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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의 기암괴석이 늘어선 봉우리들 아래로는 협곡이 이어진다. 장가계에는 큰 협곡을 사이에 두고 온갖 형상의 봉우리와 절벽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곳이 있다. 십리가 화랑처럼 아름답다는 십리화랑(十里畵廊)이 그 곳이다. 한 마디로 협곡 양쪽의 경관이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게 병풍을 친 것 같다는 명소이다. 중국인들은 한자가 자신들의 글이어서인지 한자 작명은 참으로 잘 한다는 생각이 든다.

▲ 십리화랑 모노레일. 5km에 달하는 십리화랑을 기차 안에서 감상한다.
ⓒ 노 시경
길이가 5km에 달하는 이 십리화랑의 동양 산수화를 감상하는 방법은 2 가지가 있다. 한 칸에 5명씩 타는 모노레일을 타고 십리화랑을 감상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완만한 경사의 포장길을 따라 40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나의 평소 취향대로라면 당연히 걸어가며 풍경을 감상했겠지만, 이번 여행은 동료들이 많아서 함께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속에서 산수화의 절경은 구름 속에 갇혀 신비감을 더해 주고 있다. 놀이공원의 꼬마 열차 같이 생긴 모노레일 옆으로는 꽤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면서 십리화랑을 감상하고 있었다.

걸어서 십리화랑을 답사하는 길도 폭이 좁고 바로 옆에서는 여러 대의 모노레일이 계속 지나기 때문에 여유로운 감상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 모노레일은 조금씩 흔들린다. 나는 흔들리는 모노레일 안에서도 협곡과는 반대쪽에 앉는 바람에 기암연봉을 사진에 담는 데에 문제가 많았다. 사진 찍는 데에 별 관심이 없는 나의 믿음직한 동료가 자기 자리를 나에게 양보해 주었다.

협곡 양안으로는 나무와 수풀이 무성하고, 야생화의 천국답게 야생화가 이곳저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여름을 맞아 자연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맑은 물 흐르는 계곡이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작은 기차가 다니는 아래쪽에서 위쪽의 장가계를 올려다보며, 기암에 취하고 기암을 감상했다. 각양각색의 기이한 봉우리가 계속 지나가는데, 중국 사람들이 이 기암에 이름을 붙여놓지 않았을 리가 없다. 묘하게 생긴 봉우리들의 이름은 장군바위, 가족바위, 손가락 바위, 닭 바위 등이다. 이 기차는 사람이 걷는 것보다 제법 빠르게 가기 때문에 이 기암들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모노레일의 종점에 도착해 발을 십리화랑에 내딛었다. 이 모노레일 종점은 십리화랑 중에서도 경치가 가장 좋은 곳이기에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들 명산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자신의 증명사진을 한 장 찍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이다.

▲ 십리화랑 기암괴석. 마치 한 폭의 산수화 속으로 들어온 듯 하다.
ⓒ 노 시경
모노레일을 내리는 곳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는 십리화랑의 대표적 봉우리인 세 자매 봉우리이다. 이 봉우리는 왼쪽부터 첫째, 둘째, 셋째 봉우리인데, 첫째와 둘째는 아기를 업은 모습이고 막내는 임신 중이라고 한다. 등에 업은 아기도 첫째의 아기가 가장 큰데, 설명을 듣고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그 모습이 사람의 형상과 닮아 있다.

▲ 약초 캐는 할아버지 봉우리. 큰 봉우리 사이의 작은 봉우리가 약초 캐는 할아버지 봉이다.
ⓒ 노 시경
이 봉우리들에 깃든 전설을 장식하는 또 한 사람은 약초 캐는 할아버지이다. 큰 봉우리들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봉우리가 약초 캐는 할아버지 봉우리이다. 이 할아버지는 자신이 섬기는 장군이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돌로 굳어버렸다고 한다. 이 할아버지 등에는 약초 담는 망을 짊어지고 있는데, 그 형상이 약초 캐는 할아버지와 모습이 흡사하다.

이곳에서 십리화랑의 길을 따라 더 걸어 들어가면 수성영빈(壽星迎賓), 전각루(轉閣樓), 양면신(兩面神) 등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수를 놓은 명소가 더 있다고 하는데, 나의 발길은 여기에서 멈췄다. 여기에서 더 진입하지 않고 삼림욕으로 유명한 금편계곡을 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 토가족 여인. 전통복장을 입고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는 것이 이들의 직업이다.
ⓒ 노 시경
모노레일의 종점에는 화려한 붉은 색상의 전통 토가족 복장을 한 여인 2명이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여인들의 전통복장 만으로 구별할 수 있는데, 이 여인들은 머리에 토가족 전통의 모자를 쓰고, 흰색과 붉은 색 위주인 토가족 전통복장을 입고 있다. 이 여인들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함께 사진을 찍고, 사진 1장당 한국 돈 천원을 받고 있었다.

이곳에 오는 한국인들 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므로 이 여인들의 수입도 상당할 것이다. 이 여인들에게서 전통 토가족의 순박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그녀들의 눈빛을 보면, 이미 현대문명을 접한 토가족들이 예쁜 토가족 전통복장을 꺼내 입고 비즈니스를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주수입원이 된 토가족들은 이미 그들의 전통생활을 버린 지 오래이다.

문화유산과 기암의 봉우리들로 채워진 나의 사진 중에서 컬러풀한 이 여인과 여인의 복장은 나름대로 여행사진을 풍성하게 해 줄 것이다. 토가족 여인 2명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 2천원을 내야 되기 때문에, 나는 토가족 여인 한명하고만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리 젊어 보이지 않는 이 여인들의 억지웃음에 따라서 웃지 않고, 굳이 함께 사진을 찍고자 하는 한 여인을 떼어냈다.

십리화랑을 내려오면서 다시 모노레일을 탔다. 모노레일은 십리화랑 한 폭의 산수화 속을 급히 나가야 한다는 듯이 단숨에 내려왔다. 나는 이 아름다운 길을 급히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다시 아쉬웠다.

나는 깊은 산속에서 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전통적인 토가족을 만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배낭 하나 메고 산을 올라 그들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기암 연봉이 안개 속에서 나를 반기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가계, #십리화랑, #모노레일, #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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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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