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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낮에 동네 할머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하시는 말씀이 "저기 또 한 노인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걸어오고 있어유. 원 날씨가 왜 이렇게 더운 건지…."

마침 오늘따라 덥게 느껴진 탓에 아침부터 에어컨을 틀어놓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시원해라 좀 앉아 있다가 혈압 좀 재고 가야지" 하시면서 의자에 앉으십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현관문이 열리며 또 한 분의 할머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먼 길을 쉬엄쉬엄 왔다면서 역시 시원하다고 하시며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의자에 앉으신 할머님들께서 한동안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잊은 듯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수?"
"나야 볼일이 있어 왔지만 할머니는 무슨 일로 왔댜?"
"여기 오는데 놀러오는 사람은 없을 테고 당연히 아파서 왔지요."

그러면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신세 한탄으로 이어졌습니다.

"어제부터 배가 살살 아프길래 참았는데 오늘 아침까지 계속 아프지 뭐예요. 그래서 참다 참다 밭으로 일을 하러 갔는데 아들 내외가 한다는 말이 더워서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 왜 이제야 나오느냐고 핀잔을 하지 뭐예요. 내 참 기가 막혀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한심하지 뭐야∼? 내가 몸 아픈 것은 안중에도 없고 들에 늦게 나와 일 못하는 것만 탓하니 세상 다 살았어요."

"인생별거 있어, 평생 살면서 지들 뒤만 닦아주고 마는 거지 뭐?"
"이건 사는 게 아니라 마지못해 눈만 뜨고 있는 거지 뭐."
"빨리 다리 뻗고 눕는 게 상책인데 하느님은 왜 나를 안 데려가는지 물러."
"마골 댁은 지금도 일하남요?"
"죽어야 일 안 하고 살지? 살아서 일 안 하고 놀면 누가 좋다고 하남?"
"그건 그려유, 죽어야 일을 안 하지, 동동거리는 거 눈으로 보고 안 할 수도 없고 몸이 아파서 일하자니 그렇고 아무튼 사는 게 사는 게 아녀유?"

할머님들의 대화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습니다. 한숨을 푹푹 내시면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안 좋았던 기억만을 회상하고 계셨습니다. 얼굴에 인상을 쓰면서 삶의 고뇌를 토해내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어서 죽어야지"를 양념처럼 대화 끝에 뿌리셨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두 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게 아니다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꾸만 죽음과 연관시키며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무너뜨리며 힘들게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마에 난 주름살이 더 굵어지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두 분의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너무 신세 한탄에 빠져들어 지난날들이 전부 불행이라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좋은 날들도 많았을 텐데 오늘은 몸이 불편한데다 자식에 대한 서운함이 더해 평소보다 더 허무하다 느끼셨나 봅니다.

"할머니, 젊으셨을 때는 어떠셨어요? 자식들 낳고 기르실 때 기쁘지 않으셨어요?"
"그때는 참 재밌고 좋았었지유. 자식은 그래서 키울 때나 자식이지 다 크면 아무 소용이 없어유. 저 혼자 저절로 큰 줄 알고 늙은 부모는 안중에도 없거든."
"그저 늙으면 나 죽었우 하고 해주는 밥이나 먹으면 그만이지."

"그래도 젊으셨을 때 사는 보람도 있고 행복하셨잖아요, 그러니 살아온 인생이 다 슬프고 허무하다 생각하지 마세요. 동네 사람들과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살살 산책하며 운동도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셔야죠? 외롭고 쓸쓸하다 생각하면 사는 게 힘들고 재미없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사는 게 보람도 있고 나름대로의 재미도 있을 거예요. 모든 게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잖아요."

"아파서 아예 꼼짝 못하고 누워서 집 밖에 나오지도 못하는 분들도 계신데, 할머니는 들에 나가서 일도 하시고 이렇게 혼자서 돌아다닐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쥬? 그런데 자꾸만 마음이 외롭고 허전하고 살아온 날들이 후회가 되고 그러네…. 늙은이 주책이지 뭐유."

"아마 지금 몸이 아파서 마음이 허전해서 그럴 거예요. 농촌에도 어르신들이 취미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이 잘 돼있으면 덜할 텐데……. 그렇다고 너무 신세 한탄만 하시면 오히려 건강도 해치고 마음이 더 쓸쓸할 것 같아요."
"취미생활이 뭐 있간디유? 죽으라고 일만 하고 마는 거지. 도시 노인네처럼 편한 팔자가 아닝께."

할머님은 들에 나갔다가 들은 자식 내외의 말이 못내 서운했는지 아직도 그 기분을 털어내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아픈데도 불구하고 일을 도우려고 나갔는데 핀잔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어 더 서운했나 봅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말끝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늙으면 죽어야지", "왜 빨리 나 안 데려가는지 몰라" 등 더러는 진심일 수 있으나 대부분 몸이 아프거나 불편함을 표현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동료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내소하셔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답니다.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이웃집 아저씨가 "그려 노인네들은 빨리빨리 죽어야지" 하면서 농담으로 말씀하셨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일어나시더니 내가 죽는 게 그렇게 좋으냐며 삿대질을 하면서 분노하시더랍니다. 순간 당황한 아저씨께서 그냥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셔서 농담으로 한 말이라며 사과했다는 이야깁니다.

근무를 하다 보면 때로는 며느리에게서 시어머니 때문에 사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또 어느 날은 시어머니가 아들 며느리 때문에 힘들어서 못살겠다는 하소연을 합니다. 그럴 때는 그냥 편안하게 들어주는 것이 상책입니다. 물론 가끔씩 말을 하는 분들의 입장을 헤아려 드리면 됩니다.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고 생채기로 남아있는 것들을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거든요.

그런데 오늘(18일)은 할머님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드리지 못하고 중단시키고 말았습니다. 너무 깊은 슬픔에 젖어들어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분전환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할머님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는데 잘한 것 같습니다.

할머님들의 대화는 제가 끼어드는 바람에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더 많은 신세 한탄으로 살아온 날들에 대한 생각을 곱씹으며 회한을 키우고 계셨을 겁니다. 자식들이 더 밉고 그래서 더 슬퍼하셨을 겁니다. 오랜 세월 농촌에서 할머님들과 생활해온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라고나 할까요?

시원한 드링크로 목을 축이며 다시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이제는 편안한 웃음도 함께 합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님들 얼굴이 보기 좋았습니다. 사시는 내내 이렇게 환한 웃음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늙는 것도 서러운 일인데 아프기까지 하니 사는 게 힘들다고 생각되는 게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힘내시고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신 모습으로 오래오래 텃밭을 일구어 가꾸듯, 그렇게 행복을 찾아 일구고 가꾸시면 좋겠습니다.

태그:#충남 연기군, #보건진료소, #할머니, #노인, #노인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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