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백지 위임장을 받은 듯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자세는 민주주의적인 상황에서는 허용될 수 없다. 낙동강 운하 건설과 같은 엄청난 메가 프로젝트는 민주적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말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득표율은 30.5%였다"며 "전체 유권자의 37%에 이르는 기권자수에 비하면 득표율은 매우 낮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는 "진보적 유권자가 투표장에서 절망적인 선택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1일 오후 7시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열린 강연을 통해 17대 대선의 의미와 4월 총선 전망을 내놓았다. '민주정부 10년 경험으로부터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라는 제목이었다.

 

그는 "17대 대선의 결과는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인 실패에서 기인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파의 패배는 좋은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고, 정부를 통제하는 게 아닌 권위주의적 관료의 영향을 받게 되는 등 민주주의 적응과 실천의 실패"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는 앞선 한나라당의 비판을 비롯한 현실정치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에 대해선 날선 비판을 가했다. 문국현 후보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3시간 동안 진행된 최 교수의 강연은 질문 공세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등 뜨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진보파 대선 패배의 핵심은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실패"

 

"노무현 정부에 대한 유권자의 복수다."

 

최 교수가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말을 빌려 17대 대선을 진단한 말이다. 17대 대선을 노무현 정부의 경제적 실패에 대한 투표였다는 다수의 평가와는 거리를 뒀다. 그는 "경제적 실패보다는 정치적 실패가 참담한 대선 패배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17대 대선 결과는 2002년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켰던 지지 세력의 바람과 요구를 실현하지 못한 데 대한 징벌적 의미다. 노무현 정부는 민주주의의 가장 근간이 대표와 책임의 원리를 다하지 못했다."

 

최 교수는 그 연장선상에서 "97년 12월 IMF위기 이후, 좋은 개혁이 이뤄졌다면 참담한 실패는 안 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두 번의 민주정부는 단기적인 성장 회복에만 관심을 가져, 현실과 타협했다"고 지적했다.

 

17대 대선이 유권자 보수화의 결과라는 평가에 대해 최 교수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유권자들이 5년 전에는 진보적이었고, 이번엔 보수적이었다는 평가는 단순한 현상만 설명한 것이다. 하층이나 진보적인 유권자에게 이번 대선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또한 올해 대선은 투표율이 심각하게 낮았는데, 소외 계층,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기권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권 인사들, 사회경제적인 것보다 자신의 정책 정당화에 노력"

 

강연이 중반에 접어들자, 최 교수는 진보파에 메스를 들이댔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파가 실패한 이유를 날카롭게 해부한 것이다. 그는 "진보파는 새로 출발하는 것조차 부정당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2004년 총선 이후, 각종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파가 승리한 적이 없다"며 "그들이 유권자들의 신호에 왜 반응하지 않았느냐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과 운동권 인사들이 사회경제적인 것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지 않고,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며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 하는 등 가상의 현실을 상정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답을 가져왔다.

 

최 교수는 이어 "당정 분리, 원내 정당체제로의 개혁, 국민 경선제 등이 정당을 약화시켜 사회적 약자들과 정당이 접촉할 수 있는 접점이 축소되었다는 주장도 폈다. "이러한 일련의 정치 개혁들은 정책 산출의 효과를 높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주의 핵심은 참여의 폭이 확대되느냐다. 산출 중심의 가치는 권위주의적인 것이다. 민주정부들도 성장률을 올리는 데 급급해서, 관료들의 역할에 종속됐고, 운동권 엘리트들에게는 권위주의적인 가치가 수용됐다."

 

그는 또한 "(노무현 정부의) 정치언어, 담론, 슬로건은 매우 급진적이었지만, 내용은 신자유주의였다"며 "이명박 정부의 출현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파의 승리 요인은 무얼까? 최 교수는 이에 대해 "민주파는 정당과 정치를 부정적으로 이해해 그것을 약화시켰지만, 보수파는 민주파의 집권에 대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지지를 강화하는 쪽을 선택해 집권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명박 30.5%로 당선, 백지 위임장 받은 것 아니다"

 

이날 강연에선 4월 총선에 대한 전망도 이뤄졌다. 최 교수는 먼저 현실정치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먼저 17대 대선을 통해 집권세력이 된 한나라당을 겨냥했다.

 

최 교수는 "백지 위임장을 받은 듯한 인수의 자세는 민주주의적인 상황에서는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낙동강 운하 건설과 같은 엄청난 메가 프로젝트는 민주적인 결정도 아니고, 민주적인 정부가 해야할 일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 이유로 그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득표율이 전체 유권자의 30.5%점을 들었다. 그는 "기권자수가 전체 유권자의 37%에 해당한다"며 "이 당선인의 득표율은 매우 낮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처럼 방송위원회을 대통령 직속으로 하겠다는 인수위의 발표에도 최 교수의 비판이 이어졌다. 그는 "우리의 신문, 방송 구조와 완전한 시장원리 체제인 미국의 구조는 다르다"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 것은 뭐든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현 가능한 정책 목표 가져야 5년, 10년 뒤에 기회 와"

 

최 교수는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도 한소리 했다. "우리당은 권력에 의해 위로부터 만들어진 정당이었다"며 "처음부터 자생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슨 공통의 이념이나 지향점을 가진 게 아니라 권력을 바라보고 그 정당에 갔다"며 "쉽게 다수당이 된 우리당은 권력을 잃으니 쉽게 해체됐다"고 말했다.

 

문국현 후보에 대해서는 "통합신당에서 커버할 수 없는 개혁적인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경제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통합신당, 한나라당과의 차이를 만들었을 때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다. 문국현 후보의 정당이 (제대로 된) 정당이 되기 위해선 분명한 이념과 정책, 어필할 수 있는 무언가가 확실히 제시되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민노당 식으로 해서는 전망 없다"는 가혹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남북통일 문제보다 사회경제적 이슈가 더 중요한 만큼, 노동자의 실생활 문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힘을 써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매일 '운동'하고 파업하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미FTA와 같이 제도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데모가 부분적으로 유효할 수 있다"면서도 "(데모가) 정치에 중심에 들어서면 찍을 표도 다 달아나 버린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마지막으로 진보파의 4월 총선 전망과 관련해, "선거에서 참패할까봐 조급증이 생겨 문제를 급진적으로 풀거나 운동에 집중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제도적 정치들을 통해 민주주의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엄청나게 열려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현 가능한 정책 목표 프로그램을 가지고 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민주적인 제도 안에서 문제를 풀어간다면 5, 10년 후에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최장집, #17대 대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