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절 음식을 맛보는 일은 즐겁다. 제철에 난 산물에는 자연의 기운이 듬뿍 담겨 있잖은가. 오묘한 자연의 향기를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절 음식을 먹는 값은 한다. 시절 음식은 도시보다 지방으로 가야 더욱 풍미가 있다. 아무래도 가공식품보다 자연식을 즐기는 식습관이기 때문이다.


시절 음식이 그 지역의 향토 음식이기까지 한다면 풍미는 배가된다. 지방에서 일미는 뭐니 뭐니 해도 제철 재료로 만든 향토 음식이기 때문이다. 구룡포에 아주 잘하는 평양냉면집이 있다 하자. 하지만 그 지역의 향토 음식인 과메기만 하겠는가? 이렇듯 지방으로 떠나는 미각 기행의 정점에는 시절 음식과 향토 음식이 자리잡고 있다.

 

9월, 곡성의 시절 음식이자 향토 음식이라면 단연 능이버섯요리이다. 곡성은 능이버섯의 주 산지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능이가 많이 난다. 곡성 사람들이 ‘능어리’이라고 부르는 능이의 향기가 곧, 곡성의 향기이기도 하다. 적어도 9월에는 그렇다.


곡성의 곡은 골 곡(谷) 자를 쓰는 데서 알 수 있듯 평야보다 산이 많다. 계곡을 따라 형성된 참나무 숲에서는 한창 내린 비로 인해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능이버섯이 자라기에는 최적의 자연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올핸 풍부한 강수량으로 인해 능이가 대풍을 맞았다. 이로 인해 능이금도 예년에 비해 하락했는데 킬로당 2만원까지도 떨어졌다. 4∼5만원도 훌쩍 넘었던 게 말이다. 소비자야 능이금이 떨어지면 싼값에 사 먹을 수 있어 좋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덩달아 능이의 맛과 품질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능이는 바로 요리하면 아린 맛이 강한 게 특징이다. 이 맛이 능이를 다시 찾게 하는 마력이기도 하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뜨거운 물에 데치거나 소금물에 담가서 아린 맛을 빼내 섭취를 한다. 하지만 금년 능이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바로 요리해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독성이 약해졌다. 능이의 아린 맛을 즐기는 맛객의 입장에선 능이의 개성 한 가지가 사라진 셈이다. 능이가 많이 난 덕분이다.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과유불급’이란 말이 떠오른다.

 

9월 곡성의 향기, 능이

 

맛객이 머물렀던 모텔의 주인이 안내를 해 준 곳은 곡성읍에 있는 중앙식당이었다. 간판불은 꺼져 있었지만 식당 안은 불이 켜져 있어 아직 영업 중임을 알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곡성 주민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네 식탁이나 자리 잡고 앉아 술잔들을 비우고 있었다. 차림표를 살펴보니 추어탕, 뼈다귀탕, 청국장, 김치찌개 등.


“뭘로 드릴까요?”

 

이렇게 물으며 다가오는 주인 아주머니. 시커먼 얼굴이 순간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뭘로 먹어야 할까요?”
“글세…. 백반 드릴까요?”
“네!”


보기와 달리 미소까지 짖는 얼굴에선 친절함이 묻어 있다. 맛객이 이 집을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뜻하지 않게 반가운 음식을 만났기 때문이다.

 

맛객은 추석 전날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에게서 능이버섯요리에 대해 얘기를 들은 게 있다. 한 스님이 만들어주었다는 그 능이요리는 무와 능이를 넣고 끓인 음식이었다. 어느 해 겨울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던 날, 스님은 땅에 묻어 둔 가을무를 꺼내 또 가을에 따 말려둔 능이와 함께 끓여냈다고 한다.

 

능이와 무 외에 그 어떤 일체의 재료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능이무국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 미각을 홀리는 얘기에 맛객은 그만 침을 꼴깍 삼키고 말았다.


“스님은 고기 안 드시니…. 전 소고기를 넣고 끓여도 되겠네요.”
“그래도 되고!”

 

그렇게 능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능이무국은 꼭 끓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앙식당…. 밥상이 차려지기 시작한다. 콩나물, 콩자반, 멸치볶음, 우엉조림, 열무김치, 조기구이 2마리, 잡채, 고추볶음, 오이무침. 반찬은 그럭저럭…. 반가운 게 없다. 약간의 실망감이 엄습해 오던 차 공깃밥과 함께 뚝배기가 나온다.

 

처음엔 공깃밥에 더 눈길이 갔다. 공깃밥이 2그릇이나 나오는 게 아닌가? 밥 인심 한번 후덕 하군, 생각하고 무심코 뚝배기를 봤다. 순간 크게 기뻐했다. 처음엔 무국인가 싶었는데 시컴한 국물…. 구수하고 간장냄새를 닮은 능이무국 아닌가?

 

반드시 만들어 먹어보고자 했던 그 능이무국. 스님이 만든 능이무국과 차이라면 능이와 무 외에 소고기와 파가 들어갔다는 사실. 아무렴 어떤가? 맛객은 아직 속세를 등지지 않은 속인인데, 소고기와 파가 들어간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맛객은 능이의 향기가 오감을 자극한다고 했다. 이 능이향기가 맛객을 미치고 환장하게 만든다.

 

버섯은 향을 맡으며 먹는 음식이다. 굳이 코를 대고 맡지 않아도 하얀 김을 통해 능이의 향기가 퍼져 나간다. 그리고 시원한 국물. 음식이 주는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한동안 능이의 향취가 머릿속에 아른거릴 것만 같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그리울 것 같다. 능이향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업소정보는 http://blog.daum.net/cartoonist/11187808 에 있습니다.  

다음날 오후 산에서 돌아와 중앙식당을 다시 찾았습니다. 백반의 국은 토란국으로 바뀌었더군요. 백반의 국이기에 매일 능이무국만 나올 리는 없겠지요 혹,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중앙식당의 능이무국을 맛보고 싶다면, 미리 연락을 해서 백반의 국을 능이무국으로 주문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토기탕 같은 요리나 능이를 넣은 고기볶음을 주문해도 된다. 것도 아니면 주인 아주머니에게 능이요리를 맛보고 싶어 왔으니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것도 편하겠군요. 

주로 고장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집이다 보니 정형화된 식당은 아닙니다. 맞춤형 음식주문이 가능하다는 얘기지요. 맛객은 겨울날 혹 곡성에 가게 된다면 이 집에 들러 능이를 넣은 비둘기탕을 맛 볼 생각입니다.


태그:#능이버섯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