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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전거 세계일주 중인 '비전노마드' 문종성입니다. 먼저 지난 번 여행기까지는 이야기를 다듬어서 연재했는데 현재 여행기가 많이 밀려 있고, 또 따로 이동 중에 시간 내어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아 다음 호부터는 현장 중심의 이야기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간 미숙했던 부분들에 너그러운 양해를 바라며 우선 인디애나 주부터 현재 로키산맥이 있는 콜로라도 주까지의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요약해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중부의 인디애나주에서였습니다. 길을 가다 미국 교회에 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가 보았습니다. 지쳐 있는 몸과 마음을 달래고자 잠시 경건의 모습으로 돌아가 여정을 위해 기도하고 나오다가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들과 인사를 하고 얘기를 하는데 할머니께서 자신의 80번째 생일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번 일요일에 교회에서 기념 예배를 드린다며 마냥 좋아했습니다. 그녀의 들뜬 표정에 저까지 괜히 기분이 좋아져 축하한다고 말했더니 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오늘 집에서 가족들이 모여 파티를 한다며 초대를 해 왔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요.

 

그녀의 이름은 도리스(Doris). 멀리 콜로라도에서 온 그녀의 친척들을 포함해 그녀의 집에서 가족파티를 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정겨운 모습은 우리네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물론 저는 유일한 이방인이었지만 진심으로 그들과 하나가 되어 함께 즐거워하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가족들은 도리스의 파티에 참석해 준 저에게 고마워했지만 도리어 저는 그들의 호의가 더 고마웠답니다.

 

그리고 그녀의 언니의 딸, 그러니까 그녀에게 조카가 되는 제니(Jenny)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자비 사절단(Mission of mercy)'라는 빈민 구호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제가 그 길이 루트라고 하니까 꼭 들르라며 명함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단체에서는 케냐나 소말리아·북한 등 빈민국 어린아이들을 돕는다고 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불끈거렸지요. 소외되어 있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녀의 절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로부터 석 달 후에 콜로라도에서 그녀와 반갑게 재회하게 됩니다.

 

또 밤에는 이웃에 사는 스티븐(Steven)의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제가 혼자 오랜만에 기타를 연주하려고 딱 폼 잡고 거실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가 오더니 놀라운 솜씨로 연주를 하더군요. 정말 수준급이었습니다. 손가락이 춤을 춘다고 해야 할까. 14살에 기타를 처음 잡아 30년 넘게 다뤄왔다는데 과연 그럴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정열적인 스페인 리듬의 음악도 무리 없이 연주하고, 마치 거문고 튕기는 듯한 뮤트 연주도 탁월하고, 클래식까지 섭렵해 그야말로 감질나게 연주하더군요.

 

그는 이미 빅 콘서트도 여러 차례 열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모터사이클 멤버들이 모여서 밴드를 조직했다고 하는데 밴드 이름이 '파운드'(pound)라네요. 이름 그대로 파운딩하는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뮤직 파운드? '사정없이 치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랜디 로드(Randy Rhodes)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애석하게도 그는 이미 고인이지요. 1982년에 운명을 달리했으니. 또 에디 밴핼른(Eddie vanhalen)의 음악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어요.

 

어쨌든 장인 정신이 배어나오는 정말 멋진 그의 연주였습니다. 시골의 한적한 도로에서 다시 한참을 들어와야 하는 깊은 동네에서 놀라운 기타 연주솜씨를 듣게 될 줄이야!

 

미시간 호수에서 카누 타기, 파도 속에 삶의 이치 깨달아

 

다음 날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왠 남자가 뒤에서 저에게 인사를 해와 깜짝 놀랐습니다. 다짜고짜 친한 척을 해대며 저에게 점심 먹었냐고 물어보더군요. 안 먹은 걸 체면 때문에 먹었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솔직하게 대답했더니 그럼 자기 집에 가서 식사나 하자고 하더군요. 알았다는 대답과 동시에 이미 저의 핸들은 반대편으로 돌려져 있었습니다.

 

그의 집은 숲 속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젊은 남자가 왜 이리 따로 떨어져 사는가 싶었는데 그의 집에 도착하는 순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별장을 방불케 하는 그의 집 앞으로는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인 숲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파란물감을 풀어 놓은 미시간호수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야, 끝내주는데요!". 정말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식사 후 그가 제의해 카약을 탔습니다. 처음 타보기에 초보 행색 드러냈습니다. 서툴렀지만 파도를 타는 방법을 알고 나서 어줍지 않게 노를 저어보니 꽤 재미있었습니다. 파도를 피해 옆으로 가고자 하면 뒤집어지고, 파도를 향해 정면으로 부딪혀야 배가 균형을 잡고 나아갈 수 있음을 알고 앞으로 나에게 파도 같은 힘겨운 고난이 와도 피하지 않고 맞서야겠다는 평범한 진리도 직접 몸으로 체득했지요.

 

해변과 진배없는 미시간 호수 모래밭에서 게리의 가족과 즐겁게 놀면서 너무너무 환상적인 미시건 호의 일몰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미시간 호수의 물비늘에 눈부셔 감긴 눈이 젖어 있었습니다.(실은 너무 놀다가 하품하다 흘린 눈물입니다만….)

 

그리고는 다음날 시카고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상이 있었던 치아를 치료했습니다.철벽 소신 앞세워 술을 안 마시긴 하지만 평소에 물 대신 콜라를 마셨고 때문에 지독한 콜라 중독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번 여행에서도 톡 쏘는 탄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루 평균 5캔 이상의 음료를 섭취하다 보니 작년에 수술 받았던 잇몸과 치아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 다행히 수술 부위에 이상은 없었지만 몇 달만에 다시 충치 치료를 받아야만 했지요.시카고에서는 3주 동안 푹 쉬었습니다. 그러면서 명물인 딥 디쉬 피자를 먹었고, 존 앵커 빌딩에 올라가 호수와 빌딩 숲의 환상적인 파노라마 배경이 펼쳐진 도시를 한 눈에 조망해 보기도 했습니다.

 

유람선 투어도 체험했습니다. 물 위에 펼쳐진 건물들이 저마다 개성을 뽐내며 멋진 풍경을 이뤄냈습니다. 대화재의 아픔은 이제 역사 자료에서나 기억을 되짚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지금 시카고는 경제·사회·문화·스포츠·관광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을 매력적인 메트로폴리탄으로 거듭나 있었습니다.

 

또 시카고 코스타(유학생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몸 전체에 심한 화상을 입고 여러 차례 수술 끝에 이제는 건강하고 진취적인 숙녀로 변모한 '지선아 사랑해'의 주인공 아름다운 청년 이지선씨를 만나 교제하기도 했지요. 무엇보다 자신의 핸디캡에 대한 절망에 굴하지 않고 꿈을 위해 재기하고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그녀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엔 온통 옥수수 밭 뿐인 일리노이 주를 가로질렀습니다. 며칠 동안 제가 본 것은 옥수수 농장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를 보아도 옥수수, 저기를 보아도 옥수수. 기계가 대신한다지만 끝도 없이 펼쳐진 대규모 농장의 이 많은 옥수수를 대관절 어떻게 처리하는지 마냥 신기할 뿐입니다.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저무는 햇살에 비쳐진 황금빛 옥수수 밭을 하염없이 바라보자니 소리 없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흔적 없는 실바람만이 옥수수 밭 사이로 공허한 일리노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이제 자동차마저도 이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길을 기피해 아무 존재도 느껴지지 않는 일리노이 도로 위에서 메아리 없는 독백을 두고 아이오와 주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납니다.

 

한 중년여성이 차를 타고 쫓아와 먹을 것 주기도

 

지금부터 20년 뒤 여러분은 잘못하고 후회할 일보다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러니 밧줄을 던져 버리십시오. 안전한 항구에서 벗어나 멀리 항해하십시오. 무역풍을 타고 나가십시오. 탐험합시다. 꿈을 꿉시다. 발견합시다. - 마크 트웨인

 

아이오와주는 그야말로 눈물 없인 넘어갈 수 없는 99개의 고개가 있습니다. 언덕 하나 넘어가면 또 눈앞에 언덕이 보이고, 그 언덕을 힘겹게 넘어가면 다음 번에는 연속적으로 굽이쳐 휘감아 도는 언덕이 보이고….

 

태양은 심각한 도로 상태 앞에서 좌절로 점철된 눈물마저 메말라 버리게 하고 모든 감정을 태워버려 심지어는 고통마저도 느끼지 못하게 했습니다. 제가 108번뇌 고개라고 명명할 만큼 그야말로 울고 넘는 아이오와주 도로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넘어간 아이오와 시티에서는 단순히 길을 묻다가 인연으로 발전한 친구가 있습니다. 로비(Robby)라는 미술학도인데 잠시 나눈 대화가 인연이 돼, 이틀 동안 그와 함께 미술, 역사 박물관 등을 둘러보고 또 미국 횡단과 관련 여러 가지 정보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이하게도 김치를 찬양하며 한국 음식을 좋아했던 그는 저를 데리고 직접 한국 음식점에 가서 짬뽕과 순두부찌개를 먹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소식을 주고받는 그가 LA에서 다시 보자고 하니 그 때 다시 만나게 되면 또 반가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오와주의 인가가 드문 비포장 도로로 들어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였습니다. 30분 전쯤 낯선 자전거 청년이 자기 집 앞을 지나쳐 가는 걸 안 한 중년여성이 차를 타고 저를 뒤쫓아와 먹을 것을 주기도 했습니다. 딸이 그녀에게 저에 대해 설명했고 그녀는 걱정되는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었습니다. 마침 길도 잃고 식량도 바닥나 배가 고팠기에 그녀가 전해준 음식을 감사히 먹었습니다.

 

다시 몇 분 뒤 이번에는 웬 소형 트럭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오다 제 옆으로 멈춰 섰습니다. 창을 내리고 저를 바라보던 히피 풍의 남자는 길을 잃었냐고 물으면서 제 자전거를 자신의 차에 옮겨 실으라고 하더군요. 그가 바로 '활기찬 알코올 중독자' 제이미(Jamie)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저를 만난 오후 3시부터 헤어진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그가 마신 버드와이저 맥주만 해도 20캔이 넘었으니까요. 거의 시간당 두 캔을 비웠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운전하면서도 연거푸 들이키고, 저녁 식사 전에 에피타이저로, 식사 중에, 식사 후에 디저트로, 일하기 전에, 잠들기 전에, 아침에 일어나서, 저와 얘기하면서, 손님이 방문했을 때 손님과 함께, TV를 보며, 근처 레스토랑에 함께 가서 등등….

 

걱정되어 만류했지만 그는 연신 괜찮다며 물 마시듯 맥주 캔을 비워냈습니다. 그런 그에겐 너무나 멋진 핸리 데이비슨 오토바이가 7대나 있었는데요. '질주하기 위한 삶, 살기 위한 질주(Live to Ride, Ride to Live)'의 신조로 살아가는 그는 술과 오토바이만 있으면 자신은 결코 외롭지 않다고 합니다. 저도 난생 처음 그걸 타 보았는데 굉장히 스릴있고 재밌더군요.

 

제이미요? 물론 오토바이 타면서도 버드와이저 한 캔을 걸쭉하게 들이킵니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활기차게 사람들을 대하는 걸 보면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가 알코올 중독이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그에게는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형제 하나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경황이 없던 그가 슬픔을 채 거두기도 전에 엎친 데 덮친다고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그의 또 다른 형제가 그만 물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답니다. 그가 슬픔을 못 이겨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순식간에 홀로 된 그는 잘 마시지 않던 술로 슬픔과 외로움을 이겨내려 한 것이었습니다.결국 그것이 원인이 되어 지금은 술독에 빠져 허무한 인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떠나기 전 그에게 금주할 것을 권고했지만 쉽게 끊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음만은 따뜻했던 그가 그립습니다. 그가 술 대신 다른 의미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더운 날씨에도 열심히 페달을 밟고 밟아 바람을 가르며 아이오와 주를 거의 빠져나왔습니다. 그 날 바로 앞에 네브레스카 주를 바라보는 곳에서 밤 늦게까지 숙소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저를 부르는 백발의 신사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샘(Sam). 그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계속 왔다갔다하는 저를 보고 도와주려 부른 거였습니다.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한 제 상황을 알고서는 30분 간 함께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 참을성 있게 여기저기 수소문해 봤지만 뾰족한 수가 안 나타났지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전화했던 친구로부터 드디어 텐트 칠만한 장소를 알아냈습니다. 그곳은 타운 근처에 있는 교회의 뜰.

 

밤 10시가 다 되도록 함께 있어준 너무 고마운 그와 헤어지고 텐트를 쳤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제가 야외에서 잠을 자니 샤워를 못하리란 걸 알고서는 조금이라도 씻을 수 있게 3.7리터짜리 생수를 두 통이나 사가지고 온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허기져 있을 걸 예상해 포도와 오렌지·사과 등 과일도 함께 가져왔습니다.그의 배려가 너무 멋지지 않나요?

 

눈에서 폭포수가 흘러 나오려다 일단 먹고 나서 감동하자는 생각에 맛있게 과일을 먹었습니다. 후에 주변을 정리하고 텐트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가끔 마을 사람들이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대체로 잘 자라는 말과 함께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씻고 잠을 청하려는 순간 경찰차가 나타나더군요. 준법정신 투철하고 낯선 것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또 신고를 했나 봅니다. 하지만 경찰들은 제 상황을 이해하고 "여긴 위험하다, 밤새 자기네가 교대 순찰 돌며 경호해줄 테니 안심하고 푹 자라"고 위로하며 돌아갔습니다. 이만하면 도둑이 얼씬도 못하겠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밀린 여행기를 한 번에 정리하다보니 두서가 없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태그:#자전거, #미국횡단, #인디애나주, #아이오와주, #미시건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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