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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관을 정제한다'는 말이 있다. 격식에 맞게 차려입어 매무새가 바르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옛 선비들은 나들이를 하려면 누추한 차림이라도 의관만은 반드시 격식대로 갖추어 입었다. 아무리 더워도 버선을 벗지 않고 머리를 졸라맨 망건을 풀지 않았고 삼복더위에 목물을 하더라도 차마 웃통을 드러내기 조심스러워 베적삼은 걸쳤다고 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상반신 노출 사진이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파격적인 모습이다. 푸틴의 경우는 그 근육질 몸매가 부럽기까지 하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다소 황당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도 지중해 해변에서 알몸으로 돌아다니다가 파파라치의 망원렌즈에 잡힌 적이 있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는데, 권위와 격식을 따지는 대통령일지라도 끓는 듯한 염천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며칠 전 또 다른 황당한 사건을 경험했다. 어느 날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에 있는 '주몽 세트장'을 구경했다. 짬도 나려니와 드라마 <주몽>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유명한 곳이어서 가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저수지에서 시작한 길은 상당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고, 사이사이마다 성문과 저잣거리가 있고 전시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드라마를 보지 못해 잘 알 수 없었지만 동부여성문이라는 큰 문도 있었던 듯하다. 어디선가 촬영팀이 와 갑옷을 입은 채로 서 있고 키 큰 호마도 몇 마리 묶여 있었다.


그날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려 구릉에 불과한 곳임에도 성곽에 오르니 등줄기에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역사를 안고 유장히 흐르는 영산강의 굽은 허리는 아, 아름다움과 함께 그 안에 서려 있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만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푸른 들과 어우러져 굽이굽이 흐르는 강. 얼마나 많은 세월을 말없이 흐르고 있을까. 그렇게 사방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건너편 성곽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다보니 드라마를 찍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나는 소리였다.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걸어오고, 건너에서 그 광경을 촬영하고, 그 모습을 몇 사람의 구경꾼이 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무언가를 요구하는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은 무리의 중심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가관이었다. 웃통을 벗어부친 채 허여멀건 몸뚱이를 그대로 보이며 허공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중에는 여성들이 다수였음에도 웃통을 벗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어색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습기까지 했다. 연출자일까? 그렇다면 지금의 저 위치에 오르기까지 많은 노력과 수고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도가 좀 심한 게 아닐까? 무언가 개운하지 않은 막연한 느낌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한증막 같은 방에서 웃통을 벗다가 더위 속에서 다시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 교만에서 오는 안일함. 태풍에 채 익지도 못하고 떨어져 내린 낙과들을 상기하는 것은 지나친 망상일까? 만약 그 사람의 상태가 그런 것이라면 그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에 알 듯 모를 듯 팽배하고 있는 천민자본주의, 천민학력주의. 그런 위태로운 기반 위에 죽순처럼 불쑥 솟은 번지 없는 우월감. 그리고 그런 것들에 의해 신분상승을 꿈꾸는 신데렐라들. 이런 잘못된 현상들이 불쑥 떠오르는 건 나 혼자 만의 기우는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윤흥길 선생의 유명한 소설 <완장>이 있다. 땅 투기로 돈푼깨나 만지게 된 졸부가 저수지에 양어장을 만들게 되고, 그 저수지 감시를 저잣거리의 무뢰배에게 맡긴다. 감시원 완장을 두른 '밑바닥' 인생은 완장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날부로 안하무인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는 내용이다.


타지로 떠돌며 밑바닥 거친 일로 신물나는 인생을 살아왔던 그에게 완장은 그야말로 도깨비 방망이였던 셈이다. 결국 경찰에 쫓기는 처지가 되고, 그가 쫓겨난 물 위엔 완장이 떠다닌다. 저수지 위에 이끼 낀 부표처럼 떠다니는 완장의 허황함. 우리의 의식 속에 있는 권력에 대한 허상이 무엇인가를 은유적으로, 그러나 너무나 쉽게 일깨워주는 소설 <완장>.


다른 사람의 마음은 들여다보게 하면서 정작 자신의 마음은 보지 못하게 하는 교만. 그것은 결국 마치 호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나를 찌르고 남을 찌르게 된다. 플라타너스 잎마저도 삶은 국숫발처럼 늘어졌던 뜨거웠던 날, 더위에 잠깐 웃통을 벗어부쳤던 그 이에게만 허물을 묻고자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나부터, 우리사회의 구성원모두가 한번 쯤 자신의 행색을 돌아보고 혹여 배암 허물 같은 껍데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면 물 위에 떠도는 완장처럼 그렇게 훨훨 벗어버리자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의 예로 든 그 웃통 벗은 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그날 '웃통'을 벗고 계셨던 이에게 다시금 죄송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태그:#완장, #교만, #웃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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