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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부산박물관 전경. 국립부산박물관은 그 연혁이 오래되었으며, 영남과 부산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음으로서 이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 송영대
지난달 17일, 시간을 내 국립부산박물관을 찾았다. 요새 국립부산박물관에서는 특별전을 하고 있는데, 바로 중국 고대 청동기 , 옥기에 대한 내용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중국의 상하이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유물들을 전시한 것으로서 2007년 6월 15일부터 9월 9일까지 전시를 하며, 따로 입장료를 받지는 않는다. 감탄스러울만한 청동기나 옥기가 많아 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부산에 거주하면서 주말에 나들이 갈만한 가족에게 그 황홀한 세계를 감상하라고 권유할만하다.

국립부산박물관은 1978년에 개관한 박물관으로 제법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부산의 중요 유적지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경남지역을 대표할만한 여러 자료들이 있어, 경남과 부산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되는 곳이다.

▲ 척화비.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후 전국에 세우게 한 비석으로 외세와 싸우자는 의지와 통상수교거부정책의 다짐을 담고 있다.(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8호)
ⓒ 송영대, 국립부산박물관 소장 유물
기자는 들어갈 때 박물관의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우측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여러 유물들이 외부전시로 마련되어 있었다. 외부전시를 보면서 천천히 걸어 나가다가 문득 한 비석 앞에서 멈추었다.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는 비석이었는데, 평범한 그 모습보다, 거기에 적혀진 글귀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윗줄(사진에선 오른쪽 2줄)의 뜻은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이다. 그리고 아랫줄(사진에선 왼쪽의 2줄)의 뜻은 “우리들의 만대자손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이다. 이는 바로 척화비의 글귀다.

척화비(斥和碑)는 구한말 고종 시절,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뒤에 세운 비이다. 그래서 “丙寅作 辛未立(병인작 신미립)”이라는 글은 이러한 당대의 상황을 말해주며, 당시 조선의 조정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를 넌지시 말해준다. 이 비는 당시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임오군란이 일어나 흥선대원군이 청나라로 가게 되자, 일본 공사의 요구로 대다수가 철거되었다. 이 비석은 부산진 성터에 세워져 있었는데, 1924년 용두산공원으로 옮겼다가 1978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박물관의 배치는 크게 제1전시관과 제2전시관으로 나눈다. 둘 다 2층으로서 제1전시관의 경우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를 중심으로 해 놓았으며, 제2전시실은 일제시대와 현대시대를 중심으로 하고 기획전시실 등이 있다.

▲ 조개가면. 동삼동패총에서 발굴된 것으로 신석기시대의 것이다. 4~5천년 전의 부산사람들은 이 조개가면을 쓰고 제례의식 등을 행했으리라 본다.
ⓒ 송영대, 국립부산박물관 소장 유물
제1전시관에는 흥미를 끌만한 유물이 많았는데, 개중에서도 들어가자마자 내 눈에 띈 것은 동삼동패총에서 발굴된 조개가면(貝面)이었다. 2개의 눈구덩이에 입을 쩍 하고 벌린 모습이 가히 스크림이나 뭉크의 절규 같은데, 그 표정이 익살스러우면서도 정감이 간다. 아무렇게나 뚫은 그냥 조개일수도, 실제 사람이 쓰기엔 너무 작은 가면이라고 생각될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 존재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다.

동삼동패총은 우리나라 신석기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지로서, 사적 266호로 정해진 해방 후에 발굴된 곳이다. 패총은 일본이나 중국의 해안에서도 널리 보이는 유적인데, 이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조개를 먹고 그 껍질을 모아놓은 곳이다. 이는 당시의 생활상을 잘 알 수 있는데, 단순히 쓰레기더미로 생각 할 수도 있으나, 조개가 잡히는 시기와 같이 발견되는 토기들을 보고 이를 분석하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나 영양상태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러한 가면 같은 유물은 그 당시 사람들도 현재의 사람들처럼 예술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예술이라고 하면 휘황찬란하고 화려한, 그러면서 일반인이 범접하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 할 수는 있으나, 우리의 삶에서 인위적으로 가공하여 좀 더 아름답게, 혹은 그에 의미를 부여한 창조물을 일컫는 게 더 옳다고 본다.

그러나 눈과 입만 뚫려 있는 것에게 이러한 의미를 부여해도 될까란 의문도 든다. 얼마 전에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화성의 사람얼굴도 근래 들어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 조개가면의 경우 유물의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쳐져 있긴 하나 거의 중앙에 그 모습이 있으며, 눈과 입의 위치가 절묘한 것이 인위적인 목적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삼동패총에서 여러 조개팔찌가 나온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이는 인위적으로 만든 예술품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가면은 유희적 목적, 혹은 샤머니즘, 즉 무당이 쓰던 물품으로 생각되는데, 이처럼 작은 유물 하나로 그 당시의 삶을 복원 할 수 있다는 것이 고고학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 편두인골. 편두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인위적으로 이마에 돌을 눌려 만든 짱구머리를 말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많이 보이며, 우리나라에도 영남지방에서 많이 보인다. 김해 예안리고분군 여성인골 약 30%가 이 편두였다고 한다.
ⓒ 송영대, 국립부산박물관 소장 유물
삼국시대의 유물 중 눈길을 끌었던 것은 편두인골(編頭人骨)이었다. 이 인골은 4~5세기 정도의 것이며, 김해 예안리고분군에서 출토된 것이라 한다. 두개골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전시까지 해 놓을까란 생각을 할 수도 있으나, 이 두개골은 일반 두개골과는 다르다. 일반 두개골에 비해서는 외계인의 두개골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머리가 납작하게 눌려있다. 쉽게 생각해서 편두란 인위적으로 만든 짱구머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至於以石押頭之謬, 實悖於理, 斯不可也."

위의 글귀는 <삼국지> 「위서」 30 조선전에 나오는 내용으로서 "어린 아이가 출생하면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려 하기 때문에 지금 진한(辰韓)사람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라는 뜻이다. 참고로 이 기록은 진한만 일컫는 게 아닌 변한에도 해당되는 내용으로서, 쉽게 말해 지금의 영남의 동남부 쪽은 편두의 풍습이 있었음을 말한다.

사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발견되는 풍습 중 하나이다. 훈족이나 스키타이족들이 편두를 하였으며, 헝가리에서도 편두 두개골이 발견된 바 있다. 그밖에 코카서스 북부나 터키의 유목민들도 편두를 한 바 있어, 주로 유목세계에서 편두를 했다고 단정하기 쉽다. 그러나 이집트나 마야에서도 편두를 하였는데, 마야에서는 귀족층 이상에게 편두를 하게 하였으며, 이는 종교적 관습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들을 미루어 우선 진한과 변한의 편두는 특이성을 가지고, 이는 학자들이 기마민족도래설을 말하면서 그 근거로서 제시하기도 하다. 다만 김해 예안리고분군에서 여성의 인골 30%에 편두가 보인다고 하는데, 이는 일종의 관습적인 것에 기인한 게 아닌가 싶다. 신라와 가야의 왕관을 보면 그 화려함에 입이 벌어지지만, 정작 왕관을 쓰려고 보면 저게 너무 작지 않느냐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이는 또 편두라는 머리 때문에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편두를 하게 되면 머리의 정수리부분이 뾰족하게 되는데, 그 때문에 왕관이 작더라도 쓸 수 있었으리라 본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왕관 중 금동관은 실제로 많이 썼으리라 생각되어도, 금관은 피장자를 위해 제작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편두인골 위에는 발치(拔齒)를 한 인골이 있다. 발치란 인위적으로 이빨을 뺀 것을 말하는데, 이는 우리나라보다도 일본의 야요이시대 인골에 많이 보인다. 야요이시대란 일본의 시대 중 하나로서, 우리로서 말하면 거의 청동기시대나 원삼국시대 정도의 시기인 기원전 5세기 ~ 기원후 3세기 정도(최근에는 야요이시대의 시작을 기원전 8세기로 보기도 한다.)로 보면 된다. 사실 청동기시대라고 말하기에도 모호한 것이 그 당시에도 석기가 많이 쓰이고, 청동기나 철기는 자체적 제작보다도 외래에서 전래된 것이 많았으며 석기는 자체적으로 제작하였다는 식으로 구분이 되기 때문에, 금석병용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금석병용기라는 용어는 예전 일제 강점기 시절, 한반도에는 청동기시대가 없다고 멋대로 단정 지어 붙인 명칭이기도 하다.

이러한 발치는 성인식의 의례 중 하나로 보인다. 발치 뿐 아닌 연치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이빨에 어떠한 도구로 줄 같은 흔적을 인위적으로 내는 것을 말한다. 일본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이러한 풍습들은 발견된다고 한다. 옛날의 성인식을 보면 일부러 힘이 들게 하거나 어릴 적엔 체험하지 못한 것을 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면서 그에 따른 책임감을 지어주고, 진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동안은 사회에 부양되었던 이라면, 이제는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책임을 부여해준다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 그래서 고의적으로 그들만의 풍습을 만들어 이를 통하여 고통을 극복하고 단결 할 수 있고, 또한 자기 자신의 종족임을 표시하는 역할도 한다고 본다.

▲ 금동보살입상. 보살상 치고는 천의와 군의, 그리고 영락장식이 거의 없어 검소한 모습을 보인다. 신라 후반의 작품이라고 하며,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으로 그 자태가 아름답다.(국보 제 200호)
ⓒ 송영대, 국립부산박물관 소장 유물
부산박물관을 둘러보면 불교문화재 중에서도 흥미롭거나 화려하거나, 혹은 그 가치가 매우 높은 유물들도 더러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국보 200호로 지정된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인데, 높이는 34cm로 신라 후반의 것이라고 한다. 출토지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지리산 주변에서 발견되었다고 전래된다. 처음 이 보살상을 보고 참 검소해 보인다란 생각이 들었다.

다소 엉뚱한 생각 일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보살상을 보면 화려한 천의를 입고 영락으로 여러 장식을 하면서 그 멋을 뽐내는 반면에 이 보살상은 그렇지 않다. 천의와 영락장식은 최소한도로만 설정해 놓은 채, 팔과 손목에 팔찌를 착용하고 싱긋이 웃으며 서있다. 그러면서 곡선으로 아름답게 처리한 그 자태 또한 곱다.

이 보살상은 관음보살상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머리에 보관의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보살들은 다 보관을 갖고 있는데, 이 보살상은 분리형으로 되어 있는 듯 하며, 전해져 내려오다가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불상의 뒷면을 보면 구멍이 3개 뚫려 있다고 하는데, 이를 보아 본래는 뒤에 광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살상은 전체적으로 도금 상태가 양호한 편에 속한다. 머리카락 부분은 도금되지 않아 보일 수 있어도 자세히 보면 금박의 흔적이 약간씩 보인다. 본래는 도금이 되었다가 후대에 사라졌거나, 보관을 생각하여 금박을 최소한으로 하지 않았을까 한다. 얼굴은 약간 통통하고 턱이 갸름한 편이고 눈은 지그시 감고 살포시 미소를 띠고 있다. 편안한 얼굴이나 만약 보살상이 지그시 감은 눈을 뜨고 거울을 통해 금박이 벗겨져 곰보처럼 변한 얼굴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거울을 보고 그렇게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한탄 할 수도 있겠지만, 그와 관계없이 천년이 넘도록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자신을 보고 다시 지그시 눈을 감으며 이전처럼 미소를 띠고 다시 천년을 보내지 않을까?

이 보살상은 양감있는 몸매와 균형미 등으로 견주어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는 신라 후반의 뛰어난 조각기법을 보여주는 걸작이라 일컬을 만 한 걸작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팔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팔이 거의 무릎까지 닿는데,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라면 모를까, 원숭이처럼 긴 팔이 약간 재미있기도 하고, 가느다랗게 표현하려다 지나쳐서 그리 되지 않았을까란 약간의 염려도 든다.

국립부산박물관의 전시물들을 보면 흥미를 끌만한 게 많이 있다. 단순히 휙휙 지나가기 보다도 차분히 감상하고 또 의문 드는 점이 있으면 이를 간직하였다가 박물관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면서 자신의 지식을 늘려나가는 것도 좋다. 따분하고 더운 주말, 그리고 칙칙하게 비가 내려 밖에 나가기가 귀찮은 요즘, 한번 마음먹고 박물관에서 여러 유물을 감상하는 게 어떨까? 타임머신은 먼 미래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몇점의 유물을 통해서도 그 시대로 가 볼 수 있는 박물관에 있는 게 아닐까?

태그:#국립부산박물관, #척화비, #조개가면, #편두, #금동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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