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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장가계는 구름 속에 갇혀 있다. 과연 맑은 하늘 속에 장가계 천자산(天子山)의 기암 절경을 감상할 수 있을까? 사람의 목숨도 하늘에 달렸지만, 여행도 하늘의 날씨에 달려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행히 비는 올 것 같지 않은 날씨가 되었다. 하늘은 흐린 편이다. 절경 감상에는 지장이 없지만 사진은 잘 나오지 않는 날씨이다.

장가계 천자산 들어가는 입구. 9층 기와건물이 우뚝 서 있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건물이지만, 동양의 완만한 산하에는 이런 기와건물들이 부드러운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이 고층 기와건물의 편액에는 무릉원(우링위안, 武陵源)이라는 황금빛 글씨가 새겨져 있다. 무릉원은 천자산(텐쯔산, 天子山), 장가계(장자제, 張家界), 삭계곡(쒀지위, 索溪谷)을 아우르는 이 절경 지구의 공식 명칭이다. 무릉원은 소설 속에 나오는 이상향의 땅을 말한다.

나는 무릉원 서북쪽에 위치한 천자산에 들어서면서 약간은 뜻밖의 경험을 했다. 천자산 출입 시에 놀랍게도 지문 인식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유효기간이 2일인 이유는 하루 만에 천자산 등 장가계 절경을 모두 감상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천자산은 비가 오거나 안개가 낀 날이 많아서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값 비싼 천자산 입장권이 종이표였을 당시에, 이 종이표를 위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지문인식 카드는 결국 불신의 사회가 만들어낸 첨단 시스템이었다.

무릉원 입구에서 굽이굽이 고갯길을 올라온 버스는 댐을 지나 천자산 케이블카 입구에 우리를 내려준다. 천자산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항상 관광객들이 몰리는 이 케이블카를 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아침 일찍 나온 우리도 거의 1시간 가깝게 기다렸다.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는 꽤 긴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계단 중간의 쉼터에 간이 노래방이
있다. 일행이 많으면 항상 뛰어난 선수들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 여행 팀의 한 친구가 그 일대를 완전히 한국 노래방으로 만들어 버렸고, 열화와 같은 박수가 이어졌다.

▲ 천자산 케이블카. 천자산 능선까지 오르는 동안 경탄이 이어진다.
ⓒ 노시경

이 명산에 케이블카를 놓는 것은 환경보호가 우선인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중국에는 어느 명산에 가나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천자산 케이블카는 최근에 홍콩이 투자하고 스위스 기술로 설치한 5km에 달하는 고속케이블카이다. 케이블카는 산 높이 692m를 단숨에 오른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차창 밖을 보면서 모든 사람들이 '와-'하는 탄성을 내뱉는다. 여행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장가계 여행은 '와와' 관광이라고 하는데, 그 탄성은 대부분 이 천자산 케이블카의 10분 여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순식간에 천자산(해발 1250m)의 능선에 올라선 느낌이 조금은 얼떨떨하다. 몸이 편하게 공간 이동을 하니, 이곳이 산 위인지 평지인지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발아래로 고개를 돌리자 천자산의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풍경이 넓게 들어온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명산 중에서 가장 섬세한 바위산의 아름다움을 지닌 산임이 틀림없다.

▲ 어필봉. 황제가 던진 붓이 거꾸로 꽂혔다는 봉우리이다.
ⓒ 노시경

천자산에는 각양각색의 기묘한 바위들이 몰려 있다. 눈에 띄는 기묘한 바위들마다 이름이 붙어있고, 관광객들은 이름과 닮은 바위들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찾아낸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사진을 찍는 곳이 있어서 보니, 어필봉(御筆峰)이다. 다른 바위들이 육중한 덩치로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면, 이 어필봉은 마치 붓과 같이 가는 몸집을 가지고 있다.

전쟁에서 진 황제가 천자산을 향해 자신이 사용하던 붓통을 던졌는데, 그 붓이 천자산에 거꾸로 꽂힌 곳이 어필봉이라고 한다. 천m가 넘는 산 위에 언제 황제가 올라왔을까? 이 정도의 중국식 과장법이면, 누구라도 이 어필봉 전설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아름다운 산 위에서 '그 전설은 거짓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바위의 모양이 정말 붓과 같이 생겼고,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선녀헌화봉. 가운데 작은 바위가 무릉원에서 꽃을 바치는 선녀이다.
ⓒ 노시경

이곳 장가계는 공식 명칭이 신선이 논다는 무릉원이다. 그래서 무릉원에 선녀가 끼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형상을 닮은 이 바위는 '선녀(仙女)'이고, 이 선녀가 앞에 무언가를 들고 바치는 형상은 '선녀헌화(仙女獻花)'라는 이름이 되었다. 선녀가 들고 있는 그 무언가는 꽃과 같이 아름다운 이미지의 사물이 되었다.

그런데 이 유명 바위들의 전망이 좋은 곳은 현지인들의 얄팍한 상술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곳에 발 디딤대를 놓고 그 위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라는 것이다. 인력이 남아도는 중국은 관광지마다 이런 사람들이 넘쳐난다. 아내와 왔던 2년 전의 중국여행에서도 아내는 중국인들의 이런 태도를 보고 진절머리를 쳤다. 관광지에서 만나는 중국인들은 탐욕 그 자체이다.

▲ 하룡공원. 하룡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장군이었다.
ⓒ 노시경

아기자기한 바위들을 뒤로 하고 나오면 하룡공원(賀龍公園)에 다다른다.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10대 원수 중의 한 명이라는 하룡(賀龍, 1896~1969)을 기념하는 공원이다. 이 공원에는 높이가 6.5m에 달하고 무게가 9t이나 되는 중국 최대의 동상인 하룡 동상이 서 있다. 1995년에 이 공원을 방문한 강택민 전 총서기가 공원 입구의 바위에 '하룡공원'이라는 글씨를 남길 정도로 현대 중국인들이 애정을 갖는 인물이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이 동상에 경의를 표하면 안 될 것이다. 농민폭동과 북벌, 장정과 중국의 항일전쟁에 참여했던 하룡이 중국인들에게는 영웅이겠지만, 그는 한국전쟁 당시에 한국을 침략한 중공군의 장군이었다. 우리의 국군을 살상한 이 적군의 수장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밤을 파는 토가족 여인. 천원에 꽤 많은 구운밤을 먹을 수 있다.
ⓒ 노시경

우리 일행은 원가계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이동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가에는 수많은 토가족 여인들이 "천원, 천원"을 외치며 장가계의 명물인 구운밤을 팔고 있다. 천원에 꽤 많은 구운밤을 주기 때문에 나는 일행이 산 구운밤을 나눠 먹었다. 밤 크기는 작지만 맛은 달고 깔끔했다.

원가계행 버스를 기다리는 곳에는 버스 운행을 돕는 도우미가 예쁜 토가족 아가씨였다. 모두 남자인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조선족 안내인을 통해 이 아가씨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너무 예뻐서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게 아니냐고 하였더니, 수줍어하는 이 아가씨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정말 예쁘다는 우리 일행의 수군거림이 이어졌다. 지나가던 밤 파는 토가족 아주머니가 아주 묘한 웃음을 짓는다. 남자는 어느 나라 남자나 다 똑같다는 표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7년 5월말의 여행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가계, #천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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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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