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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사람을 '객관'을 아니라 '주관'으로 평가한다. 사적인 감정이 더 강하게 자리한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사상과 이념에 맞지 않는 인물을 평가하는 데는 그가 이룬 업적에는 별 관심 없이 비난하거나 애써 무시한다.

▲ 마우리체 필립 레미의 <롬멜>
ⓒ 생각의 나무
롬멜은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은 아니다. '사막의 여우' 정도일까? 맥아더, 아이젠하워, 버나드 몽고메리에 비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가 '나치' 장군, 패전국의 장군이기에 더 그러할 것이다. 나 역시 롬멜은 익숙한 인물은 아니다. 사막의 여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마우리체 필립 레미의 <롬멜>을 읽고 난 후 롬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마우리체 필립 레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사막의 여우'에 대한 또 하나의 영웅찬미가도 아니며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한 보복 조치도 아니다. 이 책은 원전을 기초로 진정한 롬멜의 모습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이다. 즉 그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본문 17쪽 인용.

롬멜이 무슨 일을 하였고, 어디에 가입되었고, 어떤 일을 하였는지가 아니라 '인간 롬멜'이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사실 그는 분명 나치에 부역한 자이다. 그가 나치 사상을 설파하거나, 준동한 일은 없다할지라도 그는 히틀러 휘하에서 프랑스를 침략하였고, 히틀러를 위하여 북아프리카에서 연합군과 전쟁을 했기 때문이다. 나치 부역에서 그는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다른 군인들과 조금 달랐다.

그는 전형적인 군인으로 살았다는 사실이다. 북아프리카에서 거둔 승리는 롬멜을 권력의 심장부, 곧 정치군인으로서 가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군인의 길로만 갔다. 권력의 심장부에 설 수 있었지만 이런 롬멜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정치군인들을 생각나게 하였다.

롬멜은 1942년 11월 '엘 알라마인'에서 '튀니지'로 철수하는 작전에서 진정한 군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히틀러는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병사들을 지키기로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병사들을 생각할 때, 마음 속에서 커다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전세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모든 병사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 173쪽 인용.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경험 중에서 단 한 가지 실수를 고백하자면 그것은 바로 내가 '승리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24시간 동안 거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본문 182쪽 인용.


그리고 그는 히틀러의 명령에 불복하고 철수를 감행하였다. 전군을 절멸시키는 것은 우유부단한 지휘관뿐만 아니라 무모한 지휘관도 해당된다. 롬멜은 서서히 히틀러에게서 멀어지게 된다. 장군이라면, 군인이라면 통수권자의 명령을 절대복종해야 하지만 그것이 참군인의 길이 아니라면 거역할 수 있어야지 않을까?

또 하나 사실은 롬멜은 '유대인 학살'의 전모를 거의 모르고 있었다. 롬멜은 '슈트뢸린'에게 유대인 학살의 전모를 듣고 '루게' 제독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가의 기본 토대는 정의여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저 위의 지도부는 깨끗하지 못하다. 학살 행위는 커다란 범죄이다." 본문 305쪽 인용.

물론 전쟁 자체가 학살행위이다. 무고한 민간인을 어떤 틀 안에 가두어 죽이는 행위도 학살이지만, 전쟁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수많은 군인들이 죽어가는 것도 엄격히 따져보면 학살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하면 군인들이 서로 총구를 통하여 죽이는 행위를 학살로 규정하는 것은 민간인의 무고한 죽음과는 대비된다. 이런 면에서 롬멜의 발언과 행동은 분명 나치스에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롬멜>은 그의 개인적인 편지, 직접 쓴 일기, 명령 기록들과 메모를 통해 그의 일생을 재구성하였고 가까웠던 사람들의 설명을 덧붙였다. 매우 사적인 자료를 통하여 롬멜을 평가하고 있다. 롬멜이 군인으로서 어떤 결단과 지휘를 하였는지는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아내 '루시에 몰린'에게 자주 전황을 전하고 자신의 느낌을 자세히 말한다. 1942년 11월 3일자 편지에는,

"사랑하는 루! 전투가 계속해서 격렬해지고 있고 나는 그것이 행복한 결말로 끝이 난다는 것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소. 베른트가 총통에게 보고하기 위해 떠난다오. 그래서 내가 저축해 둔 2만 5천 리라를 그 편에 동봉하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신의 손에 달려있소. 아들과 함께 잘 살기를 바라오. 당신과 아이에게 키스를 보내오. 당신의 에르빈." 본문 174쪽 인용.

이 편지를 읽으면서 위대한 장군이 자신의 패전을 예견하면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 편지를 쓸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패장의 마음으로 쓰는 편지는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았다. 적을 죽여야만 승리자가 될 수 있는 장군이 아닌가? 애틋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이 나은 비참한 '한' 장군의 말로가 씁쓸했다.

<롬멜>은 이런 면에서 전쟁과 군인의 냄새보다는 '인간적 군인'의 냄새를 더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사막의 여우' 그는 정말 '나치스'인가? 이런 비유와 질문에 대한 답보다는 정의를 상실한 독재자가 일으킨 전쟁에 참여하여 서서히 스러져가는 한 군인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마우리체 필립 레미의 <롬멜>  생각의 나무 l 이한홍 감수 l 박헌영 옮김


롬멜

마우리체 필립 레미 지음, 박원영 옮김, 생각의나무(2003)


태그:#롬멜, #히틀러, #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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