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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향하여 떠나는 여행
ⓒ 제정길
열흘 넘게 글 올리지 않았습니다. 얼마쯤은 게을러서이고, 얼마쯤은 글쓰기에 물려서이고, 얼마쯤은 제 글이 글 같아 보이지 않아서이고, 얼마쯤은 되지도 않은 여행에 그렇게 열을 내어 글을 쓴다는 것이 주객이 전도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입니다.

풀어 말하자면 여행을 한다는 것은 길에서 무엇을 느껴보자는 것인텐데, 길에서 무엇을 주워 마음의 호주머니에 담아 두기는커녕, 길에서 만나는 것들을 어떻게 글로 옮겨 써먹을까 그 궁리가 여행 내내 앞서고, 낯선 풍물을 접하게 되면 맨눈으로 그것을 그윽히 바라보기 보다는 허겁지겁 그것들을 카메라 속에 가두기에 급급한 내 몰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여행을 하는 본질은 분명 아닐테지요.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유명하다는 장소에 가서 거기 가보았다는 증명용 사진 찍기 위한 행사'로 전락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근래 몇번의 단체여행에 따라가 본 솔직한 내 심정입니다. 여행지에 닿자마자 카메라 들이대고 풍경을 배경으로 자기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찍고 그것이 끝나면 또 다른 사진 찍을 곳을 찾아 쏜살같이 여행지를 떠나는 행태, 이것이 우리 시대의 여행은 아닌지 하는 참담한 마음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제가 하고 있는 여행은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떠 올랐습니다. 어떤 사람이 글에서 대부분의 여행은 떠남이 아니고 집착에서 시도 된다고 갈파하였는데, 무릎을 치고 싶을만큼 맞는 말입니다. 떠남이란 지니고 있는 것을 훌훌 털어버린다는 의미겠지만, 집착이란 그 가진 것을 꽁꽁 묶어두거나 더 보태어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뜻하겠지요. 여행기를 쓰겠다는 나의 집착이, 좋은 사진을 찍어 보겠다는 나의 욕심이 제 여행을 누추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어제는 L.A.에 있는 인척 결혼식에 갔었습니다. 오후 5시 반에 야외에서 시작된 결혼식은 야외와 실내를 오가며 밤 12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130명 밖에 안되는 단출한(?) 하객들은 물건 하나씩 사들고 결혼식에 참석하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진정으로 즐거워 했습니다. 그것은 오래 전에 잃어버린 우리 시골의 결혼식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여행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어디에 가 보았다는 자기 위로가 아니고 스스로 즐거워야 하는. 부조금 걷어들이고 사진 찍는데 급급한, 황량한 우리의 결혼 풍습은 이름난 경관을 찾아가 사진 찍고 황급히 떠나오는 우리의 여행 풍습과 어쩌면 그리 닮았는지요.

그런데 문제는 욕을 하면서 닮는다고 사람들이 그런 결혼식을 비아냥 거리다가도 자기 차례가 되면 주저 없이 또는 별 수 없이 그런 결혼식을 선택하는 것처럼 제 또한 이러다가 허겁지겁 그런 여행에, 그런 글을 쓰게 되는 우스광스러운 꼴을 보이게 된다는 겁니다.

내일(7월24일)이면 다시 옐로스톤 공원으로 차를 몰아 떠날 예정입니다. 왕복 2700km가 넘는 긴 거리라 아마 일주일 정도 소요되겠지요. 그 기간 동안은 어차피 인터넷도 연결이 안되고 소식은 두절되니 어차피 글 올리지 못할 것입니다. 메일 보내주신 독자여러분 고맙습니다. 제 글을 기다리며 여름을 보낸다는 말은, 얼음이 둥둥 뜬 찬물을 한 바께쓰를 제 머리 위에 쏟아 부은 것처럼 차겁고 부끄럼을 느끼게 합니다.

귀국은 8월 4일 합니다. 귀국 후에 캐나디언 록키 여행기 남은 것 마저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도요. 무더운 여름에 건강 조심하십시요.

덧붙이는 글 | 글쓰기를 쉬고(?) 있던 참에 한 독자로 부터 온 왜 여행기를 안 올리냐는 메일은 저를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득불 사정을 알리는게 도리라고 생각되어 그 독자분과 여러분께 메일을 같이 올립니다. 마음을 고쳐잡고 여행에서 돌아와서 글을 다시 올리겠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건강 조심하십시요.


태그:#늘근백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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