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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51~1996년 사이에 발생했던 총 4495건의 간첩사건 중 이른바 '직파간첩'의 수는 1970년대 이후 급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인권단체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조작 간첩사건'의 배경을 설명할 수 있어 주목된다. 즉 직파간첩의 수가 줄어들면서, 중앙정보부·안기부 등 과거 공안당국이 일부 사건을 조작 또는 간첩죄를 확대해 적용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얘기다.

실제 1976년 이후 간첩으로 체포·자수·사살된 사람은 700여명에 이르지만, 그 중 검거된 직파간첩(공작원)의 수는 1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은 24일 발표된 국정원 진실위(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 결과에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진실위는 "국가보안법이 엄격히 적용된다면 도저히 간첩으로 공소유지가 될 수 없는 납북어부·재일동포 등 사건만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70년대 이후 '직파간첩' 급감... 간첩죄 확대 적용의 배경

이날 국정원 진실위가 발표한 자료를 분석해 보면, 1951~1969년 사이 직파간첩의 수는 2802건으로 해당 기간 간첩사건(3360건)의 약 83%를 차지했지만, 1970년에서 1996년까지 직파간첩의 수는 414건으로 동시대에 발생했던 사건(1135건)의 약 36%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진실위는 "북한이 공작원을 직파한 수는 줄었지만 중단한 것은 결코 아니다"면서 "공작의 중심이 우회침투로 옮겨갔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진실위의 발표에 따르면, 10여 건의 직파간첩 외에 간첩사건으로 적발된 경우는 재일동포나 해외 취업 등 우회간첩, 월북자가족 관련 간첩, 납북어부 간첩 등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친북 성향의 급진 세력 일부가 북한과 접촉하려다 적발된 사례들이 포함됐다.

그러나 진실위는 "국보법이 엄격히 적용되면 간첩으로 공소유지가 될 수 없는 납북어부·재일동포 등의 사건만 늘어나다 보니 인권단체나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1970년대 주요 직파간첩 (국정원 진실위)
 1970년대 주요 직파간첩 (국정원 진실위)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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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위 "'조작 간첩'은 국보법 확대 적용의 사례, 인권침해"

인권단체 등이 제기한 문제란 바로 '조작 간첩' 또는 '간첩죄의 확대적용'이다.

국정원 진실위는 이번 보고서에서 "정보·수사기관이 간첩을 적발·체포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며 "민주화운동 진영에서는 동백림 사건, 인혁당 사건, 중부지역당 사건 등의 예를 들어 '중요한 정치적 고비에는 반드시 조직 사건이 터졌다'며 의혹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간 인권단체가 제기해 온 "1980년대 초반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다수의 간첩사건들은 당사자들이 장기간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는 의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권단체가 주장하는 '조작 간첩' 사건들은 지식인, 학생 운동가, 민주화 운동가들이 관련된 굵직한 조직사건과는 달리, 그 중심인물이 월북자 가족, 납북귀환 어부, 해외취업자 등 소시민이었다. 또 대부분의 사건에서 피의자들의 자백 이외에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또 진실위는 "이는 국보법을 확대 적용한 사례인 동시에 권위주의 정권 시절 권력기관이 인권을 침해한 사례였다"고 부연했다.

"사법부가 징권의 요구에 흔들리면서 나쁜 판례 나와"

아울러 진실위는 "1970년대 이후 사법부가 정권·정보기관의 요구에 흔들리면서 간첩사건과 관련한 나쁜 판례들이 나오게 됐다"며 "사법부가 고문이나 불법구금을 외면하고, 간첩과 국가기밀의 개념을 무제한으로 확대하지 않았다면 억울한 간첩사건도 그만큼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진실위가 언급한 '나쁜 판례'들이란 ▲국가기밀이 신문에 실려도 적에게 알려지면 적의 이익이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 ▲피의자가 기밀을 탐지만 해도 '목적수행'으로 사형까지 처해질 수 있게 된 것 ▲따라서 무전기·난수표도 없는 '함량 미달'의 간첩이 등장하게 된 것 등이다.

이에 대해 진실위는 "과거 정부가 간첩죄를 확대 적용해 피해자가 발생했다면 그 실체적 진실을 밝혀 당사자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면서 "국정원은 쓰라린 교훈으로 삼으라"고 충고했다.


태그:#진실위, #국정원, #직파간첩, #과거사, #국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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