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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겉그림입니다.
▲ 겉그림 1권 겉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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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어컨은 지구한테 적

일을 하다가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무언가 답답할 때면 집어드는 만화책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 연재가 끝나지 않은 만화책인 <요츠바랑!>. 이 녀석은 한 번 손에 쥐면 끝까지 안 보고는 다시 놓기 힘듭니다. 마지막까지 다 본 뒤 '아, 아직 연재가 안 끝났지. 뒷편은 언제 번역되나?' 하는 생각에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1권부터 다시 들춰보기도 하고, 또다시 1권부터 보기도 하며 여러 번 되풀이 봅니다.

"에이, 요츠바였구나."
"아! 예쁜이 언니다!"
"아사기야, 아사기."
"아 싸게."
"아사기."
"오늘은 뭐야? 무슨 볼일?"
"후카한테 한 마디 해 주려고 왔어!"
"에헤, 어째 또 재밌겠네. 근데 후카는 지금 나가고 없거든."
"이구우? 그럼 어쩔래…?"  1권 〈98∼99쪽〉


에어컨을 틀어 놓은 방에 들어가서 "이 방, 시려워!", "여긴 겨울이냐?"고 묻는 요츠바입니다. 그러다가 에어컨을 안 틀어 놓은 방에 들어가서 "이 방은 덥네! 에나, 에어컨 아냐?" 하고 묻습니다. 그동안 에어컨이라는 것을 몰랐다가 처음 알게 된 뒤, 그 하나를 알게 된 것을 자랑으로 여겨서 말합니다. 그런데 에어컨을 틀어 놓지 않은 아이(에나)는 요츠바에게 '지구온난화'라는 문제가 있기에 되도록 안 쓰려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요츠바는 "에어컨은 나빠? 지구의 적이냐?"하고 묻는데, 이때 지구온난화 이야기를 해 준 아이가 "어라? 요츠바네는 에어컨 없어?"하고 물으니 요츠바는 깜짝 놀라며, "어, 없는데! 왜냐면 아빠는 착한 사람이거덩! 에어컨 같은 거 없어! 아마 없을 거야…"하다가 집으로 확 뛰어갑니다.

"아빠! 이 집에 에어컨 있어?"
"오. 에어컨 말이냐! 하긴 할머니네는 없었지. 할아버지가 에어컨을 싫어하셨으니까. 하지만 이 집에는 있지롱! 쨔안! 침실에도 있고 2층에도 있고."
"아빠, 우리 편 아니야!"
"에엑? 어, 어째서 우리 편 아니라는 건데? 어?"
"지구온난화!"
"허거덕? 너, 너 그런 것도 알고 있었냐?"  〈1권 107∼110쪽〉


이때, 요츠바는 자기한테 에어컨을 가르쳐 준 이웃집 큰딸 '아사기'도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있음을 떠올리며, "아사기는 지구의 적이야! 지구온나나! 지구가 뜨거워진단 말이야!"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아사기는 "그러니까, 에어컨으로 지구를 식히고 있는 거야"하고 말합니다. 말문이 막힌 요츠바. 이제 요츠바는 무엇을 할까요?

(2) 태어나서 처음 타본 그네

신문지국 아저씨가 요츠바네 집에 찾아옵니다. 요츠바네 아저씨는 낯선 사람한테 문을 열어 주지 말라고 몇 번씩 다짐하며 낮잠을 잡니다.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고단했나 봅니다. 요츠바는 혼자서 상자 만들기 놀이를 하며 다부지게 집을 지킵니다.

"안녕, 신문 아저씬데."
"예-? 뭐십니까?"
"응… 아빠나 엄마 계시니?"
"아빠는 있어요. 엄마는 없어요."
"그럼 아빠 좀 불러 줄래?"
"안 돼요."
"에엑?"
"쉿-." 〈2권 96∼97쪽〉


요츠바는 "쉿-." 하고는 문을 닫습니다. 신문지국 아저씨는 아이가 왜 저러는지 모를 테지요. 아이가 장난치는 줄 알까요? 아니면, 아이네 집에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하며 ‘미안하구나’ 하고 말하며 돌아설까요?

 (아빠) 신문 받았더니 이런 걸 주네. 워터월드 초대권.
(점보-아빠 동무) 오호-.
(요츠바) 오-! 거기구나?
(점보) 음? 요츠바, 워터월드 아냐?
(요츠바) 모르는데.
(점보) 너, 아무렇게나 말하지 마.
(요츠바) 응? 응. 〈2권 114∼115쪽〉


멀고 먼 곳에서 큰도시로 살림을 옮겨 온 요치바 네. 요츠바는 놀이터 그네를 처음 보았고, 이 그네가 무언가 궁금해 한참 혼자서 만지작거리다가 머리를 쿵 찧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놀이터 옆을 지나가는 사람한테 저기 뭐 하는 거냐고 묻고는, 그네타기를 배웁니다.

그네를 타 본 적 없으니, 그네에서 떨어져 본 적도 없겠지요. 아무 생각 없이 그네를 타며 가장 높은 데까지 휙휙 올라가며 재미있어 합니다. 요츠바한테 그네타기를 가르쳐 준 동네 아이는, 이제 됐겠지, 하며 뒤돌아가다가 설마 싶어서 뒤를 돌아보는데, 요츠바는 아주 위험하다고 할 만치 높이 오르락내리락입니다. 이에 어쩔 줄 몰라하는 동네아이는 서둘러 "손, 손, 손은 떼면 안 돼!"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요츠바는, "손?"하면서 그네를 잡던 손을 떼고 자기 손을 봅니다. 그 뒤 요츠바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이는 하루하루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자기 동네 삶터를 부대끼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 5권 겉그림 아이는 하루하루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자기 동네 삶터를 부대끼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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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이들의 말투

비디오집에 가서 디브이디를 빌리는 두 사람, 요츠바랑 요츠바네 아빠. 요츠바느 '야생동물 시리즈'를 빌리면서, 가게 언니한테 묻습니다. "있지, 그거 재미있어?" "음, 언니는 이거 안 봤지만 아마도 재미있을 거야." "재밌대. 전에 아빠가 빌린 영화는, 더럽게 재미없다던데."(5권 133쪽)

가게 언니는 요츠바네 아빠한네 "죄송합니다" 하고 절을 합니다. 요츠바는 아빠가 집에서 요츠바 앞에서 했던 말투를 그대로 배워서, "더럽게 재미없다"를 말합니다. 요츠바는 늘 배웁니다. 늘 모두가 새롭습니다. 늘 모두한테 스스럼없이 굴고 있는 그대로 마주합니다.

요츠바네 아빠가 여느 때에 "포도는 먹기 어려워"하고 말했기 때문에, 아빠한테 온 포도 선물을 들고 이웃집에 가서 '요츠바가 늘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하고 드리는 자리에서, 요츠바는 이웃집 아주머니한테, "이거, 할머니가 보내 줬어. 포도는 먹기 힘들어서 주는 거야"하고 말합니다. 딴 생각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빠가 늘 하던 말이기 때문에 고스란히 배워서 말할 뿐입니다.

 (요츠바) 요츠바도 아사기한테 볼일 있어! 아! 담배다 담배는 나쁘니까 안 된다고 아빠가 그랬어. 근데 아빠도 옛날에는 피웠다고 그랬어. 아빠도 옛날에는 나빴다! 넌 지금 나쁘냐? 왜 담배 피우는데?
(토라코-요츠바 옆집 아사기 동무) 멋 부리려고.
(요츠바) 멋지다-. 멋진데, 너! 맘에 들었다요! 〈3권 16~18쪽〉


어른들은 나어린 아이들한테 반말을 쓰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말끝에 '-요'를 붙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을 얼마나 대접해 주면서, 자기들이 높임말로 대접받기를 바라나요. 한편, 아이들이 어른한테 높임말을 써야만 어른이 '높아지지' 않아요. 겉으로 보이는 말이나 몸짓보다 속으로 헤아리는 마음이나 매무새가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아무튼, 때때로 요츠바한테 '어른한테는 높임말 좀 쓰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요츠바는 높임말을 쓰기도 합니다. 뭐, "맘에 들었다!"고 할 말 뒤에 "맘에 들었다요!"처럼 붙이는 말투이긴 하지만.

가만히 보면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배울 대목이 많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이런 말을 귀담아들을 줄 모르는 한편,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대로 이야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어떤 틀에 가두거나 맞추려고, 지식을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른들이 하는 말은 배울 대목도 적고 재미없기도 하지 않나요? 우리 어른들은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잔뜩 멋을 부리거나 껍데기를 뒤집어씌우거나 검은 속셈을 능구렁이처럼 숨긴 채 말하지 않나요?

"너 몇 살이야?"
"나, 나이 많아."


만화 <요츠바랑!>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고, 올봄까지 지낸 충주 시골집 둘레에 살던 이웃집 아이한테 들은 말입니다. 이웃집 아이는 자기한테 나이를 묻는 어른들이 하도 많아서 나중에는 귀찮은 나머지, "나, 나이 많아. 묻지 마." 하고 짜증을 내곤 했습니다.

요츠바는 6권에 이르러, 드디어 자전거를 탑니다!
▲ 6권 겉그림 요츠바는 6권에 이르러, 드디어 자전거를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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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만화책 <요츠바랑!>

이웃집 언니 가운데 하나인 '후카'는 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갑니다. 이 모습을 본 어느 날 요츠바는, "자전거 타니까 멋지구나, 후카라도!" 하고 말하며 아빠한테 자전거를 사 내라고 조릅니다(후카가 여느 때엔 안 멋지다고 생각하는 건, 아빠가 후카를 처음 본 날, 그 집에서 '안 예쁜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요츠바) 촥― 콰당!
(공원 나들이 아주머니) 저런. 괜찮아요?
(아빠) 아, 저 정도는 괜찮습니다.
(요츠바) (까진 팔꿈치를 보며 울먹울먹)
(아빠) 뚝! 아줌마한테 요츠바가 얼마나 센지 보여드려!
(요츠바) (울음을 참으며) 요츠바는 울지 않아!
(아주머니) 어머, 장하기도 해라. 〈6권 58∼59쪽〉


아빠가 아무 생각 없이 주절거리는 말도 배우는 요츠바지만, 아빠가 아이를 다부지게 키우고자 북돋우는 말도 잘 받아들이며 배우는 요츠바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는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둘레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자그마한 것 하나라도 넉넉히 나눕니다. 고마운 선물을 받아서 보답을 하려고 놀이터 풀밭을 뒤져서 네잎 토끼풀을 찾아서 선물해 주고(3권 첫머리), 꽃집에서 한 가득 받아서 남은 꽃을 이웃사람들한테 한 송이씩 나눠 주면서 "언니도 힘내라!" 하고 말합니다(3권 가운데).

자기 욕심, 소유욕, 이익을 생각하는 어른들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또 하지도 않는 일들이겠지요. 어쩌면 우리 모두 처음부터 간직했으나 차츰차츰 잃어버렸고, 잃어버린 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가장 사람답고 올바른 몸가짐이기도 할 테고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따라서 우리 둘레 삶터가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아끼는 것에 따라서 우리 자신 삶이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학교를 많이 다녀야만 세상 똑똑하게 잘살 수 있을까요. 머리속에 담은 지식이 많아야만 우리 삶이 한결 넉넉할 수 있을까요. 연봉 높은 일자리를 얻어야만 우리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있을까요. 내 옷차림과 얼굴 생김이 텔레비전 연예인 같이 보여야만 즐거울 수 있을까요.

늘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어울리고 놀면 즐겁지 않은가요. 모르면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아 할 수 있을 때에는, 모르는 일이 잘못이 아니라 아직 깨우치지 못한 세상을 배우는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는 보람이 없는가요.

느끼는 그대로 배우고, 보는 그대로 느끼며, 있는 그대로 보는 요츠바입니다. 맛이 있으면 맛있다고, 맛이 없으면 맛없다고 말합니다. 고우면 곱고, 곱지 않으면 곱지 않다고 말해요. 그래서, 이런 말을 듣는 어른들은 움찔하고 놀랄 수 있지만, 이내 자기 모습과 형편을 제대로 살필 수 있습니다. 겉치레로 사는 마음이 아니라면.

우리 어른들이 우리 세상을 싱그럽게 웃으며 살고자 한다면, 해맑게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자 한다면, 만화책 <요츠바랑!>에 나오는 요츠바는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이 아닌, 남 눈치를 보는 삶이 아닌, 이웃을 밟고 올라서서 내 뱃속을 더 채우려는 마음이 아닌 곳을 바라볼 수 있다면, 만화책 <요츠바랑!>에 나오는 요츠바 같은 아이를 우리 집 둘레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꽃집에서 한 가득 얻은 꽃을 등에 멘 요츠바. 요츠바를 태우고 집으로 함께 가는 이웃집 아이 후카. 이 만화책을 통틀어 제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 하나입니다. 3권에 나옵니다.
▲ 자전거 탄 요츠바 꽃집에서 한 가득 얻은 꽃을 등에 멘 요츠바. 요츠바를 태우고 집으로 함께 가는 이웃집 아이 후카. 이 만화책을 통틀어 제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 하나입니다. 3권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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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책이름 : 요츠바랑! (1권∼ ) (2007년 10월까지 6권이 번역됨)
- 그린이 : 아즈마 키요히코
- 옮긴이 : 금정
- 펴낸곳 : 대원씨아이(2004.8.30∼ )
- 책값 : 한 권에 4000원씩



[세트] 요츠바랑! 1~12 세트 - 전12권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대원씨아이(만화)(2004)


태그:#요츠바랑!, #아즈마 키요히코, #만화책, #요츠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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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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