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누구나 한 번쯤은 비 온 뒤의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에는 무지개가 어떻게 생기는지 궁금해하면서,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지 쫓아가 보고픈 충동에 빠진 적도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렇듯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무지개가 낭만적인 무엇이지만, 우리 선조들은 재변의 일종으로 생각하였다.


그럼, 무지개가 어떻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였기에 재변이라고 여겼을까? 한자 사전을 보면 무지개를 뜻하는 글자인 홍(虹), 동(蝀), 체(螮), 모두 벌레 충(虫) 변을 쓰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분홍(雰虹), 채홍(彩虹), 천궁(天弓), 체동(螮蝀), 홍예(虹霓)를 모두 무지개의 다른 명칭으로 적고 있다. 이 중 천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벌레 충(虫)자가 들어가 있다.

 

왜 모두 벌레 충(虫) 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장태악張太嶽의 글에 말하기를, ‘무지개 홍虹, 무지개 체螮, 무지개 동蝀자를 다 벌레 충虫 변에 쓰는 것을 보니, 무지개는 아마 어떤 동물이 있어서 그것을 만든다. 유생儒生들이, 음양의 사특하고 음란한 기운이 무지개를 이룬다고 하는 것은 억설臆說이다’라고 하였다. 심존중沈存中은 필담筆談에서 말하기를, '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무지개는 도랑물을 마실 줄 안다고 한다. 진실로 그런 것 같다. 일찍이 비가 갠 뒤에 무지개를 보니 양쪽 머리가 다 도랑물 속에 드리워 있었다. 또 한 늙은 중이 말하기를, 산중에서 비가 온 뒤에 큰 두꺼비 같은 한 생물이 배를 두드려 기를 토해 무지개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예사로 기를 토하여 무지개를 이룬다고 말하는 것은 망령된 것이 아니다. 중이 본 것은 도마뱀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이수광)는 말한다. 무지개가 도랑물을 마실 줄 안다는 것은 무지개가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 물속에 있는 어떤 생물이 기를 내뿜어 형상을 이루는 것이라 생각되는데, 신기루 따위와 같은 것이 아닌 가 의심된다. 살펴보니 무지개 예霓자를 이아爾雅에서는 예蜺로 쓰고 있으니 암무지개라는 뜻이다(지봉유설 천문부 무지개).

 

무지개는 어떤 동물이 만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지개를 뜻하는 모든 한자에는 벌레 충 자를 붙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물을 마신다고 생각한 걸 보니 무지개가 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생성 원리까지는 몰랐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물뿐 아니라 심지어는 당나라 때 검남절도사인 위고가 잔치를 벌였는데 갑자기 무지개가 하늘에서 내려와 음식을 먹어버렸다는 황당한 홍흡음식(虹吸飮食) 이야기도 있다.


여기서 이수광은 과학적 사고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무지개가 물을 실제로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 점에서는 무지개의 생물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어떤 생물이 기를 내뿜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연현상에 대한 비과학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이익은 빛이 물방울 안에서 반사, 굴절, 사출되어 무지개가 생긴다는 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옛적부터 '무지개가 물을 마신다'는 말이 있는데, 나의 경험으로 보면 이는 그렇지 않다. 젖은 구름이 앞에 있고 사람이 해를 등지고 바라보면 무지개가 보이는데 그것은 습기가 멀고 가까운 데에 따라서 무지개가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것이다. 사람이 한 걸음 전진하면 무지개도 한 걸음 멀어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초부터 일정한 위치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고 습기가 없는 곳까지 가면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물을 마신다는 것은 일시적인 이변일 뿐 어찌 일정한 위치에서 물을 마셔서 물을 말릴 수가 있겠는가? 주자는, '무지개는 엷은 비에 해가 비춰서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형체가 있어 물도 마시고 술도 마실 수 있다' 하고 또,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반드시 창자도 있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 대목은 더구나 이해할 수 없다(성호사설 천지문 홍예음수(虹蜺飮水)).

 

이 글에서 주목해야 될 부분은 마지막 단락이다. 마지막 단락에서 성호 이익은 무지개에 관한 주자의 해석을 '이해할 수 없다'며 비판을 하였다. 성호 이익이 살던 시대의 조선에서 주자학은 절대적 지배이념으로, 경전에 대한 주자의 해석과는 다른 해석은 사문난적으로 간주되던 분위기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익은 주자가 한 말의 부당성을 지적하였으니 실로 목숨을 건 발언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나는 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형 인간이었던 이익은 주자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맹신하지 않고 철저히 회의하고 고증하였다. 무지개에 관한 이익의 철저한 고증은 주자에 그치지 않았다. 


<고려사절요> 등 옛 문헌을 보면 '흰 무지개가 해를 꿰었다(백홍관일白虹貫日)'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익은 이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하였다. 이익의 비판 논리는 무지개는 반드시 구름이 있어야만 생기는 것인데, 해에 가까워질수록 구름이 사라지므로 무지개가 생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지개는 해를 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익 또한 무지개를 재변의 일종으로 여기고 있다. 이는 무지개가 소나기, 벼락, 천둥이 거쳐 간 후 등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지개가 뜨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해를 꿰뚫는 무지개가 매우 음란하고 요사하다고 여겼는데, <시경>에서는 '무지개는 천지의 음기가 뭉쳐서 된 것'이므로 사람의 변사(變邪)에 비하였다.

 

심지어 <산림경제>에서는 무지개가 생겼을 때 '성교를 하면 병을 얻게 되고 혹 임신이 되더라도 자녀의 형성이 반드시 완전하지 못하며 비록 낳더라도 기르지 못한다'고 할 정도였다.


동양의 무지개에 관한 인식에 비해, 서양의 인식은 어떠했을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방울 속에 무지개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해의 반대쪽에 있는 물방울이 무지개의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물방울에 의한 빛의 굴절로 무지개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설명한 사람은, 이수광보다 3백년 정도 일찍 활동했던 13세기 폴란드의 비텔로였다. 무지개에 있어서만큼은 서양에서 먼저 그 원리를 밝혀 낸 것이다.


하여튼, 이수광이 적은 것처럼 무지개를 숫무지개(虹), 암무지개(霓)로 분류한 것은 어떤 무지개를 보고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상상이다. 암무지개라는 표현은 안정복이 쓴 <동사강목>에도 등장한다.

 

밤에 암무지개가 동쪽에서 솟아오르더니 개경 남산에 떨어졌다가, 잠시 후에 다시 솟아서 남북을 향하여 둘로 갈라졌다(1347년 추7월 6일자 기사).

 

무지개가 해도 없는 밤에 솟아 둘로 갈라졌다고 하였으니 안정복은 무엇을 보고 그리 표현한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옛날 백과사전을 읽다'는 지봉유설(1614년), 반계수록(1670년), 산림경제(1716년경), 성호사설(1740년), 오주연문장전산고(19세기 중엽) 등 백과사전류와 북학의, 열하일기, 청장관전서, 발해고 등 북학파의 저서 등을 참고하여 조선 중기 이후 지식인들의 사물에 대한 인식과 그 변천을 고찰하고자 한다.


태그:#무지개, #백과사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