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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강자가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가난한 기층 민중의 세계를 꿈꿨던 체 게바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자본주의의 첨단인 스타벅스 포장지에 얼굴이 있고 그의 일대기를 다룬 책과 가난한 이들의 꿈을 향한, 그의 결의 찬 사진은 각종 이미지 상품으로 이른바 대박을 터트렸다. 그것도 세계자본주의체제에서 말이다.

주류 질서를 거부하고 반상업적인 메시지를 부르짖었던 그룹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은 자신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어느새 주류질서 속에 자신의 음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자살해버렸다.

현재 이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남성상도 매우 진보적이고 타당하게 보이지만, 상품화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물론 그 남성상은, 우리의 인식을 지배해 온 남성상의 변화는 상품화의 이미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디스토피아의 범주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디지털 공간의 대중지성이나 상호소통성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강한 남자’에서 ‘동생같은 남자’까지              

여러 용어와 신조어들이 난무하지만 변화된 남성상은 거친 남성과 부드러운 남성으로 대변된다. 거친 남성을 터프가이라고 선호하던 때도 있었다. 그 대표 아이콘은 최민수다. 거꾸로 최민수 배역의 변화는 남성상의 변화다. 최민수가 터프가이의 아이콘이 된 것은 95년 <모래시계>에서다. 그 뒤에 영화에서 늘 터프가이와 비슷한 배역과 연기를 펼쳤고 차츰 질타를 받기 시작했다.

멋있는 우상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마초라는 딱지가 붙었다. 이제 터프가이는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희극의 소재다. 주인공 이미지는 조연인 악역으로 생존하게 됐다. <홀리데이>에서 음흉하고, 비열한 악역 교도소장을 연기한 최민수는 <태왕사신기>에서 최악의 악역인 화천회 대장로에 적격이었다. 태왕 담덕 역을 맡은 배용준은 부드러움의 화신이다. 과거에 선호되던 터프가이는 악역으로 전락하고, 약해보였던 부드러운 남성상은 이제 호평의 대상이 됐다.

남성상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1970~80년대는 경제개발, 해외 건설사업 등으로 활기차면서도 도전적인 강한 남성성이 부각됐고, 우직한 남성이 인기였다. 1980년대에는 사무실 속 남성을 선호하게 된다. 지적이면서 한 분야에서 성공한 전문직 남성이 우대 받았다. 이들의 이미지는 단정한 양복에 지적인 금테 안경이 상징했다. 전문적인 식견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는 능동적인 이미지가 강조됐다. 상대적으로 여성은 남성의 리더십에 수동적인 입장이었다.

1990년대 인기 있던 남성상은 단순한 사무실 공간에서 벗어났다. 경제 개발의 주역이든 전문직 종사자이든 조직의 틀에 얽매여 있기는 마찬가지였기에 특정한 직업이 없거나 리더인 경우가 많았다. 조폭 리더도 각광받았다. 최민수에 이어 특히 정우성, 이정재는 터프한 이미지였지만 부드러움이 가미되기 시작했다.

<사랑을 그대품안에>와 <별은 내 가슴에>의 차인표는 부드러움, 터프한 면을 이미 모두 지니고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층 부드러운 남성상을 선호하게 됐는데 대표적으로 <호텔리어> <겨울연가>의 배용준이다. 다만, 한동안 부드러운 이미지와 남성의 육체성이 결합되기도 한다. 얼굴은 매우 부드러우면서 몸은 남성성의 극치를 지닌 근육질 남성이 각광 받는다. 꽃미남의 조건으로 ‘몸짱’이 주목 받으면서 강동원, 조인성, 소지섭, 권상우, 송승헌은 근육질의 몸매와 함께 부드러운 모습을 내세웠다.

왜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 일반적인 분석은 다음과 같다. 남성상의 변화는 여성상의 변화와 맞물려 있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속에 두드러졌다. 무엇보다 시대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과거에는 여성의 수동적인 태도를 강조했다. 이 때문에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용인됐다.

수동적 위치에 있던 여성들은 강한 남자, 터프 가이를 통해 대리충족 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이후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나 경제적 독립 수준이 높아지면서 수평적 관계를 요구하게 됐다. 이 때문에 일방적인 마초 행태는 각광받을 수 없게 됐다. 더구나 경제적인 기반을 가진 여성층들이 대중문화계에 연하남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동생 같은 남성이 주목받았다. 가수 비가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남성 이미지는 뷰티산업의 타깃이 돼왔다. 애초에 변화된 남성상이나 이미지들은 대개 매체나 광고회사들이 만들어낸다. 즉 마케팅 차원에서 생산해 일반화시킨 것이다. 빈번하게 눈에 띄는 용어들 가운데 메트로 섹슈얼이나 위버섹슈얼, 크로스 섹슈얼을 살펴볼 수 있다. ‘메트로 섹슈얼’은 패션과 외모에 관심이 많고, ‘위버 섹슈얼’은  고안된 거친 남성성을 강조한다. ‘크로스섹슈얼’은 남성 안 여성성을 인정하고, 여자보다 예쁜 남자의 개념을 강조한다. 모두 진보적인 남성상으로 제시되면서 관련 생활용품, 미용과 화장, 패션 산업 마케팅이 남성들에게 상품 소비를 강박한다.

이러한 섹슈얼이 주로 미혼 남성을 겨냥한다면, 노무족(NO More Uncle)은 기혼 남성을 목표로 한다. 노무족은 멋진 중년 남성상의 표본을 자임한다. 그들은 패션과 미용에 관심이 많으며 부드럽고 수평적인 가족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엠니스(M-ness)족은 ‘전통적 남성의 특징인 힘, 명예, 품격에 여성적인 특징인 애정 어린 양육, 소통성, 협력을 조화시킨 남성상’을 의미한다. 이 또한 자기계발 상품은 물론 좋은 남편, 아빠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는 가전, 가구, 여행, 스포츠, 외식업체, 육아 상품 등의 마케팅이 따라 붙는다.

모든 말이 상품을 위해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다. 최근에 가장 많이 선호되는 말 중에 하나는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 훈남(훈훈한 남자)이다. 매체나 광고회사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말이다. 완소남은 본래 외모보다는 각자의 개성을 높게 본다. 모두가 동경하는 수려한 외모는 아니어도 친절하고, 겸손하고, 성실하다면 소중한 남자가 된다.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인간다움이라는 인격성을 부여한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각자가 마음에 드는 이들이 훈남이고, 완소남이다. ‘훈남, 완소남 신드롬’은 내면의 진화 없이 비주얼에 치중하면서, 유행만 타게 되는 각종 외모지향의 이미지와 신조어에 저항하는 현상은 아닐까. 그런데 훈남, 완소남 트렌드는 만들어진 남성상에 대한 거부와 저항의 일면을 보여주지만 완소남도 외모지상주의에 갈수록 포위돼 가고 있다.

바람직하다고 규정된 다른 남성상들이 상품화에 포획됐듯이. 예컨대, 각종 매체와 광고는 완소남의 기준을 성형, 피부미용이나 화장, 패션으로 삼는다. 훈남, 완소남의 상품화도 체게바라나 커트 코베인의 운명과 같은 것일까. 요컨대, 이 시대의 세련된 남성상의 탄생과 성장, 소멸은 미디어에서 시작해서 미디어에서 끝난다. 어디 미디어 때문 만일까. 상품자본주의는 이상적 개념들을 집어 삼키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실체 없는 이미지의 반복과 대중의 선택

대중문화의 남성상은 점차 남성성, 여성성을 나누는 인위적인 기준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지만, 미디어와 광고의 남성상은 남성들을 강박해 관련 ‘외모 상품’을 소비시키기 위해 만들어지고 부풀려지는 혐의가 짙다. 매체와 광고에 의한, 매체와 광고를 위한 가공의 이미지들은 마치 일반대중이 진정으로 원하는 남성상인 것으로 호도된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런 남성 이미지는 다시 상품소비 현상을 통해 실체가 있는 것으로 둔갑한다. 이상적인 남성성에서 멀어진다는 불안과 공포 심리에 기대어 남성 이미지상품은 번성한다. 이 과정에서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소외당한다. 자신의 남성 배우자가 그러한 기준에 못 미치는데 실망하고 좌절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미디어의 아버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는 가족의 좌절로 이어지며, 세대와 세대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소외를 먹고 남성 이미지 시장은 창궐한다.

이러한 실체 없는 이미지의 반복은 저항에 직면한다. 더구나 상품화는 획일성을 의미한다. 대중 지성은 획일성에 저항하는 본성이 있다. 매체의 인위적인 남성상에 맞선 또 다른 남성상을 누리꾼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이유다. 남성상은 일상의 다양성 속에 생명력이 있다. 매체와 광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다. 그 마음으로 1인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대중 지성들이 자신의 남성상으로 거대한 상품 이미지를 넘어서려 한다. 비록 누리꾼들의 남성상마저 상품화시키며 본질을 호도해도 다중이 원하는 남성상은 쉼 없이 진화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교수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뷰티산업#남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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