www.makehope.org

전화 : 02-3210-0909 / 팩스: 02-3210-0126

▶후원 및 회원가입 안내

정권 그 자체보다도 언론이 걱정됩니다. 이미 언론이 굉장히 정치적으로 변해있습니다. 정책의 피드백 역할, 국민들의 여론 수렴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하고 있습니다. 심히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정책대안 웹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이수연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


태그:#희망제작소, #윤석인 부소장, #진보연구소, #사회창안, #실사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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