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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을 보면 소리꾼들이 마을을 돌며 소리 품을 파는 장면이 나온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일종의 공연 관람을 하는 셈이다. 영화에서는 주로 전라도 지역을 배경으로 하지만 어디 전라도에만 해당될까 싶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이렇게 지역적인 공연문화라도 존재했다. 그래도 그때는 사람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경제적으로는 발달해도 오히려 그나마 있던 공연문화는 사라졌다. 지역에서는 한국의 경제가 발달하고 국민소득이 올라갈수록 촌의 공연문화는 소멸했다.

 

얼마 전 전라도 지역에 귀농한 이들의 문화적 수요를 조사하기 위해 심층면접을 다녀온 적이 있다. 보통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이 60대인 마을이 부지기수인 지역이다. 이곳에 귀농한 30대의 여성은 한 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다. 평생 동네를 벗어나지 않고 일만 한 할머니들을 모시고 가서 하루만이라도 영화 한편 보고 외식도 하고 싶다고 했다. 외식은 자장면이라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교통이 불편해서 쉽지 않다고 했다. 평생 영화관을 한 번 가보지 않은 분들도 많았다고 했다. 아니 이동영화관이라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이동공연이 온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소식이 없다고 했다.

 

지역 촌을 돌던 소리꾼은 오리려 도시에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나마 <서편제>나 <천년학>에서 보여주었듯이 소리꾼들은 천대를 받으며 소리 없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노래기계가 대신할 뿐이다. 전문 연희꾼의 음성과 몸짓은 소멸했다. 단지 이러한 소멸만일까. 지역에서 열리지만 정작 주민을 소외시키는 지역 문화제도 얼마나 많은가.

 

얼마 전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났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하자 많은 지자체들에서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나섰다. 그 결과로 많은 지자체에서 소기의 결과를 얻게 된다. 광주, 부천, 전주, 제천, 고양 등은 각 지역적 특성에 따라 자신들만의 독특한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에서 대체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점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지자체의 욕심과 영화인들의 관점이 부딪히면서 많은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 때문에 광주와 고양영화제를 고사되게 만들었고, 몇 년 전 부천에서는 영화제를 파행으로 치닫게 했다. 정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선거로 단체장이 바뀌면 영화제의 운명도 예측하기 힘들다. 지자체의 영화제들 가운데 상당수는 파행의 불씨를 안고 있다.

 

지자체 단체장들이 문화에 대한 인식이 적은 것도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관심이 있다고 해도 경제적 차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돈이 되기 때문에 문화에 관심이 있는 것이고 정작 문화는 없고 돈이 되는 문화산업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는 지역 주민들의 문화 복지 권에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그렇지도 않다. 이러한 지역영화제가 지역주민들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재정난을 영화제를 통해서 타개해보려는 의도가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정작 지역 주민들을 도외시하고 외지인들을 끌어오는데 더 신경을 쓴다.

 

리 단위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읍면 단위에서는 문화공연이라는 것을 관람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군단위에서 행사가 열려도 노인 분들이 오가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고령층에 속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맞는 문화공연은 쉽지 않는 현실이다. 앞으로 전 농촌이 실버촌으로 바뀌게 되면 이 문화복지 문제는 의료복지에 버금갈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전국에 35개의 영화제가 있지만, 이들 모두는 대형화와 상업화를 위해 치달아가고 있다. 정작 지역 주민들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다. 여전히 지역의 주요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지역자치단체장 선거 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문화에 관련한 공약들은 대개 위락시설을 만드는데 치중한다. 대선이 다가오는 가운데 지역의 문제들은 대개 외면된다.

 

문화에 대한 공약이라고 해도 여전히 서울 중심적이다. 아예 지역 중에서도 지역에 대한 관심은 적다. 더구나 이번 대선에서는 경제발전에 관한 담론만 무성한 듯싶다. 경제와 문화는 분리된 것이 아니며 선후의 문제도 아니다. 경제성 효율성관점에서만 문화에 접근할 수만은 없다. 꼭 문화가 아니라도 그렇다. 지역 중에서도 낙후된 지역민들의 현실적 요구에 귀 기울이는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태그:#천년학, #지역문화정책, #지역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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