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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치히 역에 걸린 환영 메세지
ⓒ 박동구
17일 밤에 출발한 열차는 18일 오전 9시쯤이 되어서 베를린에 도착했다. 지난밤 같은 열차 뒤편에 끝도 안보이던 붉은 악마들을 실은 객차는 새벽 어느 분기에서 잘렸는지 보이질 않는다. 우리의 목적지도 라이프치히였지만 라이프치히와 불과 1시간여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의 베를린을 들리는 것이 좋을 듯하여 이곳에 왔다.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로, 분단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베를린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체크포인트 찰리와 전시된 베를린 장벽에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아픈 역사를 볼 수도 있었고, 베를린의 최대 번화가이면서 체크포인트 찰리가 함께 있는 프리드리히 거리(Friedrichstrasse)에서는 부유한 서독과 가난한 동독의 모습을 한 번에 볼 수도 있었다.

이외에도 많은 볼거리가 있었지만 베를린은 이후 2번이나 더 방문하였으므로, 차후에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정현 누나와 동구 형, 현기, 그리고 나와 원희까지 우리 다섯 명이 라이프치히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경이었다. 준현이네와는 그 즘 라이프치히 중앙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생각해보니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화기도 없고, 장소도 처음 오는 곳인데 무슨 생각으로 만나기로 했는지 말이다.

▲ 경기전 광장에서 신명나는 한판을 벌여준 남사당들
ⓒ 김현기
하지만 이런 내 부정적인 생각은 보기 좋게 깨졌다. 현기와 동구 형이 준현이네를 찾아다니고 있던 그 시간 준현이네도 우릴 찾고 있었고, 역 출입구에서 한 30분 만에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래된 사이도 아니고, 단지 여행지에서 하루같이 지내고 어울린 사이일 뿐인데 너무나 반가웠다.

애초의 계획대로 도킹에 성공한 우리 인터라켄 돼지껍데기파는 이제 무서울 것이 없었다. 라이프치히가 떠나가도록 승리의 응원을 하는 것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이런 생각은 우리뿐이 아니었는지, 저녁에 시작할 경기가 아직 한참 남은 시간이었지만 라이프치히 거리에는 붉은 악마들로 가득했다. 시내 곳곳에는 파란 옷을 입은 프랑스응원단은 잘 보이지 않았고, 붉은 옷을 입은 열정적인 사람들만이 있는 듯했다.

어떤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누군가가 시작한 지도 모를 응원에 동참했다. 특히 광장에서 벌어진 남사당패의 신명나는 한판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라 축제의 모습을 만들었다. 외국인들도 신기해하면서도 즐거워하며 강강술래에 끼었고, 한국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흥에 겨워했다.

▲ 라이프치히 경기장에 모인 우리 인터라켄 돼지껍데기파
ⓒ 김현기
일당백의 응원, 하지만 답답한 경기

그러나 분위기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시끄러운 한국 응원단들이 라이프치히 시내를 거쳐 경기장에 가까워질수록, 그 수가 줄어드는 듯했다. 정확히는 한국 응원단보다 점점 많아지는 파란 옷의 프랑스 응원단이 보였다. 그리고 경기장에 들어서자 토고전과는 다르게 파란 옷의 프랑스 응원단이 절반은 훨씬 넘어 보였다. 더구나 그 수가 계속 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끝없이 라이프치히 경기장으로 입장하는 프랑스 응원단의 모습
ⓒ 박동구
하지만 일당백의 응원은 기본인 대한민국 응원단은 여느 응원단과 달랐다. 대략 보아도 경기장에 6:4에서 7:3 비율의 소수였지만, 경기장의 응원소리는 적어도 2배쯤은 되었다. 눈을 감고 소리만 듣고 있자면 한국 응원단만 모인 경기장 같기도 하였다.

지난 프랑크푸르트 때와 같이 경기 시작 한참 전부터 우리 응원단은 경기장을 떠나가도록 응원을 했다. 그에 비하면 프랑스 응원단은 수는 월등히 많았지만, 통일된 응원이 없는지, 우리의 응원에 밀렸는지 변변한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 시작전 경기장에 도열해 있는 선수들
ⓒ 박동구
우렁찬 애국가와 엄청난 함성을 뒤로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경기는 우리의 응원과는 정반대였다. 마치 피파 랭킹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한 일방적인 경기로 시작되더니 10분도 못 되어 프랑스의 첫 골을 보게 되었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프랑스의 응원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만큼 정렬되고 일치된 것을 아니었지만, 한쪽에서 시작되면 퍼져나가는 형태의 프랑스 응원소리가 우리의 응원을 뚫을 정도로까지 커지기도 했다.

전반을 그렇게 보내고 후반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반격보다는 상대의 날카로운 공격에 추가실점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결정적인 프랑스의 장면이 나올 때마다 응원석에는 탄식이 나왔고, 그와 동시에 안도를 하며 다시 응원에 목소리를 높였다.

▲ 프랑스 응원단의 경기 시작 직후 펼친 대형응원기
ⓒ 박동구
사실 프랑스전은 시간이 지난 지금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탓도 있겠지만, 토고전이나 스위스 전만큼 인상적인 장면도 없었고, 일방적인 상대의 공세에 죽어라 응원만 하던 탓에 정말 진이 빠질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축구 자체를 즐긴다면 프랑스의 앙리, 지단, 비에리라, 윌토르, 리베리 등이 만들어낸 결정적인 장면들에 축구의 묘미를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오직 대한민국의 승리만을 기원하는 우리에게 그런 즐거움이란 사치에 불과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프랑스 전의 70분은 값비싼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완전 소중한 박지성이 우리를 승리로 이끌다

▲ 한눈에 보아도 프랑스 응원단이 월등히 많은 경기장
ⓒ 강병구
악몽이 점점 길몽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경기 끝나기 대략 20분 정도 남았을 때쯤부터였다. 일방적으로 펀치를 퍼붓던 권투선수가 상대의 다운을 뺏어내지 못하면, 자기 공격에 지친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점이었다.

전반적으로 팀 연령이 높아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 선수들의 지친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 선수들은 마치 이제 경기가 시작된 듯, 빠른 몸놀림으로 점점 흐름을 빼앗기 시작했다.

응원전은 말할 것도 없었다. 프랑스 응원석은 응원이라기보다는 점점 술렁임으로 시끌벅적해졌고, 우리 응원석은 선수들의 몸놀림에 맞추어 점점 소리를 높여만 갔다. 대단한 대한민국 응원단들도 마치 이제 막 응원을 시작하는 듯했다.

그러기를 10분여, 정말로 길몽이 되어버리는 순간이 발생했다. 조재진의 헤딩패스를 받은 박지성이 기묘하지만, 예술적인 골을 만들어냈다. 골이 들어간 모양도 그렇지만, 시간이나, 일방적이었던 프랑스의 공격 등을 생각해볼 때 완전히 상대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골이었다.

▲ 경기후 응원석으로 다가와 인사를 하는 우리 완소 국대선수들
ⓒ 박동구
오늘까지 비기면 2무로 부담을 안게 되는 프랑스는 마지막 반격을 노렸지만,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그리고 이 결과는 스코어상의 1:1이 일반적으로 뜻하는 무승부가 아니라, 사실상의 우리의 승리였다.

그 많던 프랑스 응원단은 썰물 빠지듯 조용히 사라졌고, 우리 응원단들은 경기 때보다도 더 소리 높여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지성아, 누나로 안 되겠니?", "완전 소중 박지성." 같은 '완소남' 박지성에게 보내는 나이 든 소녀들의 응원메시지에 나도 동화될 수밖에 없는 밤이었다.

그날 밤의 축제는 독일의 조용한 소도시 라이프치히를 떠들썩하게 만들고도 남을 것이었다. 우리 인터라켄 돼지껍데기파 12명은 숙자클럽에 합류하여, 라이프치히 광장에서 벌어진 축제에 함께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독일인과 프랑스인 등 외국인들도 함께 했다.

특히 프랑스인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축하한다는 인사를 했다. 처음엔 뭔가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었고, 우리의 함께 그날 밤을 즐겁게 함께했다.

그날도 그렇게 다음날 새벽 5시가 되도록 우리의 축제는 계속되었다. 다음 스위스 전을 더욱 기대하게 하면서 말이다.

▲ 경기후 경기장 앞에서 승리같은 무승부를 즐기는 대한민국 응원단
ⓒ 김현기

덧붙이는 글 | 중동부 유럽 정보는 지역의 특성상 다른 자료를 통해서도 많이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여행기는 독일월드컵 이야기와 함께, 유럽 중에서 제가 경험한 특별한 이야기와 흔히 잘 소개되지 않는 여행지를 중심으로 소개 하겠습니다. 

지난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음 기사는 8월 6일(화요일)에 이어집니다. 

사진을 제공해주신 김현기, 박동구님께 감사드립니다.


태그:#유럽, #독일 월드컵, #라이프치히, #프랑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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