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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놀이'가 될 순 없을까? 놀이의 핵심은 참여와 즐거움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정치가 '코미디'나 '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참여는 없고 쓴웃음과 냉소만 횡행한다. 정치가 술자리의 안주가 되었을 땐 그나마 희망이 있었다. 하여 이번 연재물의 목표는 정치의 술안주화(化)다. 결코 코미디나 쇼처럼 일회성으로 끝날 수 없는 대통령 선거를 여러분의 술자리 안주로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요리사'가 되겠다. 독자 손님들의 적극적인 주문도 기대한다. [편집자말]
지난 8월 1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마지막 대선예비후보 합동연설회가 끝난뒤 이명박 후보 지지 대학생들이 '취직 좀 시켜주면 안되겠니' 플래카드를 내걸고 '이명박'을 연호하고 있다.
 지난 8월 1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마지막 대선예비후보 합동연설회가 끝난뒤 이명박 후보 지지 대학생들이 '취직 좀 시켜주면 안되겠니' 플래카드를 내걸고 '이명박'을 연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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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겪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면, 30대 회사 동료들과 대학가 신촌 인근 술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참 영화 <화려한 휴가>가 화젯거리로 올랐는데, 옆자리 20대 남녀가 "어, 저희도 오늘 그 영화 봤는데요" 그러면서 합석을 제안했다. 좋다고 하고 술상을 맞붙였다.

그 둘은 인근 대학을 다니는 20대 남녀였다. 여학생은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가 재외국민 특별전형 케이스로 들어온 학부생이었고, 남학생은 군대에 다녀온 뒤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 둘은 기초과학 분야의 전공자들이었는데, 남학생은 치의대, 여학생은 의대 편입학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돌연 술자리는 여학생의 하소연으로 뒤덮였다. 평소 남자친구에게 하지 못했던 불만과 분노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자연스럽게 '청중'이 되었다. "내가 왜 니 용돈까지 대야 하냐!"며 여학생은 눈물에, 잘하면 콧물까지 흘릴 판이었다.

사연을 정리하면, 여학생의 어머니는 동대문시장에서 옷장사를 하고 있는데 어렵게 번 돈으로 딸자식을 일찌감치 캐나다로 유학을 보냈나 보다. 남학생의 아버지는 모 신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이들은 부모에게 등록금은 물론 용돈을 타 쓰는 처지. 남학생은 집에 손을 잘 벌리지 못했던가 보다. 상대적으로 여학생쪽에서 데이트 비용을 자주 댔고, 학원비를 대준 적도 있단다. 그 여학생은 "왜 우리 엄마가…"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눈물을 쏟았다. 엄마가 간혹 자신 몰래 남자친구에게 용돈을 쥐어주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눈치다. 여학생은 ‘시장’에서 일하는 엄마를 떠올리며 설움과 억울함을 토했다. 남학생은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켰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20대 청춘남녀의 연애 풍경이다.

"5%를 제외한 나머지는 평생 88만원을 받으면서..."

며칠 뒤 우석훈 박사(40·생태경제학)를 만났다. 그는 군대를 건너뛴 덕에 서른이 되기 전에 박사학위를 딴 행운아다. 대학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다녀와 대학 강사를 비롯해 기업과 정부 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최근 3년 녹색당을 만들기 위해 눈물나는 시도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잠시 떠나 있다"며 스스로를 'C급 경제학자'라 부른다.

우 박사를 만난 이유는 최근 그가 펴낸 책 때문이기도 했다. <88만원 세대>. 과격한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이다.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일종의 20대에 관한 경제 보고서다.

88만원은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 비율 74%를 곱하면 나오는 금액(그나마도 '세전' 소득이다). "지금의 20대는 상위 5%만이 삼성전자·5급 사무관·한국전력 등과 같은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평생 88만원에서 119만원 사이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20대를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책이다. 한 대선 후보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을 하고 싶다"는 대학생의 말을 출사표에 삽입해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사실 일자리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런데 왜 우석훈은 '20대'에 착목한 것일까?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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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20대가 만나게 된 세상은 확실히 30·40대가 만났던 한국사회와 다르다. 옛날에는 대학 졸업장만 있어도 종합상사의 문은 크게 열려 있었고 꼭 그렇게 큰 직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도 '오퍼상'이라 불리던 소규모 수출대행업자와 같은 것을 혼자 운영할 수도 있었다.

인력이 모자라 지방을 해체하며 수도권으로 노동자들을 불러내던 시기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문이 닫혔고 IMF 이후 새롭게 형성된 한국경제의 질서는 매우 가혹하게 변했다."

우석훈은 20대를 'IMF 1세대'라 명명했다.

"물론 1998년의 IMF 경제위기 때는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이 크건 작건 경제적 삶은 물론 개인적 삶에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20대는 실제로 IMF 경제위기 이전의 한국이 가지고 있던 삶의 방식이나 경제적 규칙들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IMF를 맞았고, 몇 년 동안의 격변기를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첫번째 세대라 할 수 있다."

10대 때 IMF를 통해 가혹한 승자독식의 세계를 배웠고, 무기력하게 잘려나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지켜봤다. 저항의 길은 없었다. 사교육의 열풍 속에서 획일화되고 온순하게 길들여졌다.

386, 동지애 부르짖더니 후배에겐 무얼 남겼나

우석훈은 '386세대'인 40대와 '유신세대'인 50대를 질타했다. 정치적으로는 억압되었을 지언정 경제적으로는 가장 풍요로웠던 70·80·90년대 과실을 누렸으면서도 다음 세대에 대한 지원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IMF 시기 사회로 나온 30대는 그래도 '벤처기금'이라는 형태의 사회적 지원이 있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20대는 또래집단과의 세대 내 경쟁과 함께 자리를 꿰차고 있는 기성세대들과의 동시 경쟁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다.

"유신세대는 개별적으로는 20대의 부모들이지만 전체적으로 자신의 세대에게 주어질 무언가를 떼어서 20대에 경제적으로 지원한다는 사회적 대화의 장을 연다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협의나 대화의 방식보다 경제 성장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보다 빠르다는 유신시대의 향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86은 어떤가.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386의 자기결집은 사회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들의 68세대들이 공교육 체계를 대학까지 연장(국립대학화)시키면서 다음 세대들이 보다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가지고 20살에 독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은 반면, 우리나라 386은 학벌주의와 경제엘리트주의를 더욱 강화시키는 반작용을 했다."

386이 누구의 말처럼 '찰떡 동지애'를 발휘했을지 몰라도 후속세대와 대화하고 역사적 수혜를 되물림하는 데는 인색했다는 주장이다. 신자유주의·세계화 시대의 '인질'이 되어 있는 20대에게 386은 어떤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 냈을까.

'생애 첫 자금지원'이라고 해서 20세가 되면 2000만원 정도의 자금을 은행을 통해 지원해주는 스웨덴의 사례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석훈은 "욕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세대 간 감정의 괴리를 지적했다.

"20대는 '나 힘들다'고 이해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윗세대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이들을 증오한다. 좌파는 '생각이 없다'고, 우파는 '싸가지 없다'고. 서로 이유는 다르지만 무시하는 건 똑같다. 남녀 관계라면 이혼해야 마땅한 상태지만 집에선 부모고, 또 친족관계이기 때문에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무한경쟁에 떠밀린 20대의 선택은
 

정치로 얘기를 돌려보자. '20대의 보수화'를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박성민 대표(정치컨설팅 '민')는 20대를 '세계화 세대’라 명명했다. "절대빈곤의 배고픔이나 민주주의의 결핍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무한경쟁의 혹독한 생존논리를 배운 세대"라는 점에서다. "문화적으로는 또래집단의 영향을 받지만 정치적으로는 부모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우석훈 박사도 책에서 비슷한 주장을 폈다.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구호를 빼고 현실적인 경제 관계로만 분석을 한다면 지금의 20대는 유신세대의 선택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부모 세대의 경제적 상황이 개선되는 것이 그래도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이 있지, 형이나 누나뻘에 해당되는 전두환 세대(386 세대)의 경제적 상황이 나아진다고 해봐야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수화'라 단정할 순 없다. 전문가들은 "정체성이 복잡한 세대(박성민)" "위태로운 세대(우석훈)" "종잡을 수 없는 세대(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라는 표현으로 대신했다. 이들에게 선택지는 윗세대들의 만들어 놓은 '민주 대 반민주' '한나라당 대 비한나라당' '호남 대 영남' 같은 정치 마케팅의 구호들 뿐이다.

"말하라!" 우석훈의 제안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20대 초반의 국회의원들이 등장하면서 20대 권익을 사회적 의제로 제시하고 프랑스의 경우 이미 20대 대선 후보가 있는 것과 비교하면 지금 우리나라 20대들은 너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대선 공간을 활용해라. 정책토론회에 20대 패널을 내세우고 각 정당을 압박해 20대 비례대표를 넣어라."

지금 20대는 '안 보이는 곳'에 있다. 토플 책을 들고 도서관에 처박혀 있거나 우울증에 시달리며 골방에 갇혀있다. 대기업의 마케팅 대상이거나 정치세력의 동원 대상에 머물고 있다. 전체 유권자의 20%가 20대 유권자들이다. 적지 않은 숫자다. 

안 보이는 20대, 나와라!

"좌파인가, 우파인가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20대, 그리고 다음 세대가 당면하게 될 경제적 운명을 지금 우리가 어떻게 풀 것인가, 그게 당면한 질문 1번이다."

<88만원 세대> 마지막 페이지의 문장이다. 이들을 맞이하는 ‘꼰대’들의 자세에 대해서도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20대의 질문을 기다릴 것이다. 기고 글도 좋고, 인터뷰 제안도 좋다. 뭐든 요청하시라. 그로 인해 <대선 진맥-20대편> 2탄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대통합민주신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이랜드 사태해결'을 요구하는 10여명의 대학생들이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이랜드 사태해결'을 요구하는 10여명의 대학생들이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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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우석훈, #88만원, #20대, #대선,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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