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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끼 챙기는 짓 좀 하지마. 네가 내 마누라라도 돼?"
"얘가 왜 순결한 남의 호적은 어지럽히고 그래?"


이러고 싸우는 남과 여. 동거는 하지만 애인은 아니다. 사랑은 하지만 섹스는 안 한다. 이런 남녀관계가 가능하다면? 실은 '섹스 안 함'을 전제로 한 '플라토닉러브'가 아니라 '순결한 우정' 관계라면? 집안일도 척척에 웬만한 여자 친구보다 더 내 맘을 헤아려주고 나와 놀아주는 남자 친구가 가능할까? 여자와 남자 사이에?

드라마엔 등장했다. MBC 주말 드라마 <9회말2아웃>(극본 여지나, 연출 한철수)은 서른 살 먹은 홍난희(수애)가 "서른 됐는데도 내 인생이 왜 이 모양?" 이러며 좌충우돌하는 제2의 성장기지만, 한편으론 '동갑내기 남자 친구와 연애 안 하기' 프로젝트다. 30년 지기 변형태(이정진)와 연애와 우정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홍난희, 8살 연하와 알콩달콩 연애하다 현실에 부딪혀 깨지고 회사에서 깨지느라 바쁘다.

내 인생 왜 이 모양이냐 지지고 볶으며 현재 자신을 마지막 한 구가 남은 '9회말2아웃' 상태라고 머리 박는 홍난희와 그를 둘러싼 이 이야기에 여자들이 꽂혔다. 난희를 구해줄 재벌2세도 없고, 꽃미남의 파노라마도 없고, 시청률마저 한 자리지만 여자들이 보내는 충성도는 최근 퍼붓던 빗발보다 세차다.

"가슴에 팍팍 꽂힌다." "저거, 내 이야기다" "대사발이 너무 리얼하다." "내 다이어리 훔쳐본 게 틀림없다" 쏟아지는 '뒷담화'가 거세다. 그리하여 <9회말2아웃>에 필 꽂히고, 등에 칼 꽂혀 가슴이 서늘하고 웃느라 바빴다는 두 여자가 대표 선수로 마주앉았다.

그렇다고 현실과 마주앉은 건 아니었다. 차마 이름 내밀고 별별 이야길 할 만큼 얼굴에 철판을 두르진 못 했다. 진실한 대화를 위해, 이름은 가짜로 하기로 했다. 가짜 이름 팔아 교수 되고 회사 차리는 것도 아닌데 좋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가양'과 '나양'이 됐다.

자, 가양과 나양? 야구 경기 끝난 뒤 운동장 같이 너저분하고 허전한 마음을 이 드라마가 꽃등심 3인분마냥 콱콱 채워준다며?

도대체 누가 서른에 잔치 끝난대?

가양: 이 드라마 너무 재밌지 않냐?
나양: 내가 <커피 프린스 1호점>하고 이것만 보잖아. 그런데 시청률이 왜 이리 낮은 거야? 10%도 안 된다며?
가양: 그러게 말야. <칼잡이 오수정>도 두 자리인데, 말 되냐?
나양: <대조영>이 30퍼센트를 넘는다며? 다들 아버지한테 리모컨 뺏기고 컴퓨터로 봐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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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양: 아니면 혼자 사는 여자들이 많이 봐서? 20대 30대 독립 여성들은 시청률 조사대상에서 많이 없잖을까?
나양: 아니면 우리 같은 인간 빼고 다들 데이트다 파티다 바쁜 거야?
가양: 그런 말로 초반부터 김 빼지 맙시다. 어쨌든 내 주변은 다들 이 드라마 재밌다고 난리더라.
나양: 내가 아는 역삼동 김모양도 <커피 프린스 1호점>하고 <9회말2아웃>만 본대더라.
가양: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마냥 부럽고, 이건 아주 가슴에 꽂혀. 팍팍 와 닿아. 너무 리얼해.
나양: 그건 네가 4살 연하랑 연애해서 아냐?
가양: 무슨 소리. 난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닙니다. 군대 갔다 왔거든.

나양: 하하하하. 난 그 드라마 보면 네 생각나더라.
가양: 왜? 부러워서?
나양: 됐거든? 그런데 왜 서른 되면 잔치는 끝났다고 난리들이야?
가양: 내 말이. 그러니까 괜히 덩달아 서른 되면 불안하잖아. 서른 돼 멀쩡하면 이상한 사람 되고.
나양: 내 말이. 서른은 돼야 경력도 5, 6년차 좀 넘어가 직장도 다닐만하고 자리도 좀 잡고 그렇잖아?
가양: 잔치가 끝나긴커녕 당최 난 어느 세월에 잔칫상 받아보나 하는 생각만 들더라.

나양: 그대 잔칫상은 환갑에 받으시고. 하기사 이 나이 됐는데도,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싶다니까. (잠깐 지금 다니는 직장 이야기로 샜다가 돌아온다.) 그거 봤어? 수애 아니 홍난희가 맨 처음에 그러잖아.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데 서른이 오고 말았어." 그래놓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그러잖아. "너무 무서워." 아. 그거 공감 120퍼센트. 정말 해놓은 거 없이 서른을 넘긴 느낌. 누가 알까? 너 말고.
가양: 그러게. 예전엔 서른 넘으면 뭔가 확실하게 해놓을 줄 알았어. 하다못해 통장이라도 빵빵하던가. 아니면 남자라도 확실하던가.
나양: 통장은 빵빵이 아니라 '빵꾸' 나게 생겼잖아? 그대?
가양: 죽어. 남들은 펀드다 뭐다 잘들 하는데, 난 왜 이러니?
나양: 당신이랑 만만찮은 난들 알겠냐? 그 잘한다는 남들은 다 남자들 아냐?

가양: 쳇. <9회말 2아웃>도 그래. 같은 서른에 난희는 직장도 별 볼 일 없고, 신춘문예도 별 볼 일 없이 만날 떨어지는데, 같은 서른인 변형태(이정진), 아니 '똥모양'군은 왜 그리 잘 나간다니?
나양: 광고대행사에서 잘 나가는 그 분? 그러게. 집이 황금성인 낙하산 여사까지 저 좋다 난리고.
가양: 그런 친구 있으면, 30년 지기 아니라 관짝 친구래도 살짝 배 아플 거 같지 않냐?
나양: 그래도 그런 남친 있는 거, 정말 부러워. 애인 말고 순수한 남자 친구.
가양: 그러게. 척하면 착이지, 다 아니 꾸밀 것도 없지, 가끔 애인 대행도 해주지.
나양: 남편 혹은 애인 자랑도 안 하지. 좀 만나자고 하면, 만날 애인 달고 나타나지도 않지.
가양: (딴청 부리며)

뽀뽀하고 나서도, 계속 친구가 가능할까?

나양: 오. 형태 같은 남자 친구, 부러워. 그것만 해도 난희는 9회말2아웃이 아니라 역전 홈런 가능성 65퍼센트, 아냐?
가양: 그거야 모르지. 둘이 저번에 뽀뽀도 했잖아. 물론 친구로 돌아가자, 어쩌자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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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양: 그 드라마 있잖아. <질투>? 기억나? 최진실과 최수종이 친구하다 애인 되는 거?
가양: 어. 둘이 껴안고 카메라가 빙빙 돌던 거 기억나. 하지만 둘이 계속 친구로 남는다. 신선하잖아? 만날 연애만 하는 것보다.
나양: 그런데 둘이 뽀뽀까지 한 마당에 과연? 아무 일 없단 듯이 친구로 될까?
가양: 왜 안돼? 될 수도 있지. 형태가 초반에 그러잖아. 여자를 만나는 덴 세 가지 'ing'가 있어야 한다. 타이밍, 필링, 으……. 또 하나 뭐더라?
나양: 해프닝?
가양: 맞다. 해프닝. 그런데 둘에겐 셋 다 아직 부족해.

나양: 같이 확 자버리면?
가양: 으그. 자긴 왜 자?
나양: 내가 아는 친구도 여자랑 남자랑 같이 사는데.
가양: 정말? 그게 돼?
나양: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우리가 보기엔 걔, 아무래도 게이야.
가양: 진짜?
나양: 몰라. 본인은 아니래. 이 드라마도 그러잖아. 둘이 리조트에 놀러가서 급기야 한 집도 아니고 한 방에서 자잖아. 그래도 아무 일 없다니까, 거기서 만난 다른 커플이 그러잖아. 저 게이들.
가양: 게이 아닌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잠도 자면서도 아무 일 없이 친구로 지낼 순 없나?

나양: 남자들은 안 된다더라. "오빠 못 믿어?" "나 못 믿냐?" 이래놓고 못 믿게 하는 놈들 많대잖아.
가양: 쳇. 뭐야. 그래도 드라마에서라도 그걸 깨 줬으면 좋겠어.
나양: 남자와 여자가 친구로 쭈욱 지내며, 서로 결혼해 상대방 배우자 염장 지르는 현실을 보여 달라고? 만약 네 애인에게 너보다 친한 여자친구가 있다면 좋겠냐?
가양: 몰라. 난 둘이 그냥 친구로 평생 살았으면 해. 멋지잖아. 멋진 남자 친구. 애인 말고.

나양: 아마 그러면 시청률이 애국가와 경쟁관계에 돌입할 걸?
가양: 네가 무슨 제작진이냐? 시청률 걱정하게? 뭐 애정과 우정 사이 아슬아슬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진정한 우정 좀 보여주면 안 될까? 만날 연애 했잖아? 티브이?
나양: 내 생각엔 형태와 난희 눈길은 우정의 눈길이 아냐.
가양: 네가 무슨 눈칫밥 도사냐?
나양: 아마 눈꺼풀이 내려 닿기도 전에 알아맞히는 눈꺼풀 도사 맞을 걸?

서른인데 앞날이 캄캄해

가양: 그런데 맨 처음에 난희가 그러잖아. 불안한 미래도 싫고 걱정도 싫고 기약 없는 연애질도 싫고 눈물과 불면의 밤 다 쫑 내고 싶다. 곧 서른인데 앞날이 캄캄해. 그래놓고 이러잖아. 엄한 놈보다 네가 낫다. 나랑 결혼하자. 그것도 실은 잠재의식이 시킨 속마음 아냐? 원래 난희도 형태를 어려서 짝사랑하다 고백 안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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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양: 하하. 기억력 죽인다. 어찌 그걸 다 기억하누?
가양: 그거 내 대사거든. 아. 그런 대사를 읊어보지 않고 어찌 서른을 넘겼다고 할 수 있으리?
나양: 혹시, 그대가 짝퉁 난희? 그런데 정말 그거 농담처럼 한번들 해보잖아? 남자친구랑 우리 몇 살까지 결혼 못하고 그때 둘 다 싱글이면 결혼하자.
가양: 그래 놓고, 냉큼 결혼들 해버리지.
나양: 결혼 안 했어도 연락 끊기거나, 끊어진 연락처 겨우 알아내 물어보면, 그거 기억하고 있는 나만 바보 되거나?

가양: 어? 어찌 그리 잘 알아? (음흉한 눈초리로) 이거, 남 이야기하는 '필'이 아닌 걸?
나양: 해봤다. 어쩔래? 그거 정말 기분 더러워. 꼭 나 홀로 짝사랑했던 거 같잖아. 그냥 찔러보지도 못하나.
가양: 찔러볼 마음은 있던 거네. 그런데 남자랑 여자랑, 형태랑 난희처럼 친구 안 되나?
나양: 그런 케이스 정말 못 봤다. 오죽하면 한때 '게이 남친' 있었으면 좋겠다 그랬잖아.

가양: 절대 남자로 돌변하지 않는 남자에 대한 로망? 꿈 아냐?
나양: 여자 친구에 대한 실망, 그 반작용인가?
가양: 일찍 결혼해서 연락 끊어졌다가, 어찌 어렵게 만났다 하면, 애, 남편, 시댁 이야기 빼면 시체 되는 바람에 한 번 보면 다시 보기 두렵게 만드는 친구?
나양: 애인 생기면 '행불(행방불명)' 되는 친구도. 왜 기집애들이 하나 같이 남자만 생겼다 하면 사라지거나 연락 두절이 되는 거야? 귀먹고 눈멀고, 남자친구 만나면 무슨 헬렌 켈러라도 된대?
가양: 그래도 언젠가 연락 오잖아.
나양: 결혼식에 부조금 내라고? 부케 받으라고?

가양: 크크크. 아. 맞다. 그거 봤어? 난희가 형태랑 목욕탕 같이 갔다 와서, 형태한테 그러잖아. 결혼한 친구 만나서 넌 남편 있어 좋겠다. 아이 있어 좋겠다. 넌 싱글이라 좋겠다 이러고 나면 대화가 공중에 붕 떠서 냉수 마신 것처럼 속은 더부룩한데 뭔가 허전하고 찜찜한 기분. 그러면서 멀어지더라고. 어쩜 똑같니?
나양: 맞아. 유부녀와 처녀 사이엔 요단강이라도 있는 거 같아. 보이진 않지만 건널 수 없어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아줌마랄까.
가양: 하하하. 맞아. 아줌마들도 그러더라. 처녀랑 말 안 통한다고. 결혼 차이가 세대 차이를 넘어서다니. '결혼'하면 유전자가 바뀌는 건가?

나양: 그런데 가양. 나야말로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가양: 으그. 그거 난희가 형태한테 한 대사잖아? 연하 정주랑 헤어지고 같이 낚시 가서?
나양: 내 말이. 서른 넘으니 정말 슬금슬금 그런 생각이 들어. 나도 양희은 노래나 불러야 하나.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가양: 야. 시끄러. 고기 다 도망가.

나양: 여기가 무슨 낚시터냐?
가양: 눈길 주려던 남자들도 다 도망간단 말야. 네 노래 듣고.
나양: 미안하다. 그런데 네 대학 4학년 남친은 어디 두고?
가양: 연하, 공부중이다.
나양: 취직? 넌 밖에서 노는 걸로 내조를 하는구나. 남친 공부하게 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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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같은 남자가 어딨냐?

가양: TV 보는 걸로도 해. 그 내조. 그런데 이정진, 멋있어지지 않았어?
나양: 그러게. 군대 가기 전엔 그냥 느끼해서 싫었는데. 걔 잘 생겼다는 애들 보면, 기름진 거 무지하게 좋아한다고 취향 특이하다 그랬는데.
가양: 내 말이. 난희더러 "기집애" 이러는데도 적당히 귀엽더라. 부러워. 애인이든 친구든. 그렇게 친구 같은 애인이라면 더 부럽고. 그런 남자가 어딨냐? 지 애인이 더럽더라도, 딴 넘과 잔 거 다 아는데도 신경 전혀 안 쓰는 남자가?

나양: 있다는 전설로만 내려오는 그 남자?
가양: 아무튼 홍난희 파이팅!
나양: 카드회사 직원 춘희도 파이팅! 제발 춘희와 고스톱 부장을 연결하지 말아주시길.
가양: 마누라 자식 외국 보내놓고, 고시원 살면서 눈만 떴다하면 컴퓨터로 고스톱만 치고 있는 무능력 부장?
나양: 춘희도 이제 빚 좀 다 갚고, 지 인생 살려고 어깨 편 거 아냐? 그런데 '기러기'한테 던져주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 춘희가 무슨 새우깡도 아니고 말야. 그 부장 마누라, 외국에서 바람난 거라며? 차라리 고스톱 부장과 낙하산 지선을 연결 시켜주지?

가양: 하하하. 낙하산 지선양 눈에 낙숫물이라도 들어갔냐?
나양: 지겹잖아. 잘난 것들끼리만 그러는 거? 현실에서 그러는 것도 짜증나는데.
가양: 그런데 어떡하냐? 잘난 형태(이정진)에게 역시 잘난 첫사랑 기타리스트 스타께서 나타나셨잖아?
나양: 난희랑 형태가 드디어 감정의 시험대에 올라서는 거네. 쌤통이다.
가양: 무슨 소리. 난희는 일로 매진해서 신춘문예 당선하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한다. 이거 아니겠어? 그래서 난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돈 세어라. 난희야."

나양: 헐. 졌다. 그런데 정말 이 드라마, 대사발이 예술 아니냐?
가양: 맞아. 그거 기억나? 형태가 난희랑 같이 살면서, 지가 모르는 난희가 있다고 숫자 세던 거.
나양: 하하. 그거? 다이어트 한다며 밥은 안 하고 과자는 계속 처먹는다?
가양: 크크. 또 있잖아. 꿔간 돈은 잊고, 꿔준 돈은 기억한다.
나양: (가양을 노려보며) 정말 리얼함 최고야. 돈은 세었니? 가양?

태그:#9회말투아웃, #홍난희, #변형태, #수애, #이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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