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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토마토가 말라죽었다. 원인이 뭘까?
ⓒ 전갑남
6시 반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여느 때보다 늦게 잠에서 깼다. 몸이 무겁다. 어제(18일)는 오후 늦게까지 밭에 자란 풀을 뽑느라 애를 썼다. 무척 피곤했던 모양이다.

좀 전까지 거칠게 비가 내리더니만 그쳤다. 오늘은 많은 장맛비가 온다는데 점잖게 내렸으면 좋겠다.

옷을 주섬주섬 입는 인기척에 잠에서 깬 아내가 묻는다.

"여보, 오늘도 밖에 나가?"
"고춧대 묶다만 것이 있어. 비에 쓰러지면 안 되잖아!"
"그럼, 들어올 때 참외랑 방울토마토 좀 따오세요. 사무실 사람들과 나눠 먹게."

장화를 신고 마당으로 나왔다. 잔뜩 흐린 날씨다. 금세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그런데도 새벽공기가 신선하다. 들판의 싱그러움과 마니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몸의 무거움을 털어낸다.

텃밭을 둘러보는 이른 아침, 마음에 넉넉함이...

나는 밖에 나오면 습관처럼 텃밭을 한 바퀴 돈다. 밤새 비 피해가 없어 다행이다. 오히려 물기 머금은 텃밭이 싱싱함을 더하고 있다.

▲ 800여주의 고추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 전갑남
▲ 기세 좋게 줄기를 뻗은 고구마밭. 많은 수확을 기대해본다.
ⓒ 전갑남
고추밭이 가장 관심사이다. 지금이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고추농사는 장마철을 어떻게 넘기냐에 따라 성패가 달렸다. 고추가 막 붉어지기 시작할 무렵 탄저병이 돈다. 한번 병이 들면 밭 전체로 번지기에 농심은 긴장한다.

아직 고추밭이 건강해 보인다.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달린 고추를 보니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달린 것만 병치레하지 않고 붉어져도 감지덕지라는 생각이 든다.

고구마밭엔 고구마줄기 뻗는 기세가 넘쳐난다. 고랑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무성하다. 올해는 고구마 팔아 돈 좀 만들어볼까? 강화 속노랑고구마는 살이 달고, 폭신한 맛을 으뜸으로 쳐 상품가치가 좋다.

▲ 참외가 익어가고 있다. 여러 사람과 나눠먹을 수 있어 좋다.
ⓒ 전갑남
▲ 아내의 기대가 큰 옥수수밭이다.
ⓒ 전갑남
참외도 노랗게 익기 시작했다. 엊그제부터 한두 개씩 따서 먹는데 오늘은 딸 게 많다. 이제 한 달 남짓은 과일 걱정을 안 해도 될 성싶다. 풍성한 수확의 기쁨이 날마다 계속되리라.

아내의 관심 종목은 옥수수이다. 옥수수는 벌써 수꽃이 피기 시작했다. 밥보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아내는 이제나 저제나 옥수수 여물기만을 기다린다. 탐스러운 열매가 달려 아내의 입을 즐겁게 할 것이다. 올해는 시차를 두었더니 늦여름까지 먹을 거라며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감자 캔 자리에 들깨와 서리태를 심었는데 그런 대로 괜찮다. 하루에도 몇 개씩 수확하는 오이도 아직은 푸른 덩굴을 뻗고 있다. 토란줄기도 기세가 등등하다.

그런데 찰토마토 왜 죽지?

밭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아직 손이 덜 간 고춧대를 부지런히 묶었다. 가슴까지 키가 자란 고춧대를 4번째 묶는다. 장맛비에도 끄떡없이 버티어주면 좋겠다.

▲ 참외를 수확하였다. 한동안 꿀맛의 참외를 실컷 먹을 것이다.
ⓒ 전갑남
참외를 예닐곱 개 땄다. 정말 탐스럽다. 잘 익은 참외 하나를 코에 갖다 대본다. 노란 참외에서 단내가 난다. 아마추어 농사꾼이 이렇게 멋진 참외를 수확하다니! 자신도 대견하다.

토마토를 따려는데 속이 무척 상한다. 올 찰토마토 농사는 완전 실패작이다. 방울토마토는 그런 대로 괜찮은데, 찰토마토가 말라 죽었다. 장마철에 비실비실 말라서 죽다니! 가뭄을 타서 말라 죽었다면 원인이라도 알겠지만, 이게 무슨 조화인가? 어제는 꼴 보기 싫어 죄다 뽑아버렸다.

올봄, 우리는 방울토마토 20주, 찰토마토 20주를 심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자식 없다더니 토마토를 보면 딱 그 짝이다. 병치레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모두 말라 죽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 방울토마토는 건강히 자라고 있어 다행이다.
ⓒ 전갑남
나는 올해도 토마토를 가꾸며 많은 정성을 쏟았다. 밑거름으로 잘 숙성한 돼지똥거름을 깔고, 모종도 튼실한 것으로 구입했다. 지주도 세우고, 곁가지를 제거하고, 또 자란 만큼 묶어주고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가?

토실토실 많이도 달린 열매가 빨갛게 익어갈 무렵 말라죽는데 대책이 없다. 원인이 뭘까? 농심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다.

옆집 아저씨도 말라죽은 토마토를 보고 안타까워했다.

"말라죽는 경우는 드문데. 고추 역병 같은 게 돈 건가? 그러니 뭐랬어요! 토마토도 살균제를 쳐야 된다니까! 작물이 병이 돌기 전에 예방을 해야 하고, 또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게 농사의 기본이지!"

아저씨는 자기 말을 듣지 않아 말라죽지 않느냐며 야단이다. 나는 싱싱한 과일에 약을 치고 먹는다는 게 께름칙하여 그냥 지나쳤다. 아저씨 말마따나 때맞춰 소독을 해야 했나? 물 빠짐이 좋지 않아 뿌리가 썩은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이 많지만 자연의 이치에 따를 수밖에.

토마토는 많이 먹어야 해!

방울토마토를 한 바가지 남짓 따자 비가 와락 쏟아진다. 나는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노란 참외와 방울토마토를 보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여보, 참외 많이 땄네! 찰토마토 죽어 속상하죠?"
"죽은 것을 어떻게 해! 그래도 방울토마토가 있잖아!"
"토마토가 왜 죽었을까?"
"그걸 알면 농사일이 제일 쉽게!"

아내도 찰토마토가 죽은 게 무척 서운하다고 한다. 자식 키우듯 가꾼 작물이 죽을 때 농부는 무척 속이 상하다. 여기에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아마추어농사꾼도 마찬가지다.

▲ 수확한 방울토마토. 토마토는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 전갑남
우리는 토마토를 정말 많이 먹는다. 집에서 길러 먹는 재미가 있는 토마토는 여름철 '과일'로 으뜸이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껍질을 벗기고, 얇게 썰어 꿀에 재워 냉장고에 보관해 먹으면 그 맛이 정말 좋다. 큼직하게 잘라 물과 꿀, 소금을 넣어 갈아 만든 토마토주스는 어떤 음료수에 뒤지지 않는다.

'천국의 과일'이라 불린 토마토는 맛뿐만 아니라 영양도 뛰어나다. 비타민C, 비타민B, 루틴 등 몸에 좋은 성분도 많이 들어 있다. 특히, 토마토의 붉은색에 함유되어 있는 리코펜 성분은 노화의 원인인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작용을 하고, 항암 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졌다.

아내가 방울토마토 하나를 입에 넣으며 "정말 맛있어! 토마토는 많이 먹어야 해!"를 연발한다. 자연이 준 귀한 선물이라며 즐거워한다. 숱하게 달린 방울토마토와 참외, 옥수수가 있어 올 여름은 주전부리가 넘쳐날 것 같다.

탐스런 참외는 사무실에 가져가 자랑을 해야겠다며 비닐봉지에 싼다. 아내의 밝은 표정을 보니 비 오는 아침이지만 기분이 좋다.

태그:#방울토마토, #찰토마토,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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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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