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나라의 대표 만신인 김금화 만신입니다. (만신은 여자 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만신인 김금화 만신입니다. (만신은 여자 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 이승숙

관련사진보기


한가한 토요일, 뭘하며 보낼까?

기력을 많이 회복하신 아버지는 산책을 자주 나가신다. 산책이라야 길을 따라 동네를 한 바퀴 돌아오는 거지만 처음 오실 때에 비하면 몸이 많이 가벼워지신 것 같다. 오늘 오전에도 아버지는 지팡이를 챙겨들고 산책을 나가셨다.

산책을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아버지를 따라갔던 삽살개 갑비도 따라왔다. 갑비는 아버지가 길을 나서면 앞장서서 간다고 한다. 개도 나이를 먹으면 지혜로워지나 보다.

오늘은 뭘 하며 하루를 보낼까. 모처럼 쉬는 토요일인데, 그냥 내처 텔레비전이나 볼까 아니면 영종도라도 드라이브 갔다 올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는데 아는 이가 전화를 했다. 김금화 만신이 큰 굿을 한단다. 어제(12일)부터 시작해서 화요일(16일)까지, 5일간 큰 굿을 한단다. 김금화 만신이 누구던가. 만신 중의 만신이 아니던가. 그래서 아버지를 모시고 길을 나섰다.

강화 하점면에 있는 김금화 만신의 굿당인 ‘금화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굿 전수관이다. ‘금화당’은 가파른 산비탈을 깎아서 만들었다. 처음에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다 전수관을 지으려고 했단다. 하지만 그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지금 이 장소에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굿 전수관인 '금화당'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굿 전수관인 '금화당'의 모습입니다.
ⓒ 이승숙

관련사진보기



무속은 조국 근대화 과정 속에서 배척을 당했다. 마을길도 넓히고 초가집도 없앤 새마을 운동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무속을 천시했다. 무속이 혹세무민한다고 여겨서 그리 했지만 기층민들의 의식 속에 무속은 살아남아 있었다.

우리의 정체성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무속도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되었다. 지금은 하나의 종교로 인정을 받으며 종합예술의 한 분야로 대접을 받는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김금화 만신과 같은 큰 무당들의 공이 컸으리라 여겨진다.

만수무강과 극락천도를 비는 굿을 한다는데...

굿을 보러 하점면에 있는 ‘금화당’으로 갔다. 길 가에는 굿을 보러온 사람들이 타고 온 차가 줄서 있었다. 그리고 울긋불긋 오색의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번에 하는 굿은 ‘만수대탁굿’인데, 이 굿은 황해도 지역에서 전승되어 내려오는 무속 의례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것이라 한다. 이 굿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김금화 만신밖에 없다고 한다.

‘만수대탁굿’은 노인들의 만수무강을 빌며 또 돌아가신 뒤 극락천도를 기원하는 굿이다. 살아서는 건강하게 편안히 잘 지내시다가 돌아가셔서는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하는 굿이 바로 이 굿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제대로 굿을 보는 셈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갔으니 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

무속은 우리 민족의 전통 신앙입니다.
 무속은 우리 민족의 전통 신앙입니다.
ⓒ 이승숙

관련사진보기


만신 중의 만신, 김금화 만신

우리가 갔을 때는 오전 굿이 끝나고 점심시간이었다. 김금화 만신의 굿 인생 60주년을 축하하는 굿판이기도 한 터라서 그런지 모든 게 넉넉했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넉넉했고 가을 하늘도 맑고 높았다.

드디어 굿이 시작되었다. 두 손을 비비면서 마음을 모으는 데서부터 굿은 시작되었다. 겅중겅중 뛰기도 하고 너풀너풀 춤추기도 했다. 77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김금화 만신은 기운이 넘쳤다. 근 두 시간 동안 굿을 진행했다.

김금화 만신은 과연 만신 중의 만신이었다. 사람들을 끌고 나가는 힘이 대단했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면서 굿을 보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손뼉을 치고 장단을 맞추며 굿판에 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흥을 못 이겨 너풀너풀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입을 삐죽이기도 하며 사설을 하고 춤을 추던 만신은 막걸리 병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그 술은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술이었다. 나도 한 잔을 받아서 아버지에게 드렸다. 아버지의 만수무강을 진정으로 빌면서 권하였다. 아버지는 술을 조금 남겨 나한테 주었다. 나는 그 술을 달게 마셨다.

김금화 만신은 많은 신딸들을 두었습니다. 오늘 공연에도 여러 신딸들이 함께 했습니다.
 김금화 만신은 많은 신딸들을 두었습니다. 오늘 공연에도 여러 신딸들이 함께 했습니다.
ⓒ 이승숙

관련사진보기


산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굿판도 저물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한 자리에 근 4시간 가까이 앉아 있었던 아버지는 그러나 거뜬하게 일어나서 산비탈 길을 걸어 내려가시는 거였다.

만수무강주를 마셔서 그런가 다리가 안 아프네

“아부지, 다리 안 아풉니꺼? 괜찮십니꺼?”

“괘안타.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마 다리가 아파서 한참동안 잘 못 걷는데 오늘은 괘안네.”

“오늘 굿이 노인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돌아가시면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빌어주는 굿이라 카는데, 아부지 오늘 굿 정말 잘 봤지요?”

아버지는 말없이 빙긋이 웃으셨다.

아버지와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모시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계셔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서야 비로소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나 자신에게도 고마웠다.

언니와 동생은 아버지를 모시고 싶어도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못 모신다. 언니 대신 동생 대신 아버지를 모셔야겠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 형제들이 다 넉넉해져서 언니도 동생도 아버지를 모실 수 있도록, 그 때까지 아버지가 살아 계시도록  아버지의 건강을 잘 챙겨드려야겠다.

덧붙이는 글 | <만수대탁굿 보러 가는 길>

승용차로 갈 경우 : 48번 국도를 타고 계속 가서 강화읍을 지나 약 10분 정도 바로 가면 '금화당'이 있습니다.

대중교통 이용시 : 지하철 5호선 송정역에서 내려 강화행 버스를 타고 강화읍까지 오셔서 다시 하점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됩니다.

일시 : 2007년 10월 12일(금) 이른새벽 ~ 2007년 10월 16일(화) 늦은 저녁

장소 : 강화군 하점면 신봉리 127번지 금화당

문의 : 032 - 425 - 2692 / 032 - 934 - 9723



태그:#아버지, #김금화, #만수대탁굿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