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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매체다. 영어단어 'new'에서 따온 뉴스라는 말 역시 새로운 소식이란 뜻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새로운' 소식만을 골라, 세상에 일어나는 변화를 짚어내 독자,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모든 언론매체의 역할이다.

 

물론 언론은 세상의 모든 변화를 다 담아내지 않는다. 하루에 수백 쌍의 부부가 이혼하고, 이 사건들은 각각의 가정에 매우 큰일이지만 언론은 이들 사건을 일일이 보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변화가 공적인,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 변화라면 그것을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책임이다. 특히, 그것이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변화라면 특히 그러하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한국 정치사상 보기 드문 케이스다. 경제인 출신 대선 후보는 지금까지 정주영, 정몽준 등 몇몇 인물이 있었지만, 이들은 대기업 총수, 축구협회 회장 등 요직을 맡으며 국민의 관심을 받아오던 인물들이었다. 유한킴벌리라는 다소 생소한 회사의 CEO 출신인 문국현은 아무런 정치적 지지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출마를 결심했고, 50%에 미치치 못하는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지지층을 확보하며 6%(여론조사 결과)의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정치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기성세대는 이러한 문국현의 약진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분명 한국 정치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던 일이 현재 진행중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지지율이 얼마가 되든 간에 새로운 현상인 '문국현 현상'에 대한 언론의 주목이 있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세력 대신 '비전'으로‥ '정치 신인' 문국현의 정면승부

 

문국현 후보는 '정치 신인'이다. 그가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판에 뛰어든 것이 8월 23일이니 이제 막 세 달을 넘긴 '초짜 중의 초짜'인 셈이다. 출마 직전에는 그를 돕겠다는 정치인들이 몇몇 있었지만 현재 문국현 캠프에서 문 후보를 돕는 정치인으로는 김영춘 국회의원 정도뿐이다. '1인 정당', '세력이 없는 후보'라는 세간의 평가는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노무현처럼 정치세력도 없고, 정주영처럼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한 문국현은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신당의 경선에 참여하는 대신 독자정당을 만들었고, 국회의원을 영입해 세력을 확장하는 대신 지식인, 경제인을 모아 '대한민국 재창조위원회'를 만들었다. 예비 인수위원회를 조직해 누구보다 내실 있는 정책과 공약으로 승부를 겨루겠다는 계산이었다.

 

오랜 회사 경영과 시민운동을 통해 축적된 그의 가치관은 정치인들에게 볼 수 없는 화려한 수사로 표출되었다. '사람이 희망이다', '품격있는 국가', '사람중심 진짜경제' 등의 수사는 급조한 표어가 아닌 문국현의 삶으로부터 나온 문구였고, 문국현 지지자를 중심으로 급격히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다.

 

그런 문국현을 주목한 것은 정치인도, 언론도 아니었다. 노사모처럼 정치에 관심 있는 386세대도 아니었다. '정말 찍을 후보가 없다'며 낙심하던 네티즌들이 문국현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문국현 후보를 검증했다. 문국현 후보의 유한킴벌리 시절 행적을 검증했고, 그의 공약과 비전을 검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칭 '문뽕', '문향'(문국현 지지자를 일컫는 별칭)이 되어갔다. 정치적 무관심층이 적극적인 정치세력이 된 것이다.

 

정치 무관심층, '문뽕'이 되다

 

선거를 앞두고 '문뽕'들은 인터넷을 벗어나 오프라인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해외동포들이 움직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교민들은 자체 제작한 '문국현 신문'을 들고 공항에 나가 문국현 알리기에 나섰고, 프라하나 몽골에 거주하던 교민이 선거운동을 위해 하던 일을 접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국회의원이 1명뿐이라 국고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돌반지를 팔고, 아르바이트 비를 털고, 야근수당을 모아 특별당비로 내는 열성 지지자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모은 당비는 어느덧 5억 원에 이르고 있다. 선거자금이 모자라 유급사무원을 쓸 수 없게 되자 지지자들이 대거 자원봉사자를 자처했고, 현재 문국현 캠프는 대부분의 인력을 자원봉사를 통해 수급 받으며 선거운동을 펼쳐가고 있다.

 

사회 유력인사들의 지지선언을 이끌어내는 여타 후보들과는 달리, 문국현 후보는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지지선언을 이끌어냈다. 대학교수, 여성계, 시민사회로부터 지지선언을 받는 것은 다른 후보와 차이가 없지만, 문 후보를 지지하는 일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지선언을 조직하고 나선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정치적 무관심으로 악명높은 20대 대학생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새내기 유권자 1219인' 지지선언과 '88만원 세대 대학생 3067인' 지지선언을 낸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국현 지지 확산은 그에게 '인터넷 대통령'이란 별명을 안겨줄 만큼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위력을 자랑하고 있다. 문 후보는 각종 포털, 카페,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실시하는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자랑하며 1위를 달렸다. 인터넷 여론조사의 방법상 신뢰도가 높지는 않지만 젊은 계층을 중심으로 문국현 열풍이 불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여타 유력후보의 홈페이지에 밀리지 않는 게시물 수와 각종 토론 게시판에서 문국현 관련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는 것 역시 오프라인과 다른 온라인에서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문국현 현상'은 2, 30대의 지지로만 해석할 수 없다. 이미 인터넷은 2, 30대의 전유물이 아니며, 50대의 인터넷 사용률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그 지형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나선 이들은 지역으로도, 이념으로도, 세대로도 묶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들 중에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을 지지했다 현 정권에 크게 실망한 노사모도 있고, 오랜 한나라당 지지자에서 돌아선 '보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은 문국현을 '발견'하고 기존정치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으로 문국현에게 빠져들어 갔다.

 

'문뽕'에게 선거는 축제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축제여야 한다. 대표자를 뽑을 수 있는 권리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쟁취한 가장 소중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적 투쟁의 결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 하의 선거는 대한민국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선거다.

 

그러나 어느새 대선은 전쟁터로 변했다. 한 후보와 관련된 비리 의혹으로 모든 관심이 쏠리면서 국민은 후보의 정책을 검증할 기회를 잃었다. 의혹이 잠잠해지고 응답률 30%가 안 되는 여론조사로 '대세론'이 일자, 이제는 정치공학적 '단일화'라는 지겨운 옛 노래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문국현 현상'은 이러한 판국에서 나온 것이며, 그래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문 후보의 지지자들은 주동적으로 후보의 정책과 비전을 검증하고 나섰고, 문국현의 신선한 발상과 삶에서 묻어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열광했다. 문국현 현상은 기존 정치인에게 받지 못한 신선한 이미지 때문이라는 점에서 감성적이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공약과 정책으로 뒷받침된다는 점에서 이성적이다.

 

가장 주목할 점은, 문국현에 대한 지지가 어느 '세력'에 기반을 둔, '세력'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문국현 현상은 2002년 대선의 '노무현 열풍'과 다르다. 문국현을 주목한 지지자들은 자신이 공감하는 '정책'과 '비전'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선거를 경험 중이다. 문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선거가 즐겁다'는 말은 결코 헛된 수사가 아니다.

 

'대세론'이 일며 대선이 끝난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지만, 아직 국민은 투표용지를 잡지도 않았다. 언론의 철저한 외면 속에 '단일화'의 틀 안에서만 비추어졌던 문국현, 그리고 그런 문국현을 발견해낸 '문뽕'들. 이 작은 불씨가 대선 결과에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 국민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태그:#문국현, #문국현 현상, #정치, #대선,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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